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특별법에 제주 民火山 폭발
  • 제주·정기수 기자 ()
  • 승인 1991.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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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 제정추진…주민 “재벌 위한 법” 범도민 궐기대회 열고 “상경투쟁도 불사”

 우리나라 관광지 가운데 제주도만한 곳이 없다는 데에 의견을 달리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성산일출봉의 비탈진 잔디밭을 꽉 메운 신부들의 한복 물결이 상징하듯 제주도는 이 땅에서 가장 기념할 만한 장소이고, 그래서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그 신부와 신랑들이야 이국적인 자연을 마음껏 즐기고 육지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제주도 사람들은 요즘 새로 제정될 법 하나를 둘러싸고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제2의 4·3’ ‘신판 제주보호조약’이라고까지 일부에서 표현되며 제주도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그 법이란 정기국회에 상정될 예정인 ‘제주도개발 특별법’이다.

 제주도는 지난 60년대 초부터 30년 동안 각종 개발이 끊임없이 진행돼왔다. 최근에는 85년부터 올해까지 제1차 제주도종합개발계획이 이뤄져왔고 내년부터 오는 2001년까지는 이른바 ‘하와이형 개발’문제로 논란을 빚은 제2차 제주도종합개발계획이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금까지 개발과정에서 제주도는 어는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국민관광지로 잘 가꿔진 측면도 있으나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개발이익에서 주민이 배제되는 부정적인 모습도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특별법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 여당의 주장은 이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 입법취지라고 한다. 그런 반대하는 쪽에서는 주민이익에 반하는 개발을 종전보다 더 편리한 방법으로 가속화하는 것이 특별법 추진의 진짜 의도라고 보고 있다.

 특별법 논란은 지난 89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보고서를 통해 제주도개발특별조치법(특조법)이 필요하다고 건의한 데서 비롯됐다. 이후 대통령 지시→당정협의회 논의→도·국회·건설부 시안작성→공청회 순서로 특조법 제정을 위한 추진작업이 진행됐다. 올 들어 제주도는 그 명칭을 특별법을 바꾸고 초안작성을 위한 기초소위원회를 구성, 지난 6월 여기에서 마련된 최종시안을 가지고 공청회를 열었다.

여론조사 결과 주민 70%가 반대
 이즈음 다수 도민들을 중심으로 ‘제주도 개발특별법 제정반대 범도민회’가 구성돼 찬반 양쪽의 갈등은 급속도로 증폭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19일에는 매립문제로 시끄러웠던 탑동에서 범도민회 주최로 도민 3천여명이 모여 ‘제1차 범도민 궐기대회’가 열림으로써 갈등은 이제 거리에서의 격돌로 발전하는 모습니다. 추진과정에서 보듯이 철저히 관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특별법은 그 내용에서 무슨 문제가 얼마만큼 심각한 것인가. 최근 <제주신문>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약 70%가 실질적인 반대의사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 법의 문제점을 반대쪽에서는 이렇게 지적한다.

 특별법은 첫째 외지 재벌의 자본과 힘에 의한 개발을 주 내용으로 하는 제2차 제주도 종합개발계획을 “조급히” 추진시키기 위해 만들어지는 법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주민을 배제한 데 따르는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행정절차의 간소화 등 제2차 종합개발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특별법이라는 주장이다. 그 예로 특별법은 많은 ‘독소조항’을 숨기고 있다는 것인데, 제20조(다른 법률과의 관계) 1항에서 사업시행자가 국토이용관리법상 ‘용도지역의 행위제한’을 받지 아니하게 한 규정은 자연환경 보전지역과 산림 보전지역 등을 규제없이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20조3항은 도지사가 개발사업 시행에 있어서 관광진흥법 공유수면매립법 등 7개 현행법의 인허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함으로써 개발사업자에게 쉽게 인허가를 해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는 것이다.

 도민들이 특별법을 “재벌 위주의 개발정책을 일방적으로 보장하는 법”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제주도의 땅이 이른바 ‘외지인’, 특히 재벌에 의해 상당부분 소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땅과 자본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개발주체가 될 수 있다는 특별법의 내용은 주민을 참여시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결과적으로 대규모의 땅과 대자본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제주대 한석지 교수(행정학·범도민회 공동대표)는 “제주지역 개발은 주민참여에 의한 주민복지를 실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개발이 아닌 주민주체의 원칙, 산업 균형발전의 원칙, 환경보전의 원칙이 지켜지는 개발을 도민 모두는 바라고 있다”고 말한다.

