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대 값으로 ‘내 비행기’ 띄운다
  • 몽산포·박중환 부장대우 사진·백승기 기자 ()
  • 승인 1991.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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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비행시대’ 여는 초경량비행기 동호인 확산“항공인력 저변확대 기여할 수 있기 바란다”

‘손수비행시대’가 한국에도 다가오고 있다.   비전문인들에 의해 취미로 조립됐거나 국내 기업이 합작생산한 초경량비행기로 하늘을 나는 동호인들이 늘어나고 있어 ‘손수비행시대’의 문은 이미 열린 셈이다. 10여년 전까지 마이카가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던 것을 되새겨보면 ‘손수비행시대’는 더울 그럴 듯해 보인다.

 “비행기가 얼마나 비싼데…”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국내에서 조립, 생산돼 개인에게 시판이 가능한 초경량급 비행기는 두 종류가 있다. 그중 더욱 주목받는 것은 ‘하늘의 페라리’라는 별명의 2인승 초경량비행기섀도(그림자). 이미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비행기 중 하나로 인정받은 섀도의 값은 2년5백만원 정도. 1대 재료값 1천5백만원에 조립생산비 1천만원이 보태진 가격이다.

‘가장 안전하고 값싼 비행기’
 다른 하나는 동양로직공업이 프랑스 코스모스社와 합작생산하는 2인승 체중이동형 비행기가 있다. 행글라이더에 엔진을 달아 바람이 없는 날에도 날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섀도에 비하면 특수한 비행기에 속한다. 가격은 1천2백만원. 이 정도의 가격이면 국산 중형승용차값 수준이다. 그러나 유지관리비는 포니승용차 수준이면 족하다. 비행기라면 무턱대고 엄청나게 비쌀 것이라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혹시 “위험하지 않은지”라고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9월 중순 섀도동호인들이 훈련비행을 하고 있는 충남 태안반도에 있는 몽산포해수욕장 해변을 찾았다가 놀라운 현장을 목격했다. 불과 10분전에 이륙한 섀도 2호기가 서서히 날아와 해변에 착륙했다. 관제탑 격인 본부석에서 착륙연습을 시키는 것이려니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2백m 상공에서 기름이 떨어져 비상착륙한 것이었다. 조종사가 이륙 전에 연료계기를 미쳐 확인하지 않은 실수를 범한 것이다. 웬만한 비행기가 이런 상황을 당했다면 추락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섀도의 뛰어난 활공력으로 추락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비행기는 1천5백m 상공에서 엔진을 끄면 21㎞를 글라이더처럼 바람을 타고 날다가 가볍게 착륙할 수 있다.

 기자가 조종석 뒷자리에 시승했을 때의 느낌은 환상적이었다. 여객기와 같은 큰 비행기를 탈 때와는 전혀 달랐다. 마치 한 마리 솔개처럼 ‘날개를 달고 나는 듯한 쾌감’을 순간순간 실감할 수 있었다. 출발부터 이륙까지의 거리는 불과 1백20m, 하늘로 날아오르는 섀도의 몸짓은 아주 유연했다. 몽산포에서 남동쪽으로 20㎞쯤 날자 발 밑에 서산 앞바다 간척지와 현대그룹의 대규모 공장부지 건설현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때 강풍이 불자 섀도는 약간 흔들렸다. 곧장 바람을 타고 넘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나 균형은 조금도 잃지 않았다. 섀도는 태안읍 부근 상공을 미끄러지듯 선회한 뒤 되돌아와 백사장에 부드럽게 안착했다. 이 비행기의 이·착륙은 숙달된 조종사 한명이 탔을 경우 20m 활주만으로도 가능해 웬만큼 굴곡이 있는 왕복 2차선 도로에서도 뜨고 내릴 수 있을 정도이다(섀도 제원은 57쪽 사진설명 참조).

 섀도의 성능은 이미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 귀순용사인 이웅평 소령이 섀도의 앞 양날개 모양을 본 뒤 “초경량비행기가 전투기처럼 아래로 처져도 날 수 있느냐”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공군사관학교 교수인 장덕수 박사는 직접 조종을 한 뒤 “훈련기로 쓸 수 있을 만큼의 성능을 가졌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섀도는 지난해 10월 국군의 날 기념행사 때 민간인이 손수 조종한 유일한 비행기로 에어쇼를 선보이기도 했다.

 섀도는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된 영국의 무명 항공기설계사 데이비드 쿡에 의해 82년 처음 만들어졌다. 당시 34세이던 그는 ‘가장 안전하고 값싼 비행기’를 만들어보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먼저 동네 뒷산에서 행글라이더에 엔진을 달아 날아보는 체험비행부터 시작했다. 수십차례의 비행을 하면서 안전하게 날 수 있는 비행기를 마드는 기술을 스스로 익혔다. 그는 자기집 비좁은 지하실에서 설계를 한 뒤 직접 나무를 깎아 프로펠러를 만들었고, 동체와 날개는 무게를 가능한 한 줄이면서 강도를 높이기 위해 틸라니움 하나콤 등과 같은 첨단소재를 일일이 손질해 단장시켰다. 이렇게 만든 날개의 버팀힘은 미니 승용차 3대의 무게를 견딜 만큼 강했다. 그리고 동력은 소형 농기구에 흔히 장착되는 2행정급 38마력자리 엔진(오스트리아 제품인 로텍스 447)을 탑재하여 해결했다. 그는 완성된 섀도를 비좁은 지하실 문에서 꺼내기 위해 4개의 작은 핀과 쇠막대를 이용해 긴 앞 양날개를 쉽게 분해·결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 착상으로 섀도의 앞 뒤 날개는 15분만에 분해 또는 결합할 수 있게 됐고, 지상 이동시에는 작은 컨테이너에 싣고 승용차로 끌고다닐 수 있게 됐다(56쪽 사진들 참조).

