기술 이전이 한소 經協 출발점
  • 한재(경제평론가) ()
  • 승인 1990.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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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경제의 생산력에 결정적인 변화를 준 3개의 역사적 분수령이 있는 바, 그것은 로마제국의 출현, 르네상스 그리고 산업혁명이다. 로마시대 이전의 기술수준은 중세 르네상스에 이르러서야, 그리고 르네상스시대의 그것은 근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각각 2배가 되었다. 인류의 기술수준이 2배가 되는 데 처음에는 5천여년이 걸리던 것이 산업혁명 이후부터는 1백년 주기로 단축되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주기는 급격히 짧아져 20세기 전반의 50년 동안에 인류의 기술수준은 그 이전보다 배가 늘었다.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올린 1957년 이후부터는 기술수준이 10년마다 2배씩 발전하고 있다. 21세기가 되면 신기술 개발의 속도는 더욱 급격해질 것이 틀림없다.

 기술수준이 급격히 달라질 것이라는 점은 전제로 한다면 산업기술의 라이프사이클도 점차 단축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업의 성쇠가 단숨에 판가름나고 나아가서는 산업의 진퇴, 경제의 흥망이 연쇄환으로 몰려 세계경제의 판도에 예기치 못한 엄청난 파장이 생길 것이다는  추론을 내릴 수 있다. 이와 같은 논리의 일반적인 유효성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차 강화되리라는 점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정체상태에 빠진 우리 경제

 일본의 경우 작년 1년 동안에 제각기 뚜렷한 특징을 갖췄다고 주장하는 1백28개의 신제품 복사기가 시장에 나왓다. 사흘에 하나꼴로 신제품이 등장한 셈이다. 신제품이 신기술을 바탕으로 잇달아 출현하게 되면 기존 제품은 비빌 언덕이 없다. 파멸뿐인 것이다. 과거에는 신기술을 상품화하는 설비투자 기간이 길었고 그 시간적인 니치(틈바구니)에서 기존 제품과 퇴보한 기술이 얼마 동안은 버틸 여유가 있었으므로 그런대로 견디었다. 그러나 20세기의 마감을 10년 앞둔 이 시점에서 과거의 니치를 기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 뿐이다. 국가간의 산업기술 이전이 더욱 어려워진 현실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국제적인 경쟁산업간의 니치도 급속도로 축소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더욱 냉엄한 사실은 기술부족으로 인한 경제적 혼란이 예고없이 찾아든다는 것이다. 그 결정적이고도 전형적인 예를 다름아닌 한국에서 본다.

 현재 한국경제는 구조적 조정기에 들어섰다. 말이 좋아 구조적 조정기지 바른대로 말하면 신기술의 공급 부족에 의한 경제의 정체상태이다. 뒤집어 말한다면 우리 경제는 자본의 한계이윤을 증가시키거나 지탱시켜줄 만한 기술의 한계생산력을 가지 못했다. 뒤떨어진 기술로 상품을 생산해봐야 팔리지 않아 손해가 많을 것이고 그렇다고 대체할 신기술도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위기상황인 것이다.

 한때 위기론이 대두되어 그래도 문제의 정곡을 짚어내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손톱 아린 줄만 알고 간썩는 줄 모른다더니 기술문제는 접어두고 노사분규·부동산투기·인플레이션 따위로 위기론을 치장하지 않았던가. 다시 한번 지적하거니와 한국경제에 거린 최대의 문제는 수출산업의 부진이고 그 이유는 기술의 공급부족에 있는 것이다.

 

아파트 열쇠조차 설계 못하는 기술수준

 에노스의 기술발전 모델에 따르면 일국의 기술수준은 단순한 기술의 모방단계인 알파단계와 그 이상의 수중인 베타단계로 대별된다. 한국의 기술수준은 베타단계의 중간 수준인 적응·개선단계이며 독창적 개발이나 기술혁신단계에는 아직 이르지 못하고 있다. 각종 기술지표를 선진국과 대비해보면 한숨만 나올 뿐이어서 도대체 이 나라가 언제 ‘한강의 기적??이라는 걸 만들었었나 의심될 정도이다. 최근 생산개발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기술수준은 아파트 열쇠조차도 제대로 설계해내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단 말인가. 독자적인 개발노력도 없이 기술 이전만 부르짖는다고 사태의 본질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수출은 한국경제의 생명선이다. 그런데 한국의 제조업체는 말이 제조업체이지 실은 조립업체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에서 자본재와 중간재를 들여와 그것을 조립 가공하여 미국에 파는 것이 한국수출의 대종이다. 따라서 대미무역에서 흑자를 내면 낼수록 대일적자는 늘어나게 된다. 이 구조적인 종속은 한국의 기술수준이 답보상태에 있는 한 개선불능이다.

 그 옛날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일본을 가리켜 “전세계로부터 기술을 흡수하여 경제를 일으켰지만 인류에 대한 공헌이 전혀 없는 야만족??이라 하였다. 일본은 기술수지가 흑자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도 히틀러의 지적에는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을 탓하기 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선 성찰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듯이 최근의 한·소 정상회담이 불러온 양국간의 경제협력 분위기는 우리가 소련과 기술적 보완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된다. 이미 소련은 지난 5월말 1백종의 각종 기술과 25종의 특허기술의 이전을 제의한 바 있다. 한소 경제관계는 기술 이전으로부터 출발점을 삼아야 하며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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