정책 주류가 쾌락·위락 강화 방향
 남한 면적의 1.8%를 차지하는 작은 땅 제주도가 토지매점의 현장이 된 지는 오래다. 심지어 성산일출봉 분화구마저 서울의 모씨 소유로 알려져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국회와 제주도의회의 거듭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실태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야탕통합 이전의 평민당이 부동산투기조사반을 구성,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 땅 총 5억6천여만평 중 13.6%가 외지인 소유였고, 이를 다시 전체 사유지에 4억3천8백만평을 기준으로 보면 약 25%가 외지인 소유인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제주지역 언론의 보도로는 성산포 산천단 강정 남원 등 제2차 종합개발계획 주요 개발지구의 60~80%가 외지인 소유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해양 위락시설이 들어설 신양지역의 사유지 가운데 실질적으로 80% 이상이 제주도 주민이 아닌 다른 고장 사람들의 땅이라는 것이다.

 도민이 반발하는 또 다른 이유로 정책 주류가 쾌락과 위락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점이 꼽힌다. 지속적으로 국민적 비판을 받아온 기생관광 위주의 정책이 수정되지 않은 채 9개의 카지노와 20개의 골프장 건설로 도박과  골프관광의 비중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호텔 콘도미니엄 등 대형 숙박시설이 곳곳에 건설될 예정임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향후 20개의 골프장이 건설될 때 도 전체 면적의 1.2%를 차지해 ‘골프도’로 불리는 경기도 보다 더 많은 비율이 될 것으로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골프장 등 무더기 관광시설이 가져올 환경파괴에 대한 제주도민의 걱정은 다른 지역 사람들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섬 전체가 천혜의 자연경관을 가진 탓이기도 하지만 화산으로 만들어진 특수한 땅이라는 점이 주민들을 불안케 하는 주요인이다. 그 중에서 지하수 문제는 가장 심각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아래 관련기사 참조).

법 추진쪽 “주민에게 개발이익 돌아간다”
 이처럼 갖가지 문제를 야기시키는 제주도의 향후 개발을 ‘촉진하는’ 특별법을 만든다니 반대여론이 비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법을 추진하는 쪽이 주장하는 논리는 정반대다. “오히려 그 동안의 무분별한 개발에 규제를 가하고 주민들이 참여하고 주민들에게 개발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제주도청에서 만든 도민홍보용 자료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첫째 지금까지 대단지로 광역지역을 지정하여 개발하던 방식을 버리고 앞으로는 모든 지역이 그 지역의 여건과 환경에 맞게 고르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개별허가 방식으로 개발사업을 인허가한다(지역균형개발).

 둘째 한라산 중산간 해안면 경승지 등 중요 지역을 보전지역으로 지정하고 보전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개발 예정지역을 찾아 개발을 신중하게 해나간다. 이를 위해 환경영향평가를 강화하고 아름다운 경관에 장애가 없는가를 검토하기 위해 새로 ‘경관영향평가제도’를 마련한다(자연환경 보전).

 셋째 과거 보호규제법이 없어 마음대로 뽑아쓰던 지하수를 허가제로 바꿔 보호할 것이며, 오염 짠물유임 등에 대한 예방조치를 강화하는 한편 많이 사용하는 시설에 대해서는 물값을 받도록 한다(지하수 보호).

 넷째 도민이 개발사업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어선을 이용한 유람선영업 수산물판매업 농산물가공업 승마장업 민박 관광농원 관광목장 관광토산품 등에 사업자금을 지원하도록 한다. 또 토지를 개발사업에 매각했을 경우 매장 등을 우선 경영케 하고 취업도 보장하도록 한다(도민 참여).

 다섯째 개발이익금을 1백% 제주도에 되돌아오게 하고 골프장 호텔 카지노 등을 이용하는 사람에게도 일정액을 내게 하여 개발기금으로 쓰도록 한다(개발이익 도내환원).