한국에 유리한 고부가가치산업
 섀도는 환성단계에서 데이비드 쿡과 함께 실업자가 된 동료 제도기술사 1명의 도움을 조금 받은 것 말고는 그 혼자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섀도는 87년 권위있는 영국 설계협회상을 받았고, 그 성능과 안전성이 어떤 경비행기보다 우수함을 인정받았다. 앞날개가 전투기 모양으로 만들어진 강점 때문에 초경량비행기로는 상상도 못할 360도 회전비행을 해낼 만큼 높은 기동력을 갖고 있다. 또 소형승용차 무게의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섀도가 런던에서 호주까지 1만9천㎞를 비행하는 최장거리 기록도 세웠다.

 이런 경이적인 기록으로 데이비드 쿡은 영국의 황태자만큼 유명한 인사가 됐다. 영국 왕실의 필립공이 87년 섀도 1대를 아프리카 짐바브웨에 기증해 물소떼 보호기로 사용하게 한 뒤로부터 단순한 레저용에 그치지 않고 산림보호 씨앗살포 농약방제 실종자수색 국경감시 저공사진촬영 등 갖가지 용도에 사용되고 있다. 섀도는 이미 2백50대가 생산돼 지구촌 곳곳에서 날고 있다.

 한국에 섀도가 알려지게 된 것은 지난 88년 4월 월간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소개되면서이다. 그러나 국내 항공업계에서는 이 기사에 무관심했다. 오히려 항공산업과는 전혀 무관한 朴浩善씨(47·중소무역업)가 강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지난해 봄 영국에 가서 데이비드 쿡을 만나 설계도와 재료 2세트를 들여오면서 한국에선 처음으로 ‘손수비행’의 문을 열었다. 그는 귀국한 뒤 ‘오로지 날아보고 싶어하던’ 친구 5명과 함께 서울 신사동 사무실 창고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품을 가공·조립했다. 전문가의 도움 없이 어려울 것이라는 데이비드 쿡의 걱정을 극복하고 불과 한달반 만에 이들은 국내 1호기를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같은 해 5월 영국에서 온 시험비행사의 테스트 결과 아주 우수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박씨는 섀도를 혼자만 즐길 수 없다고 생각해 1세트를 더 들여온 후 2대를 더 만들면서 많은 부품의 국산화와 부분적 개량에도 성공했다. ‘섀도의 놀라운 성능은 직접 타보지 않고는 확인할 수 없다’고 이 작업에 참여한 최문호씨(40·모형비행기 제작사)는 말한다.

 박씨는 “섀도를 만들어 장사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우선 비행기는 무조건 만들기 어려운 것이며 비싸고 위험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한국 항공산업이 발전하기 위해 곡 필요한 항공인력의 저변확대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한다.

 박씨는 기업화하는 데 매우 신중한 눈치이다. 우선 채산이 맞으려면 적어도 연가 50대 이상을 팔아야 하는 지금으로서는 내수시장이 극히 좁다는 데 제한성이 있다. 물론 일본 호주 같은 나라에서 심심찮게 문의를 해오고 있어 기업화가 불투명한 것만은 아니다. 박씨는 비전문이 비행기를 자체조립해 부품개량까지 한 것에 대해 적이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의 시기 대상이 되는 것을 내심 꺼리는 눈치이다. 그 때문에 그동안 섀도는 언론에 몇차례 보도되긴 했으나 레저용 정도로만 소개됐다. 이번 취재 때에도 박씨는 나서기를 싫어하며 자신과 회사 이름은 빼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박씨의 열정과 섀도의 놀라운 성능을 높게 평가한 정부의 책임자 몇이 초경량비행기산업의 장래성을 인식하고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주려 하는 데 박씨가 큰 위안을 받고 있다고 비행훈련을 맡고 있는 김병생씨(40·섬유업)는 귀띔한다.

 정부가 추진중인 7개 첨단산업(G7)의 중점육성사업 가운데 항공산업 분야에 초경량비행기도 포함돼 있다. 항공산업 분야의 기술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항공우주연구소 김종철 박사는 “70년대 하반기 이후 세스나와 같은 경비행기는 미항공국의 까다로운 규정에 맞춰야 하는데다가 값이 비싸고 유지관리에도 어려움이 많아 개발이 퇴조한 반면, 초경량비행기는 최대 허용무게가 89년부터 1백80㎏에서 2백25㎏으로 상향조정된 것을 계기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면서 초경량비행기를 전망있는 산업으로 내다봤다.

 대학에서 항공과를 졸업한 뒤 곧바로 섀도 제작에 참여한 유일한 전공자인 곽영호씨(27)는 “항공기는 아무리 선진국이라 해도 자동화·대량생산이 불가능 한 제품이다. 선진 굴지의 항공사에서도 모든 비행기를 여러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만들 수밖에 없다. 손재주가 있는 인력이 풍부한 한국에서 아주 유리한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본다”고 말한다. 박호선씨는 “대만이 3년 전 초경비행기산업을 키우겠다는 계획 아래 갑자기 국내시장을 여는 바람에 미국 제품이 쏟아져 들어와 자국 항공산업을 위축시키고 말았다”면서 “적어도 우리는 그런 우를 범해선 안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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