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빠진 國監 목청만 요란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1.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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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부실 등으로 “따져봐야 70% 지는 싸움” …여야 상호불신에 알맹이 없는 공방전만

 추석 연휴 다음날인 9월24일 오후, 국정감사 준비로 부산한 민주당 鄭均桓 의원(내무위원회 소속) 사무실에 경찰청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추석 잘 쇠셨습니까? 의원님 질의서가 다 작성되었는지 궁금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서울대 학생을 증인으로 신청하신다는 말이 있는데 그 학생 이름 좀 알 수 없을까요?”

 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를 하루 앞두고 경찰청의 국회 담당관이 때늦은 추석인사도 할 겸 사전에 정보를 입수해볼 요량으로 넌지시 전화 다이얼을 돌렸던 것이다. 서울대 대학원생 韓國垣씨 사망사건과 관련해 야당의 총공세가 예상되는 만큼 감사를 받게 된 경찰청으로서는 나름대로 방어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20일 동안 실시되는 이번 국정감사 기간중 내무위가 감사할 정부기관은 내무부 서울특별시 경기도 등 5개 행정관서와 경찰청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포함해 모두 7개 기관이다. 국감 기간 중 한국원씨 사건이 터져 초점은 자연히 경찰청에 맞추어지게 되었다.

 내무위는 일명 ‘정치위원회’로 통한다. 내무위 소관 업무가 권력중추인 내무행정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데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국정감사 때마다 여야 의원이 날카롭게 대립하거나, 기관장과 야당의원들 사이에 아슬아슬한 설전이 오가는 등 다른 상임위원회에 비해 얘깃거리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감사 준비단계에서 행정기관의 자료를 받아낼 때도 비해 상임위에 비해 몇 곱 힘이 든다. 권력부서로 일컬어지는 내무부의 경우는 아무리 빨라도 감사 3~4일 전쯤 감사가 임박해서야 자료를 내놓기 일쑤다.

 정의원의 정책보좌역을 맡고 있는 曺基泳 비서관은 “다른 상임위에서는 행정기관에 자료를 신청한 후 늦어도 5일 안에 자료를 받을 수 있다. 그 자료를 검토한 후 분석된 내용을 토대로 2차 자료를 신청하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내무위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감사가 임박해서 자료를 받거나 그나마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 자료를 받기가 일쑤다. 그 때문에 감사현장에서 의원이 직접 신청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다른 상임위의 야당 의원 대부분도 행정기관이 제출한 국감자료가 부실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정균환 의원의 경우 국정감사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 중순부터. 자료는 크게 세가지 방법을 통해 준비되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료다. 평소에 분야별로 정리해놓은 신문 스크랩을 검토하거나 행정기관을 출입하는 일선 기자를 통해 정보를 입수한다. 두번째는 지난해 국감 때 지적된 내용이 시정되었는지를 확인해 이행되지 않은 점을 다시 부각시키는 작업이다. 세 번째는 제보다. 주로 하급공무원을 통해 들어오는 제보의 대부분은 제보자 개인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고 반드시 확인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한달가량 걸린 이 1차 준비단계에서는 각 행정기관에 요청할 자료목록이 작성되었다. 8월 중순부터는 본격적인 2차 준비단계에 돌입한다. 보좌진 외에 과거 정책보좌의 경험이 있거나 기자 출신으로 발이 넓은 사람 등 별도의 외부 인력을 보강시켰다. 이른바 ‘외인부대’를 투입시킨 것이다. 정책 보좌 인력 5명과 통계자료 수집·검토를 담당하는 아르바이트 대학생 3명 등 모두 8명의 인원으로 회관 사무실에 감사본부를 설치했다. 매년 국회 부근 호텔에 따로 방을 잡아 밤샘 작업을 했으나 올해에는 회관 사무실만 쓰기로 했다.

요청 자료 나흘 전에 3분의 1만 도착
 보좌진 5명은 한 기관당 5개 정도의 질의 항목을 작성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각 기관에 자료제출을 요청하는 이때부터 감사위원인 의원과 행정기관 사이에는 불꽃튀는 신경전이 전개된다. 제출자료 목록을 받은 기관에서는 ‘자료가 너무 많으니 일부는 빼달라“고 엄살을 부리거나 ”도대체 어디다 쓰려고 이런 자료를 요구하느냐“고 은근히 압력을 넣기도 한다. 내무부의 한 과장은 전화를 걸어 ”직접 찾아뵙겠다“고 애걸조로 나왔고, 정의원은 ”오지말라. 와도 소용없다. 자료나 제출하라“고 호통을 쳤다.

 정의원실에서 내무부에 자료를 요청한 날짜는 9월5일. 모두 1백94건의 자료를 요청했다. 자료가 정의원실에 도착한 날짜는 9월26일. 9월30일의 내무부 감사 나흘 전에야 도착한 것이다. 더구나 요청 자료의 3분의 1밖에 안되는 5백81쪽 분량뿐이었다. 대부분의 요구 자료는 ‘양해하여 주십시오’‘추후 제출토록 하겠습니다’라는 등의 단서가 붙어 제출되지 않았다.

 불충분한 자료와 짧은 준비기간, 터무니없이 적은 인력. 국정감사는 준비단계에서부터 많은 문제점을 안고 출발한다. 9년째  야당 국회의원을 보좌하고 있는 ㅅ보좌관은 “현행 제도로 국정감사를 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말한다. 평균 2~3년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보좌관이나 비서관이 국감 때마다 행정기관 2개 정도를 맡아 총괄적으로 감사준비를 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국감 1주일 전부터 보좌진은 밤을 새워 질의자료를 준비하지만 막상 감사장에 가게되면, 자료를 풍부하게 보유하고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행정관료들에게 번번이 당하게 마련이다.

