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현장 휘젖는 제임스 리
  • 김 당 기자 ()
  • 승인 1990.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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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지역에서 다시 해결사로 각광…美 노동운동가 경력의 자칭‘테러범’

“노사관계 악화시키는 ‘제임스 리’, 노조의 단합으로 현장에서 추방해야”지난 6월8일 한 조간신문의 사설 제목이다. 보기 드물게도, 한 개인을 구체적으로 이름 댄 추방론이 한 신문의 의견으로 나오게 된 배경은 제임스 리(40ㆍ본명 李允燮)가 인천지역 사업장에 나타남으로써 그 지역 노동계를 긴장시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새인천병원, 콜트악기, 명성전자등 그가 개입했거나 개입하고 있는 사업장에서는 노조가 아예 해체되거나 힘을 못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에 실패하고 78년에 미국행

 그래서 그런지 다분히 공포심과 연결된 그의 별명은 다양하다. 노조 파괴 전문가, 극우 테러리스트, 전경련의 노무 청부업자, 안기부 끄나풀, 미국 CIA 하수인….이처럼 천의 얼굴을 가진 수수께끼의 인물 제임스 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른바‘제임스 리 공포 증후군’이라고 이름할 그에 대한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선 그가 걸어온 길을 더듬어 그 해답에 접근해 보기로 하자.

 지난 6월11일 기자와 만난 제임스 리가 밝힌 성장 내력은 이렇다. 50년 7월 인천 중앙동에서 전쟁 유복자로 출생. 서울 배재중, 인천 동산고 졸업. 고1 때에 어머니를 여의고 인천의 외가에서 성장. 고등학교를 마치고 외가에서 하는 약품 도매상 일을 돕다가 70년대초에 독립. 그 뒤 미국으로 이민가기 전까지 혼자서 서울 다동에서 염료, 목재 장사등을 전전.

 李씨가 미국 이민을 가게 된 동기는 혈혈단신인데다 사업에 실패했기 때문. 먼저 미국에 이민을 가 살고 있던 현재 부인의 배우자 초청으로 78년 8백달러를 손에 쥐고 태평양을 건넜다. 가진 것, 배운 것 없던 이씨는 공장노동자로 미국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영어와 미국인의 사고·생활방식 등을 배울 요량으로 80년초에 미군에 입대했다.

 이씨는“84年 제대 뒤 6개월 동안의 사회적응 기간에 교포 공장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목격하고 노동계에 뛰어들게 됐다”고 한다. 당시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이민온 교포 상당수가 봉제공장에서 일했는데 이씨는 10년째 근무한 처이모의 봉급이 최저임금 수준에도 훨씬 못미친다는 것을 알고 노동운동을 해보고 싶은 의욕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교포신문에서 한국의 재야노동상담소 격인‘재미한인노동연맹’(뒤에‘한인노동연합’으로 개칭)에서 자원봉사자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 그곳에서 카운셀러로 일했다. 그러다 이씨는 86년 10월에 “이념과 노선 차이 때문에 한노련을 탈퇴”하게 된다. 당시 한노련 이사로 있던 사람의 상당수가 반정부를 넘어서 반국가(반한) 성향을 보이고 주위에서도 “왜 빨갱이 단체에서 일하느냐”는 질책을 해 탈퇴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노련에서는 이씨가 자신이 추대한 사람이 위원장에 당선되지 않자 불만을 품고“조직에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등 파괴공작을 일삼다가 자격을 박탈당한 것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89년 1·8 테러 직후에 한노련에서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이씨는 86년 2월부터 11월까지 9개월쯤 자원봉사자로 일했다는 것인데 이는 이씨가 밝힌 84년부터 86년까지 3년 동안 일했다는 것과 크게 차이진다. 그뒤에 이씨는‘한미공익협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비슷한 일을 해오다 87년 5월에 한국에 사는 장인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간병차 귀국해 현재까지 머무르고 있다.

 

무노동 무임금 원리를 본격적으로 소개


 이씨는 자신이 한국에서 재야 및 노동운동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김철씨(전 사회민주당 위원장)와의 만남 때문이라고 한다. 86년 여름 페루 리마에서 열린 사회주의인터내셔널(SI) 총회에 참석하는 길에 로스엔젤레스에 들른 사민당 임원들의 안내역을 맡은 것이 인연이 되어 김철씨와 친분을 맺었는데 그뒤 귀국해 김철씨의 소개로 혁신계 인사들과 두루 접하면서 재야와 교분을 텄다는 것이다. 김철씨를 매개로 재야운동권에 명함을 내민 이씨는 재야인사들의 급진적 사고방식에 큰충격을 받고 재야에‘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씨를 소개받은 재야인사들은 그때는 몰랐지만 이씨가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 같다는 심증을 갖고 있다.

