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길든 ‘양담배 입맛'
  • 안선자(조사분석실) ()
  • 승인 1990.06.2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산 고급화로 맞서야

과대광고 · 불법판촉 · 외제선호 3박자…점유율 5% 껑충

 “금년말까지 한국내 양담배 점유율은 10%까지 올려놓겠다??는 클레이턴야이터 미 농무장관의 최근 발언은 한국담배시장에 대한 폭탄선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담배인삼공사측이 양담배를 수입하던 86년 당시만 하더라고 0.18%에 머물렀던 양담배의 시장점유율이 90년 4월 현재 5.17%를 기록, 4년여만에 30배 가까운 증가를 보인 것을 볼 때 이러한 호언은 전혀 실현불가능한 것만은 아닌 듯하다. 현재 한국에는28개 담배수입업체가 등록되어 있으며 1백98종의 외제담배가 신고되어 있으나 시판되는 담배는 11개국의 1백47종이다. 가격은 대부분이 1천원 미만이지만 2천원짜리도 있다.

 서울 광하문에서 담배 소매점을 하고 있는 조경수(55)씨는 “하루에 판매되는 담배가 1백갑이라면 양담배는 30갑 정도입니다. 물론 이곳이 양담배가 잘 팔리는 지역이기는 하지만 강남의 카페들은 아예 국산담배를 취급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라고 판매 ??실적??을 털어놓는다. 이와같은 양담배 소비의 증가는 최근의 과소비 풍조에 편승한 값비싼 외제담배 선호 경향 탓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외국담배 회사들의 무차별적인 판촉활동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엔 여론에 밀려 판촉물 공세가 주춤하지만 판촉물이 한창 쏟아질 때는 정신없이 팔렸다고 한다.

 양담배회사들의 선물공세는 라이터, 부채, 성냥, 달력, 모자, 티셔츠 등 여러 가지다. 심지어는 담배 10갑을 사면 1갑을 더 얹어주기까지 한다. 이밖에 거리판촉활동과 각종 대회 및 공연을 후원함으로써 담배사업법 시행령을 버젓이 위반하고 있다.

 

당국의 시정명령. 5달째 묵살

 올들어 서울시가 3월말까지 적발한 불법·불공정행위 건수는 총 1천4백60건으로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38배가 넘는 것이다. 이를 유형별로 보면 △무지정판매 1천6건 △불법광고 3백70건 △불법판촉 59건 △불공정행위 18건 △부정유출 5건 △불법도매 2건 등으로 이중 1백88건은 고발조치를, 1천2백72건은 시정조치를 당했다. 그러나 이들 업체는 지난 2월2일 서울시가 내린 시정명령을 아직것 따르지 않고 있다. 중국산 담배 ‘금건??의 경우 한약제 3백여종이 담배에 함유되어 있다고 과대광고, 1개월간 제재받은 바 있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6월4일 양담배를 팔면서 공정거래법 규정(경품은 상품 거래금액의 10%를 초과해서는 안된다)를 어긴 필립모리스·한국RJ레이놀즈·한국 코포레이션 등 3개사에 부당경품을 제공하지 말도록 시정 명령을 내렸다. 이중 필립모리스사는 8천원인 말보로 라이트 10갑을 팔면서 3천8백40원짜리 전화번호수첩을 증정했다.

 이같이 불법광도에 대한 제개가 심해지자 양담배회사들은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해 교묘한 술책을 쓰기도 한다. 입생로랑은 6월1일자 모일간지 1면에 가격공고문을 실었다. 이 ‘공고??는 그 내용상 광고임이 분명하지만 ??합법적인 절차??를 밟은 것이어서 당국조차 광고인지 공고인지 판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일간지나 텔레비전을 이용한 광고가 금지된 상황에서 최근 주간지·주간지를 이용한 광고공세는 더욱 치열하다. 현재 60여종을 넘는 양담배 광고를 싣고 잇는 것으로 집계됐다.

 

“기호품인 만큼 선택권 있어야" 주장도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양담배를 반대하고 있는가? YMCA 시민자구모임의 김성수씨는 “담배는 유해상품의 상징익 때문에 반대한다. 양담배는 외제 선호사상을 부추기는 주범이기도 하다??라고 주장했다.


 연세대 의대 예방의학과  承 교수는 그의 논문에서 양담배가 국산담배보다 타르와 니코틴을 훨씬 많이 함유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양담배라도 한국에서 팔리는 양담배가 독성물질을 더 많이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표 참조). 한편 “거의 모든 외국상품이 전면개방된 상태에서 유독 수입담배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는지 모르겠다??며 ??양담배 수입을 금지하면서 우리의 엽연초 수출만 늘리라고 주장할 수 있겠느냐??고 양담배 ??긍정론??을 펴는 사람도 있다. 양담배에 대한 국민 의식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담배가 기호품인 만큼 선택하여 피울 수 있어야 하며, 양담배 흡연을 비애국적 행위처럼??지탄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양담배의 수입이나 흡연을 탓하기에 앞서 현재의 담배인삼공사를 민영화하여 자유경쟁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외국 담배가 국내시장을 잠식해 가는 근본적인 원인이나 대책을 자유경쟁의 시장원리에서 찾아야지 언제까지고 ‘전매??의 울타리로 보호하거나 국민감정에 호소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엽연초는 생산량의 65%를 담배인삼공사에서 수매하여 국산담배 제조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수출 물량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위의 도표에서 보듯 엽연초의 수출현황은 87년에서 88년 사이에 약 38%가 증가했으나 89년에는 87년의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반면에 양담배 수입은 완전개방 첫해에 10배, 다음해에는 전해보다 다시 3배의 급성장을 보였다. 엽연초생산협동조합중앙회에 따르면 양담배와 시장잠식률이 5%를 차지할 경우 잎담배재배 농가 3천여가구가 폐농할 것이며, 10%에 이르면 6천여가구가 경작을 포기하게 된다고 한다. 엽연초생산조합 관계자는 “경작을 포기한 농가들이 작년에 대부분 고추재배로 전환, 고추파동을 겪게 됐다??고 말한다.

 조합측은 현재 담배판매 실적에 따라 각 지방으로 분납되는 담배소비세를 피해 당사자인 농민에게 ‘돌려줄??것을 재무부에 강력히 건의한 바 있으나 ??특정기관 ?단체에 대해서는 세금을 지원해 줄 수 없다??는 답변만을 얻었을 뿐이다. 이들 엽연초재배 농가는 현재 여러 지역에서 양담배 판매 거부운동을 펼치고 있다. 금연운동협의회를 비롯한 소비자단체들도 양담배 광고와 판매를 규제하는 법안의 제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지난 6월4일 도널드 그레그 주한 미국대사는 전민련과 전대협이 지난달 22일 보낸 ‘광주 및 미국상품 수입?? 관련 서면질의에 대해 ??수입자유화를 거역하는 것은 한국을 다시 옛날의 가난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념의 장벽과 국경마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수입봉쇄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양담배나 사치성 수입상품을 막는 일은 우리 자신의 몫일 수밖에 없다. 외국상품에 홀려 있는 우리의 의식을 전환하고 국산품의 고급화를 서두르는 일도 그러한 노력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