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남한에 사는가
  • 경남 양산·정기수 기자 ()
  • 승인 1991.10.1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남 양산 맹수 출몰 … 주민들 “봤다” 전문가 “잘해야 표범”

 1911년 전남 영광군 불갑산(5백60m)에서, 1921년 경북 경주시 토함산(7백45m) 능선의 대덕산(2백20m)에서 한 마리씩 포획된 이래 70년 동안 우리 눈앞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 한국호랑이.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이 영물의 출현을 기다리는 마음이 너무나 큰 탓으로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소동’이 해마다 끊이지 않고 벌어진다.

 최근 경남 양산구 기장읍과 일광면 일대에서 시끄러운 호랑이 얘기도 그런 예의 하나이다. 부산 동래에서 동해안 쪽으로 약 15㎞ 떨어진 양산군 기장읍 만화리 동서부락(60여 가구) 주민들은 지난 5월부터 마을 뒷산 대밭골 주변에서 밤마다 비치는 이상한 불빛을 여러차례 발견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같은 이 불을 동네사람들은 범눈불(호랑이 눈에서 발사되는 강렬한 빛)이라고 믿고 있다.

“멧돼지 등 산짐승 없어졌다”
 범눈불이랑 없으며 짐승의 눈이 달빛에 반사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전문가들의 견해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1~2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 뒷산이 이어지는 일광산(3백50m) 일대에서 멧돼지 노루 토끼 다람쥐 등이 많이 잡혔으나 지금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며 큰 짐승이 나타난게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8월말에는 이 맹수가 한 주민의 눈앞에 나타났다. 저녁 7시30분경 대밭골 옆 부추밭에서 일하던 정선옥(52)가 10여m 앞 대밭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 쳐다본 순가, 큰 개만한 짐승이 꼬리를 끌며 잽싸게 숲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정씨는 이 짐승이 사라지면서 대나무 한 그루를 앞발로 밟아 “딱” 소리와 함께 부러뜨리는 것을 보고 혼비백산, “호미고 무엇이고 다 놔두고 집까지 한걸음에 도망쳐왔다”고 말했다.

 9워8일 아침 주민 송일득씨(78)는 뒷산에 붙은 자신의 채소밭에서 예사롭지 않은 짐승의 발자국(사진)을 발견했다. 신고를 받은 송인권씨(46) 등 기장읍사무소 직원들이 조사한 결과 그것은 호랑이 사자 표범 살쾡이 등 고양이과 동물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발가락 4개가 둥그렇게 찍히는 이른바 국화모양의 발자국이었다.

 앞발과 뒷발의 간격이 80㎝에 발자국의 크기가 지름 12㎝, 깊이 1.5~2㎝의 큰 것과 고양이 발자국만한 작은 것이 모두 20개나 나있었는데, 읍사무소측은 1백㎏이 넘는 어미짐승과 새끼 두 마리가 먹이를 구하러 밭으로 내려와 배회하다 산으로 올라갔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3일 후 기장읍에서 약 4㎞ 거리에 있고 같은 일광산 줄기 산골 마을인 양산군 일광면 삼성리 후동부락에서도 신복남씨(57·여)가 이상한 짐승을 목격했다.

 신씨는 저녁 6시경 파밭에서 일을 마치고 산을 바라보며 쉬다 “크기는 개만했으나 목덜미가 굵직하고 머리가 무섭게 생긴 짐승이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고 집으로 달려왔다”는 것이다. 밭일을 나설 때마다 앞장섰던 신씨의 개가 이날 이후 한번도 따라나서지 않고 있다. 최근 성묘하러 갔던 동서부락 정지수씨(36)는 숲속에서 맹수가 뜯어먹은 것으로 보이는 노루 뼈와 가죽을 발견했다. 또 산채와 약초를 캐러 다니는 사람들이 숲속에서 민첩하게 도약하는 큰 짐승의 모습을 보았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현장에 나타난 발자국의 모양과 크기, 보폭(80㎝)은 호랑이의 것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먼발치에서 본 것이라고 해도 크기가 “개만 했다”는 것과 “누루무리 또는 거무리했다”는 정씨와 신씨의 목격담으로 미루어 길이는 2.5~3.3m 키 96㎝ 몸무게 1백80㎏~ 2백30㎏에 고유의 얼룩무늬가 있는 호랑이는 아닌 것 같다는 것이 전문가의 ‘감정’이다.

 서울대공원 김정만 동물부장은 “남한에 호랑이는 없다”며 “아마 살쾡이를 잘못 본 것으로 짐작되고, 희귀 맹수라고 하더라도 표범 이상은 아닐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표범 반달곰 등은 지리산 가야산 등지에서 발견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양산의 호랑이 얘기도 그러므로 한낱 소동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멸종이 확실하다면 ‘부활’을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한 호랑이 애호가는 낭만적이지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지리산 태백산 등 심산유곡의 처녀지를 철저히 보존한 다음 북한에서 백두산 호랑이 몇 마리를 분양받아 방생하면 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