 이씨가 한국의 기업경영자들에게 첫선을 보인 것은 87년 8월 노동자 대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전경련 주최로 열린‘노사관계 세미나’로 알려져 있다. 이 세미나에서 제임스라는 뛰어난 화술과 기업의 구미에 맞는 강연내용으로 노동현장 경험이 있는 전문가를 필요로 하던 경영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더욱이 노조의 역사가 깊어 파업중이라도 노동자들이 파업기금(strike funds)으로 버틸 수 있는 미국에서는 관행으로 받아들여질망정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낯선‘무노동 무임금’(No work, no pay) 이론을 거침없이 원어로 소개했다. 또 실정법에는 나와 있지만 당시에는 거의 쓰여진 적이 없던 직장폐쇄라는 자본의 무기를 상기시키며“파업에는 폐업으로”과감히 대응할 것을 외치는 제임스 리의 강연이 경영자들에게 지극히‘감동적’이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겠다.

 이렇게 해서 이씨는 여러기업의 초청으로 관리자 및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순회강연(교육)을 맡게 된다. 그러나 이씨는 자신이 맨처음 강연을 맡은 것은 87년 9월께 도미 준비중 인사차 들른 외삼촌뻘 되는 김정배씨(삼성전관 부사장)에게서“노조문제로 회사가 어렵다”는 하소연을 듣고서 우연히 간여하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어쨌건 삼성전관에서 처음에는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 나중에는 전사원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는데 이씨는 그때만해도 노사문제로 강의를 하고 다니던 사람이 거의 없을 때여서 강의를 들은 경영자들이 구전으로 퍼뜨려 여기저기서‘출연요청’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87년 9월부터 현대그룹에 개입하기 전인 88년 9월까지 1년 동안 이씨가 강의 및 교육을 맡거나 노사문제에 개입한 사업장은 수원지역 삼성계열사(삼성전관,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코닝 등), 안국화재,용인  한일전장, 선경마그네틱(주), 대우전자 인천공장, 성남 항진산업, 풍산금속 안강공장 등이다. 강연에서 이씨가 받은 강사료는 시간당 10만~15만원 수준이었다.

 한편 이씨는 이미 재야인사들과의 접촉과 문서, 소책자 등을 통해 이론적으로 터득한 운동권의 의식과 생리를‘현장 실습’을 통해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작정했다. 그래서 87년말부터 다음해초까지 이씨는 대학을 중퇴하고 노동현장에서 일하던, 고교후배의 여동생 ㅇ씨(31ㆍ현재 ㅅ주파 노조사무장)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마치 운동권인사인 것처럼 가장하여 각종 유인물과 책자를 입수, 분석하여 운동권 조직과 생리를 파악한 이씨는 ㅇ씨에게 경남지역노동운동권 인사들을 만나고 싶다고 요청, ㅇ씨의 형부인 포항성공회 김광준신부를 소개받았다.

 제임스 리는 88년 4월께 포항으로 가 김신부의 소개로 죽동 그랜드호텔에서 그 지역 재야인사들을 만났다. 당시 포항민주화연합의장 김병국, 동 부의장겸 포항노동상담소장 김상섭,ㅎ신문 포항지국장 윤모씨등과 노동자 몇명이 모인 자리에서 이씨는 자신을 재미노동운동가라고 소개하면서〈LA 더 선데이 한국타임즈〉기자라고 박힌 명함을 뿌렸다. 그 자리에서도 “교포신문에 기사화해 모금운동을 벌여 노동운동 자금을 지원해 줄 수 있다”고 제안, 호감을 샀음은 물론이다. 이런 식으로 4월부터 8월까지 4차례나 포항ㆍ울산ㆍ부산ㆍ마산ㆍ창원 코스(이른바 U벨트)를 정례적으로 순회하면서 재야·노동계와의 교분과‘의식화 현장경험’을 충분히 쌓았다. 이씨는 네달에 걸친 운동권 답사기간 중 6월에 회사측 교섭대표로 일했던 성남 항진산업에서말고는 강의도 쉬었다. 이씨는 자신이 운동권을 파악하느라 쏟은 경비가 줄잡아 1천5백만원은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때 큰돈을 들여 얻은 현장경험이 그 뒤에‘더욱 설득력 있는 강연’을 하는 데 산지식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뒤 이씨는 88년 8월부터 현대그룹 노조연합회 산하 22개 계열사 노조위원장 교육을 시작으로 이듬해 1ㆍ8 테러가 터지기 직전인 1월7일까지 울산 현대그룹 계열사 조합원과 관리자들을 집중 교육하였다. 그 당시에도 교육중에 지금처럼 조합원들이 질문공세를 퍼붓는 등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씨의 설득력 있는 강의에 이원건(현대중공업), 이재현(현대엔진) 등 노조집행부조차 이씨에게 우호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중공업과 엔진이 동시에 파업중이던 1ㆍ8테러 직전에도 상당수의 대의원들이 이씨를 추종, 테러에 직접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현재 현대그룹 차원의 지원과 경찰의 사전계획대로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1ㆍ8테러를 우발적인 사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씨는“좌경혁명세력들이 노동현장에 발붙여서는 안된다는 신념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기에 자신과 동지들은‘1ㆍ8의거’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1·8테러를 거침없이‘의거’로 표현

