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엇, 팻감을 안썼잖아"
  • 권경언 5단 ()
  • 승인 1990.07.0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古今에 나타난 반칙사건과 그 판정

 바둑의 규정은 엄격하고도 분명하여 심판이 없어도 얼마든지 시합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둑을“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승부??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둑이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되어 棋戰의 수가 많아지고 바둑시합의 제한시간이 단축되면서 초읽기 사례가 빈번해지자 이상한 반칙사건과 판정시비가 벌어지고 있다.

 古今 바둑사에는 어떠한 반칙사건들이 있었으며 어떠한 판정이 나왔을까? 여기에 몇가지 실례를 열거해본다.

 1970년 3월21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15기 國手戰 1차에선 결승국. 盧永夏2단과 申彦哲초단 대국에서 우리나라 바둑사상 최초의 반칙사건이 발생했다.

趙治勳. 名人戰서 억울한 무승부
 黑을 쥔 노2단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가운데 신초단이 대마사활 문제가 걸린 패싸움이 진행되고 있었다. 서로 팻감을 쓰고 패 따내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다가‘팻감찾기??에 골몰하던 노2단이 착각을 일으켜 팻감을 쓰지 않은 채 패를 따내버렸다.??엇, 팻감을 안썼잖아!?? 신초단이 놀라서 상대방을 쳐다보자 18세의 소년 노2단은 안색이 창백해지며 아무 말도 못했다. 금방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바둑판 주위를 병풍처럼 에워싸고 웅성거렸다.

 신초단은 주위의 기사들에게“이런 때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으나 모두들 처음 당하는 일이어서 묵묵부답이었다. 대국이 중단된 채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얼마후 신초단의 양해로 대국이 속개되었고 그 결과 노2단이 승리하여 복기검토를 하고 있을 때, 한국기원 상무이사 裵相淵3단이 대국장에 나타났다.

 “노군이 팻감을 안쓰고 패를 따냈다면서…. 그건 반칙이야, 상대가 양해를 해도 소용없어. 노군이 졌어!??

 80노옹 배3단의 판결에 의해 노2단의 반칙패가 선언되었다.

 노ㆍ신사건이 발생한지 6개월 후인 70년 9월2일, 最高位戰 2차에선 李一善3단과 白郁太3단 대국에서 그와 똑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인천의 원로기사 이3단은 필승지국을 반칙패 당하자 大怒하여“젊은 놈이 실력으로 이길 생각을 해야지 어른한테 팻감을 안썼다고 생떼를 쓰다니…. 에잇 좀스러운 놈! 더러워서 나는 바둑을 안두겠다??고 선언한 뒤 한동안 시합에 출전하지 않았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바둑계에서도 그와 유사한 사건이 여러번 있었다. 일본 제5기 名人戰 도전기 4국. 당시 趙治勳8단과 오다케(大竹英雄)9단의 대국에서도 패싸움이 벌어졌다. 조8단은 초읽기 마지막 1분에 몰리고 있었다. 팻감을 쓸 차례에서“40초!??하는 독촉소리에 그는 화급하여??내가 지금 패를 따낼 차례냐???고 기록자에게 물었고 기록자 역시 착각하여??예!??하고 대답, 반칙이 발생했다.

 이 대국은“대국자가 기록자에게 패를 따낼 차례를 물어본 것은 규칙위반이 아니다. 기록자가??예??하고 대답한 것이 규칙위반이다. 따라서 조8단의 실격이 아니다. 이 판은 무승부로 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81년 7월21일 제7기 國棋戰본선 河燦錫천7단과 鄭壽鉉4단 대국에서는 특이한 반칙사건이 일어났다(기보 참조).

 하7단이 黑, 정4단이 白이었다. 白1로 단수쳐서 패가 난 상황, 국세는 반면으로도 白이 우세한데다가 白은 꽃놀이패를 가지고 있으니 승부는 끝난 거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정4단이 白9로 팻감을 쓰고나서 ??표의 곳을 따낸다는 게 그만 착각을 일으켜 오른쪽 11의 곳에 따냈다. 앞서 언급한 바와같이 현재의 국세는 白이 패를 무조건 양보해도 이겨 있는 상황이므로 정4단이 착각을 일으킨 상태에서 그대로 있었어도 승리했을텐데 그가 당황한 나머지“어!??하며 착점한 돌을 급히 거두어 ??표 자리에 다시 두었다. 그래서 통한의 반칙패를 당했다.

두 대국자가 모두 패한 해프닝
 86년 2월3일에 두어진 KBS바둑왕전 千豊祚6단과 文明根4단과의 대국에서 문5단은 착점코자 했던 지점의 한칸 아래 돌이 놓여져 있는 것을 나중에 발견하고 한칸 위로 옮겨놓는 해프닝이 있었다. 승부와는 무관한 별 것 아닌 사건이었으나 텔레비전 시청자들의 질타성 항의전화가 빗발치듯 걸려오는 바람에 한국기원에서는 그 압력에 밀려서 문4단에게‘텔레비전대국 1년간 출전정지 및 신문기전 6개월간 출지정지??의 징계처분을 내렸다.

 지난 4월13일 일본 天元戰 본선 16강전 하네(羽根泰正)9단과 하루야마(春山勇)9단 대국에서는 바둑판 위에 놓인 돌이 옷소매에 걸려서 한칸 옆으로 이동한 것을 모른채 두다가 끝내기에 문제가 야기되어 두 대국자가 함께 패하는(兩者敗) 진기한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약20년 전 鄭東植4단과 金聖勳4단 대국에서 이와 똑같은 사태가 일어나 대국 도중 김4단이 항의했으나 이미 많은 수순이 진행되어 그 항의가 기각된 적이 있다. 당시에는 거기에 대한 특별한 규정이 없었던 것이다.

 지난 4월30일 王位戰 예선 결승. 尹寄鉉의9단과 白成豪7단의 대국에서 초읽기에 몰린 白7단이 착각을 일으켜 쌍패를 연속 때리는 반칙을 범했으나 尹9단은 그것을 모른 채 끝까지 두었고, 계가를 한 결과 白7단의 승리로 판결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국기원에서는 바둑의 판결규정집을 새로 만들 계획이란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