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초당외교 준비 미숙 ‘옥의 티’
  • 이흥환 기자 ()
  • 승인 1991.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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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순방중 고르비 옐친 바웬사로부터 푸대접

지난8월28일 러시아공화국의 대통령 의전실장 집무실.
 옐친 대통령 의전실장인 자가이노프와 두 명의 한국 정치인이 마주앉았다. 통역을 맡은 재소한인협회 부회장 한막스 박사가 자리를 같이했다. 전 신민당 총재특별보좌역 金琫鎬 의원과 통일국제위원장 趙淳昇 의원이 金大中 총재(당시 직함)의 소련방문에 따른 세부계획을 짜기 위해 자가이노프와 무릎을 맞댄 것이다. 자가이노프가 “며칠 전에 미국의 로옐로씨가 보내온 것”이라면서 길이 1미터 가량의 팩시밀리 문건을 두 의원 앞에 내놓았다.

 로옐로는 로비등록법에 따라 정식을 등록된 미국인 로비스트. 미국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30만명의 로비스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민주당 국제부장 출신의 자유주의파이며, 세게 각국 정치인을 상대로 코라손 아키노나 달라이라마 등 민선자유정부 지도자들과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 신민당은 워싱턴 한국인권문제연구소의 이영작 박사를 통해 평소 친분이 있는 로옐로에게 옐친 면담 주선을 요청했고, 로옐로는 그 제의를 받아들여 옐친측과 접촉했던 것이다. 로옐로는 한마디로 옐친 대통령 접촉을 위해 신민당이 고용한 공식 로비스트인 셈이다.

 자가이노프가 내놓은 문건에는 김총재의 이력과 활동내용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자가이노프 : 김대중 총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김의원 : 감사하다. 김총재가 9월22일에 유엔에 간다. 이번 외유중 소련에도 들를 예정인데 옐친 대통령과 만났으면 한다.
자 : 9월20일 이후에는 안 된다. 올 테면 20일 이전에 오라. 언제든지 좋다. 정확한 면담 날짜와 시간 장소는 금요일에 알려주겠다. 금요일까지 머물 수 있겠는가.
김의원 : 물론이다.
자 : 그러면 모레 아침 11시 정각에 다시 전화를 달라.
조의원 : 옐친 대통령을 면담할 수 있는가.
자 : 가능하다.
조의원 : 확실한 답법을 원한다.
자 : 20일 이전이면 언제든지 가능하다.

 신민당의 김·조 두 의원은 만족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가이노프와 헤어졌다. 이틀 후에 확정된 면담 일시와 장소를 통보 받는 문제만 남았을 뿐. 만난다는 원칙에는 양자간에 합의를 본 것이다.

모스크바식 외교 관례 모르고 일방적 낙관
 같은 날 오후 크렘린궁 앞에서 두 의원은 우연히 소련과학원 산하 미·캐나다연구소장인 알바토프 박사를 만났다. 알바토프 박사는 조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이며 동교동에서 두 차례 들른 적이 잇는 지한파 인사로서 소련 내 정치지도자들과도 깊은 교류가 있는 인물. 조의원과 알바토프는 서로 얼싸안고 우연한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조의원은 그에게 김총재와 옐친 대통령의 면담 가능성을 물었다. 알바토프는 “문제될 것 없다”면서 자기가 다리를 놓아볼 테니 “금요일 오전 9시30분에 전화를 달라”고 했다.

 금요일 오전. 두 의원은 자가이노프·알바토프와의 전화통화에서 “오케이”라는 답변을 받아냈다. 이제 김총재와 옐친의 면담성사 가능성에 대한 두 의원의 판단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서울 김총재에게 연락을 취했음은 물론이다.

 지난 9월17일에서 10월3일까지 17일 동안 소련 미국 폴란드 독일 4개국을 돌면서 김대중 민주당 공동대표가 만난 주요 정치지도자들은 80여명에 달한다. 소련에서는 셰바르드나제 전 외무장관과 소련 쿠데타 때 옐친 대통령을 탱크 위에 올라가도록 만든 당사자로 알려진 루츠코이 러시아 공화국 부통령 등 주요 정치인 20명과 만났고, 미국에서는  유엔총회 참석 기간에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폴란드의 상·하원의장, 바이체커 독일연방대통령과의 만남도 김총재의 해외 나들이를 돋보이게 했다. 그러나 김대표의 이번 외유 성과에는 썩 높은 점수가 매겨지지 않았다. 고르바초프 옐친 바웬사 등 세 대통령과의 면담이 성사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예로 든 김·조의원과 자가이노프와의 접촉 과정을 볼 때 옐친과 김대표의 면담은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왜 불발로 끝났을까.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외교관계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직접적인 이유는 옐친의 급작스런 심근경색증 발병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자가이노프와 김·조의원 사이의 대화록을 꼼꼼이 살펴보면 ‘불발될 수밖에 없는’ 정황을 읽을 수 있다. 우선 양측의 합의는 구두 약속 차원에 지나지 않았다. 문서가 아닌 구두 약속정도는 성사 직전 언제든지 파기되거나 보류될 수 있는 ‘모스크바식’ 외교 관례를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김대표측은 약속 사실을 낙관하고 일방적으로 면담 일정을 잡아버림으로써 차질을 빚었던 것이다. 김대표의 한 측근은 “로옐로 투입이 늦었던 것 같다. 선발대가 소련에 가기 두어달 전에 로옐로가 먼저 갔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대표의 이번 외유는 정부측의 사전 협조 없이 독자적으로 추진되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선발대의 두 의원이 모스크바에 간 것은 김대표의 소련방문을 불과 23일 앞둔 8월24일이었고, 선발대는 정부측의 방해 가능성을 예상해 “감출 것은 감춰가면서” 인맥을 동원해 독자적으로 소련 인사들과 접촉했다.