 이씨는 그‘의거’뒤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중 2심에서 징역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89년 7월13일에 풀려났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씨를 포함,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한유동(전 현대엔진전무), 김남소(전 중공업대의원), 이상규(전 부위원장), 김상균 등 5명 전원을 집행유예로 석방하면서 판결이유를“피고인들이 깊이 뉘우치고 있어”라고 밝혔다. 그러나 석방 이유와 달리“소신에는 변함이 없다”는 이‘확신범’과 추종자들은 89년 1월 새인천병원에 이어 현재 콜트악기와 명성전자 노사분규 현장에서‘활약’하고 있다.

 현재 이씨가 세 회사에서 1년 계약 인사부장(새인천병원) 또는 고문(콜트악기와 명성전자)으로서 보여주고 있는 노무관리 행태는 과거와 다를 바 없다. 인천지역 노동조합협의회(인노협) 교육간사 문민영씨는“제임스 리는 노동문제 인식수준이 비교적 낮은 사업장이라고 판단하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저급한 수준의 논리를 펼치지만 조직이 탄탄한 사업장에서는 흑색유인물 공세와 함께 노조는 인정하되 지도부로부터 대중을 분리시키는 다양한 전술을 구사한다”고 밝히고 있다.

 임금교섭이 결렬되어 5월3일부터 노조가 파업중인 콜트악기(인천시 북구 작전동·대표 박영호)의 경우, 노조 홍보부장 방종만씨에 따르면 회사측은 이미 지난 3월부터 송도비치호텔 등지에서 제임스 리를 초청하여 두차례에 걸쳐 관리직과 주임.반장직 사원들을 교육했다는 것이다. 그때 강의안으로 사용한‘노사분규 25시’라는 소책자와 유인물을 보면 자신의 현장경험을 토대로 작성했다는 의식화 학습과정, 의식화 사원의 식별방법, 노사관계에서 중간관리층의 역할 등이 실려 있다. 또 6월4일 부평시 공보관에서 모든 관리직 사운과 파업농성에 참여하지 않은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도 “노사분규를 일으키는 사람 중에는 눈이 작고 혈액형이 A형인 자가 많다”라는 등 한일전장과 항진산업 등에서 써먹던 유치한 수법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명성전자의 경우도 사정은 엇비슷하다. 제임스 리는 5월말께부터 노동조합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는데 조합원들은 그가 나타나면서부터‘민주선봉대’라는 정체불명의 조직 이름으로 현 노조집행부를 비방하는 유인물이 나돌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6월5일 제12차 임금교섭에 노조측 교섭위원으로 나갔던 이영숙(노조 회계감사)씨는 제3자가 사용자측 교섭대표로 나선 것을 항의하자 자신은 인사ㆍ노무관리 위원으로 채용됐다면서 오히려 다른 회사측 대표들의 발언을 가로막는 등 전권을 행사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지극히 저급한 수준의 설득논리임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리가 노동계에서 공포의 인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배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씨가 늘 주위에 말하듯 스스로 테러범임을 자처하는 확신적 태도이다. 그 다음으로 실제로 그가 다년간 사업장에서 보여준 실력, 곧 노조를 무력화시키는 솜씨이다. 또 정체불명의 인물이라는 점도 그에 대한 공포심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그 자신도 이점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마지막으로는 1ㆍ8테러에서도 나타났듯 이씨가 공권력과 긴밀한 끈을 대고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다. 이에 대해 이씨는“공권력이 방해나 안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부인하면서 자신의 소신에 따른 단독의지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그의 행적이 너무 어지럽다. 제임스 리는 늘“남자로 태어나 소신에 산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잘못된 소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사회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도 있는지 모르는 것이 그 소신의 한계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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