과거 개발에서 피해 커 불신 팽배
 제주도민은 물론 ‘뜻있는’ 타지역 사람들도 전폭적으로 동의할 만한 이같은 제주도청의 ‘홍보’에도 불구하고 반대여론이 거센 이유는 무엇일까. 제주도 강태훈 개발국장은 “뚜렷한 대안도 없이 반대한다”고 전제하면서 “기왕의 현행법으로도 제주도는 개발되는 것이다. 어차피 개발될 것,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만드는 법이 특별법이다. 돈 없는 사람들이 개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돈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한정된 수자원이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인데 왜 반대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하는 까닭은 과거의 개발사례에서 보여준 주민피해가 너무 커 불신감이 팽배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또 현실적으로 외지인, 특히 재벌이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데 어떻게 지역주민을 위한 개발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 같다.

 85년부터 시행된 제1차 제주도 종합개발의 과정에서 제주도 지역주민들은 일종의 ‘배신감’을 맛본 것이 사실이다. 중문관광단지의 경우 성천포라는 지역에 들어선 관광어촌이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호화 숙박시설로 둔갑한 것, 이때 고향을 잃게 된 11가구 중 8가구 주민이 날품팔이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그 구체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호부부들이 모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연애시절을 얘기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조상대대로 살다 할 수 없이 옮겨간 사람들은 지금 ‘개발의 허구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동쪽으로 제2차 중문개발이 진행되고 있어 1차 때보다 상대적으로 더 불리한 값으로 땅을 팔아야 할 형편에 있는 주민들의 큰 시름에 젖어 있다.

 주민들이 점포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도 불신받을 수밖에 없다. 표선민속관광단지의 경우 대규모 관광시설은 외지 재벌기업이 독점하고 있어 지역주민들은 소규모 사업체 운영조차도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주도뿐 아니라 전국 어느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현상, 즉 고도로 전문화된 쇼핑시설에 ‘촌사람’이 들어가 운영할 돈도 기술도 없어 마침내 포기하고 마는 지극히 당연한 귀결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어선을 유람선으로 띄울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발상 하나만 보자. 관광객들이 해저유람선 같은 것을 타지 다 떨어진 고깃배를 타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사탕발림만 하고 있는데 우리가 정부의 말을 과연 믿을 수 있겠는가.” 한 주민의 이러한 불신에서 보듯이 일부 바람직한 요소가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법은 전체적으로, 구체적인 조항보다는 “너희들이 하는 게 결국 그런 것 아닌가” 하는 무조건적인 ‘저항’을 받고 있는 듯하다.

 특별법 반대운동에서 나타나는 ‘범도민적’인 움직임을 두고 제주도민의 ‘배타성’에서 그 배경을 찾는 이들이 많다. 제주도는 제주도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 제천국민이 자랑스럽게 여기고 즐겨찾는 관광지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어느 정도 개발은 필요하며 주민들도 이것을 이해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배타성이 없지는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특별법 반대가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주도록 ‘육지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제주대 고창훈 교수(행정학)는 “특별법에 반대하는 도민의 뜻은, 추상적으로 얘기하면 그동안 정부의 개발철학에 관한 그들의 경험론적 해답”이라고 풀이한다. “가진 자, 힘있는 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돼 온 왜곡된 개발을 이제는 그만두고 제주의 역사 자연 문화에 걸맞는 독자적 개발방식을 찾고 싶은 것”이라는 논리다. 말하자면 제주를 보존하고 ‘제주다움’을 영속시키면서 그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개발을 요구하는 것이 어찌 ‘배타성’으로 설명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범도민회는 지난 7월22일 각계 인사 6백24명의 서명을 받은 이후 반대 분위기를 확산시켜 9월 1차 궐기대회에 이어 이달 20일경 제2차 궐기대회를 열 계획이다. 법안이 심의·상정될 이달말부터는 ‘상경투쟁’도 벌이겠다는 범도민회의 ‘특별악법 저지 일정’을 볼 때 제주도 개발 특별법은 멀지않아 전국적인 여론을 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때 가서는 아마 그동안 심심찮게 거론돼온 정치자금 관련 루머가 유인물의 내용에 포함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부 여당이 재벌에게 경제적 이익을 보장해주는 특별법을 관철시킴으로써 향후 정치일정에 필요한 정치자금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라는 의혹이다. 전체 도민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 법을 13대 국회에서 강행 통과시킬지, 그렇다면 그 의도가 무엇인지에 제주도민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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