 정의원은 내무부 관료들을 “기막힌 머리를 가지고 있고 발톱이 난 사람들”이라고 평한다. 한마디 질의를 하면 수십가지 자료를 내밀면서 완벽하게 방어를 하기 때문에 확신이 서지 않는 사안에 대해서는 아예 건드리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그는 “이쪽에서도 완벽한 자료를 가지고 덤벼들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백전백패다. 또 장관 문책감인지 처장 문책감인지 사안의 경중을 분명하게 가려서 완벽하게 질의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되치기’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한다.

 조기영 비서관은 “따지고 싸워봐야 70%는 지는 싸움이며, 특히 3당합당 이후에는 번번이 참패할 뿐”이라면서, 민자당 탄생이후 정부 여당이 얼마나 고자세가 되었는지 실감할 수 있는 한가지 사례를 지적했다. “3당합당 전에 시국치안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각 경찰서의 과별 계급별 인원파악 자료를 요청한 적이 있는데 금방 자료를 보내왔다. 시국치안에 동원되는 경찰의 숫자를 파악하기 위해 이번 국감에서도 똑같은 자료를 요청했으나 아직도 받지 못했다. 비밀자료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제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야당 의원의 ‘물고늘어지기’식의 감사태도는 여당 의원들의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다. 사안의 핵심은 건드리지 못하고 정치 공세만 펼친다는 것이다. 민자당의 내무위소속 ㅇ의원은 “야당 의원들의 감사태도를 보면 국정감사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한다. 야당 의원들도 할말이 많다. 민주당 내무위 간사인 崔洛道의원의 항변. “꼬치꼬치 물고늘어지면 무조건 폭로성 질문이니 정치공세니 하고 공박하는데, 야당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목차만 나열한 자료, 두루뭉술한 회피성 답변, 여당의 구태의연한 지연작전이 먼저 개선되지 않는 한 국정감사는 계속 헛돌 수밖에 없다. 감사장에서 목청을 높이면 무조건 ‘저 사람 뭔가 바라는 게 있다’고 보는 시각도 문제다.”

“국감 때 선거자금 마련” 소문도
 감사자료를 준비하는 행정관서에서도 국감 때마다 불평불만이 터져나온다. 야당 의원들이 꼭 필요한 자료만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요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상 업무가 마비되다시피한다는 것이다. 감사자료를 준비했던 내무부 기획관리실의 한 실무자는 “야당 의원들끼리도 전혀 협조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중복된 자료나 불필요하게 많은 자료를 요청하는 일도 많다. 어느 여당 의원은 아예 자료요청을 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경찰청 감사자료를 준비했던 기획관리실의 한 간부는 오히려 느긋해 했다. “경찰청 독립 이후 처음 받는 감사이기 때문에 야당 의원들의 요청 자료가 많을 줄 알았는데 한국원씨 사건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바람에 이번에는 수월하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국감 철만 되면 국회 주변에는 으레 “○○의원이 필요하지도 않은 자료를 일부러 요청해 소관 부처에서 ‘돈보따리’를 싸들고 오게 만들었다” “○○의원의 질의내용을 보니 벌써 ‘한몫’ 챙긴 것 같다”는 말이 떠돌아다닌다. 이번 국정감사도 예외는 아니다. 14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회의원들이 피감사기관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떠돌아다니고 있다.

 여야 의원간의 상호 불신은 감사현장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업무 전반에 대한 감사는 뒷전으로 밀어둔 채 한국원씨 사망 사건에만 매달려 이틀간의 감사일정을 모두 써버린 경찰청 감사에서도 여야 의원간의 지루한 공방전은 감사장에 출두한 40여 경찰청 간부들의 빈축만 샀다. 경찰청 감사 이틀째인 9월26일, 참고인 채택 문제를 둘러싸고 여야 간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아 정회가 계속되던 끝에 오후 5시30분이 돼서야 감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협상과정에서 양당 간사들은 중앙당과도 긴밀한 연락을 취했다. 각 중앙당에서는 율사 출신들이 법리문제를 검토해가며 당 수뇌부와 협의해 감사현장에 지시를 내리고, 감사현장에서는 간사들이 당 지시에 따라 자기 당 의원들의 발언내용과 수위를 조절하게 된다.

 감사가 진행되는 동안 의원석 뒷자리에 마련된 보좌관석도 분주하게 마련이다. 의원의 질의 초점이 빗나갈 경우 쪽지를 들이밀어 ‘경고’하기도 하고, 갑자기 필요하게 된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급히 사무실로 연락을 취하기도 한다. 보좌관끼리 “○의원, 현재 4전3패”라고 의원들의 질의 폄점을 매기기도 한다. 네가지 질의한 것 중에서 세가지를 역전당했다는 것이다.

 총기 오·남용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질의서를 준비해두었던 정균환의원은 질의순서만 기다리다가 결국 서너번의 보충질의로 만족한 채 경찰청 감사를 끝내야만 했다. 초선인 정의원은 이번 국정감사를 13대 국회 활동의 결산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국정감사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서도 ‘속빈 강정’ ‘소리만 요란한 빈수레’·‘말싸움으로 시종일관’이라는 부정적인 평을 듣는 것이 그는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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