소련 호감 사기 위해 反쿠데타 성명서 제시
 고르바초프 면담 추진 과정에서는 뉴욕 북방연구소장 이창주 박사를 동원, 소련측과 사전 접촉을 꾀했다. 소련측 창구는 로가초프 외무차관. 김봉호 의원은 “로가초프와 처음 만났을 때 소련 쿠데타를 반대하는 내용의 신민당 성명서를 먼저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러시아어로 번역된 것을 소련측의 호감을 사기 위해 사전에 준비해둔 것이었다. 로가초프는 “고맙다. 그 내용은 이미 봐서 알고있다”면서 “오늘중으로 고르바초프에게 면담 요청 사실을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두 의원은 “정말 만날 수 있느냐”고 재차 물었다. “고르바초프 자신이 김대중 총재를 만나 경제협력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어한다”는 것이 로가초프의 대답이었다.

 김의원은 고르바초프, 옐친 면담에 대한 확신이 서자 다음 단계로 孔魯明 소련주재대사 등 실무자와 소련에서 활동하는 우리측 정보원을 접촉했다. 의전이나 숙박 등 나머지 일정에 대한협조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정부측 인사들은 놀란 표정으로 “정말 로가초프를 만났느냐”고 물으면서 “고르바초프가 제주도에 갔을 때 체류일정을 조정한 소련측 ‘실세’가 바로 로가초프”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김대표 일행은 소련에 도착하자마자 푸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공식 행사인 무명용사비 헌화 때는 아무런 의전 절차가 준비되어 있지 않아 붉은 광장에 있던 소련군인을 부랴부랴 돈을 주어 고용하기도 했다. 김대표측이 청와대나 외무부 등 정부측에 불만을 터뜨리는 것이 바로 이런 대목이다. 김대표의 한 측근은 “어느 나라를 가든지 김대표가 순방국에 도착해 우리 대사와 만나자마자 항상 먼저 꺼내는 말이 있다. ‘ 내가 이쪽 정부에 무슨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느냐’고 묻는 것이다. ‘야당 총재도 외국에 나오면 여다’이라는 마도 입버릇처럼 한다. 그런데 소련에서는 전혀 협조해주지 않았다. 야당의 초당외교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실감했다”고 말한다.

 김대표는 귀국 후 무엇보다도 바웬사 폴란드대통령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실에 대해 못마땅해 했다. 고르바초프나 옐친의 경우 소련 국내사정 등 상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으나, 바웬사는 “친구나 동지 같은 사이”임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아 상당히 불쾌했다는 것이다.

미국 독일에서는 큰 성과
 외무부 구주국의 한 실무자는 이번 김대표의 해외순방 성과가 “아주 좋다”고 평한다. “고르바초프 등을 만나지 못했다고 해서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셰바르드나제나 루츠코이 러시아공화국부통령 등 정치 실세들을 두루 만나는 등 소련에서의 성과는 좋았다. 특히 셰바르드나제의 민주개혁운동연합본부와 민주당이 자매결연을 하고 공동협력하기로 합의한 것은 괄목할 만한 성과”라고 말했다. 그는 또 김총재측이 불평하는 정부의 비협조에 대해 “정부나 대사관의 노력에도 한계가 있다. 한 나라의 야당총재를 만날 것인가 안 만날 것인가 하는 것은 고도의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판단에 속한다. 최종결정은 당사국이 하는 것이다”라면서 “의전 문제도 각국에 똑같이 의전협조를 요청했으나 국가마다 받아들이는 데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독일이나 폴란드의 경우에는 뚜렷한 초청자가 있었지만 소련은 그렇지 못했다”고 말한다.

 김대표의 이번 해외 나들이 중 미국과 독일에서의 활동은 성과가 컸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해외에 나가면 더 유명한 김대중’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는 것이다. 야당의 미숙한 외교 능력, 정부의 인색한 협조 등이 지적되는 가운데 김대표가 독일의 빌리 브란트 전 서독수상을 만났을 때 했다는 다음의 말은 야당의 초당외교 필요성을 절감하게 만든다.

 “이번에 통일독일에 와서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배우고 간다. 수업료는 우리나가 통일된 후에 지불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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