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國主義의 교만 경계해야
  • 박권상 주필 ()
  • 승인 1990.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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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안쓰이지만 ‘고두??(叩頭)라는 생소한 낱말이 있다. 풀이하면 ??공정하여 머리를 숙인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약자가 강자에게, 아랫사람이 윗분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예식을 말한다. 중국의 明淸朝 때 신하들이 황제한테 ??세번 무릎을 꿇고 아홉번 엎드리??는 예를 갖춘 데 연유한다.

 중국사람들은 주변 屬邦에 고두의 예를 강요했고, 조선 등 주변국가는 ‘强弱不同??이라 도리없이 ??事大??의 예를 갖추어야 했다. 힘이 약한 나라로서는 강한 나라 곁에서 살아가는 생존의 지혜 정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서구열강이 중국의 문을 두드리며 통상?외교를 청할 때 중국 조정은 그들에게도 ??고두??의 예를 강요했다. 淸날 황제를 ??하늘의 아들??로, 淸을 세계중심의 나라 ??中國??으로 인정시키는 요식행위였다. 방자한 중화사상이었다. 서구열강의 대표들은 도리없이 순응했으나 차차 이의를 제기, 소위 아편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함으로써 ??고두??의 예식은 폐지되었다. ??中華??의 자존심을 꺽은 것이다. 그러나 ??Kowtow??라는 영어단어가 아직도 쓰일 정도로 역사적인 의의는 살아남아 있다.

 물론 21세기를 눈앞에 둔 문명된 국제관계에서 ‘고두??외교 같은 금욕적인 관계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 사이에 벌어지는 상호작용에서 ??고두??의 형식은 사라졌지만 이른바 대국주의의 교만은 건재하고, 불유쾌한 사례로 비일비재하다.

 지난 45년간의 한·미관계가 호혜평등의 수평관계였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이 나라의 안전과 경제를 미국에 100% 의존할 때, 그것은 분명히 수직관계였다. 그러나 적어도 경제관계에 있어서는 ‘작은 무역전쟁??이 일어날 정도로 상호의존과 대립관계도 변하였으므로 중남미에서 발전한 이른바 ??종속이론??을 한?미관계에 적용시킬 수는 없다.


외교에서는 실속 못잖게 형식도 중요

 얼마전에 盧泰愚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만나 “가까운 장래 국교수립의 원칙??에 합의하고 경제?과학기술분야의 협력관계를 발전시키기로 한 것은 對美일변도의 외교관계를 바로잡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되는??역사적??쾌거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더 큰 의의는 한반도에서 ??냉전의 化石??을 깨뜨리는 데 결정타를 가한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남북간의 긴장완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 분명하다는 데 뜻이 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의 진행과정에서 나타난 소련측의 태도는 심히 불유쾌한 대국주의적 교만의 발로로 지적되어야rpt다.

 외교에서는 무엇보다 실속이 중요하다. 그러나 실속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형식이다. 국가의 위신과 힘이 반영되는 것이기 때문이고 흔히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전에 약속된 회담시간을 일방적으로 1시간20분이나 지연시키고, 분명히 노대통령이 묵고 있는 호텔에서 열린 회담인데,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주인노릇을 하고, 노대통령은 마치 크레물린궁에 찾아가는 듯한 형식이요, 심지어 소련경호원의 缺禮로 노대통령이 2분간이나 엘리베이터 앞에서 홀로 기다린 것 등은 절대로 묵과할 수 없다. 앞으로 있을 修交협상 과정에서 여기에 대한 변명·사과가 있어야 마땅하다. 당연히 6·25전쟁의 책임, 대한항공기 격추사건도 짚어야겠고.

 회담 후, 고르바초프나 소련정부가 벌인 횡설수설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노대통령이 한·소회담내용을 소상히 발표할 무렵, 고르바초프는 기자들의 질문에 “짧아도 좋으니까 수뇌회담을 갖고 싶다??는 요청이 노대통령으로부터 있었다고 말하고 ??아시아를 포함한 모든 나라들과 관계를 좋게 해야하기 때문에 받아들였다??고 말하였고, 소련이 한국과 경제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이 회담할 것을 결정한 이유??라고 말하였다. 마지 못해 응했다는 식의 생색발언이었다. 무슨 큰 은고나 베푸는 식의 변명 비슷한 말투.

우리 스스로 大悟반성해야 할 소련의 무례함

 북한을 의식한 소극적인 가치 부여라고 말할 수도 이겠고, 소련 내부 보수파의 반발을 의식한 나머지 애써 한·소 수뇌회담의 의의를 축소시키기 위한 발언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것은 그쪽 사정이다. 기왕에 상호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역사의 신기원을 여는데, 얼마나 용열한 짓인가. 고르바초프 발언과 수뇌회담 진행과정에서 벌인 그들의 무례함은 결코 ‘신사고??로 보기 어렵다. 바로 대국주의적 叩頭心理가 잠재되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듯 대국주의적 교만에 빠져들게 했는지도 우리 스스로 大悟반성하여야 하겠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때가 무르익으면 자연스럽게 될 일인데, 무엇이 그리 급하고 아쉽다고 모스크바에 몰려다니면서 한·소수교를 구걸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여, 그들한테 약세를 보인 것은 아닌가 살펴야겠다. 특히 그들이 남북한의 긴장·대립관계를 적절히 이용, 한반도문제의 ‘증재??라는 이름 아래 그들 스스로의 잇속을 챙기려는 판에 우리 스스로 말려드는 일은 없는지, 북한에 대해서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는 식의 부탁은 좀더 냉정을 찾아 민족의 백년대계라는 높은 차원에서 심사숙고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다고 북한이 소련말을 고분고분 듣겠는가. 남북정상회담 같은 것도 시간을 두고 여건을 정비하는 가운데 민족 내부의 대화와 협상으로 풀어가야 한다.

 이미 본란에서 상기시켰지만, 해방 후 인구에 회자된 경구를 다시 한번 반복한다.

 “미국을 믿지말고, 소련에 속지말고, 일본은 일어나니, 조선아,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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