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교통 동맥경화 경제는 반신불수
  • 김상익 기자 ()
  • 승인 1991.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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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자흐름 막혀 생산비 증가·경쟁력 약화 사회간접자본 미비, 92년 손실액 31조원

 지난 9일 새벽 6시50분, 서울 영등포경찰서 건너편 대한통운 서울지사 사무실. 이른 시간인데도 운수차장·배차주임 등 직원 5~6명이 벌써부터 출근해 고단한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들은 오후 7시 퇴근하기까지 앞으로 12시간동안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교통과의 전쟁’을 치러야 할 판이다.

 배차주임은 무전기를 들고 그 시각에 각 지역을 달리고 잇는 화물차와 쉴새없이 연락을 취했다. 어느 도로가 잘 뚫리는지, 어느 구간이 막힐 것인지를 알아야 그나마 잘 빠지는 길로 화물차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7시20분 인천항르 향해 떠나는 서울7아3390호 11t 트럭에 동승했다. 이 차는 중국에서 수입한 녹두를 싣고 다시 서울로 와 용산 농수산물유통공사 창고에 부려야 한다. “4~5년 전만 해도 이렇게까지 일찍 떠날 필요는 없었다. 도로사정이 급속히 나빠지면서 새벽출근을 하지 않으면 화물을 실어나를 수 없게 됐다. 예전엔 서울~인천을 하루 2~3번씩 왕복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이 시간에 떠나도 한번밖에 짐을 못 실어나른다.” 11년째 화물차를 운전한다는 정형환 기사의 설명이다.

피돌기와 같은 물자의 흐름
 차는 목동 지하차도에서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8차선 확장공사가 진행중인 신월~부평 구간에선 시속 20㎞를 넘지 못했다. 부평을 지나서부터는 시속 80㎞로 밟을 수 있었다. 인천항에 도착한 것은 8시30분. 영등포에서 인천 부두까지 거리는 대략 33㎞이므로 상식적으로는 40분에 와닿을 수 있어야 하지만 화물차 운전기사들은 이미 ‘상식’을 포기한지 오래다. “보통 1시간30분 이상 걸리는데 오늘은 운이 좋게도 차가 잘 빠졌다. 월요일이 특히 심한데, 때로는 2시간 이상 잡아먹어 짜증이 난다”고 장씨는 덧붙인다.

 도로사정이 악화된 3~4년 전부터 기어들은 비로소 ‘물류’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물류란 ‘물적 유통’을 줄인 일본식 한자어이다. 상품이 생산돼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기까지 물자가 이동하는 흐름이라고 보면 된다.

 텔레비전이 소비자의 가정에 배달되기까지 물자의 흐름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아보자. 먼저 원자재를 확보해야 한다. 이들 원자재는 하역 포장 수송 작업을 거쳐 전국에 흩어져 있는 부품공장으로 흘러들어간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부품들은 다시 포장되어 화물차에 실린다. 이때도 차에 짐을 올리고 내리는 상하차 작업이 필수적이다.

 각지에서 생산된 각양각색의 부품들은 체증이 심한 도로 위를 엉금엉금 기어 조립공장에 도착한다. 조립이 끝난 제품은 창고에 보관되었다가 다시 전국의 대리점·백화점 등으로 흩어진다. 소비자가 주문을 하면 백화점이나 대리점에서는 텔레비전을 차에 싣고 골목골목을 찾아들어가 가정까지 배달한다.

 ‘물류’라 하면 얼핏 화물수송만을 떠올리게 되는데 사실은 포장 하역 보관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도로사정이 개선돼도 하역에서 시간이 지체되면 그 효과가 줄어들게 마련이다. 하역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창고에 보관된 각종 물품이 계통없이 어질러져 있다면 차에 물건을 싣는 것보다 찾는 데 더 많은 품이 풀어갈 것이다.

 포장도 규격화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를 보인다. 짐을 실을 바닥면적이 무제한으로 넓지 않으므로 제한된 공간에 더 많은 짐을 실으려면 포장의 규격화와 표준화가 필요하다. 가령 가로 2m 세로 5m 밑판에 집을 2.5개 실을 수 있도록 포장설계가 돼 있다면 큰 문제다. 0.5개짜리 물건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므로 그만큼 공간이 낭비되기 때문이다.

 물자의 흐름과 관련, 포장 하역 수송 보관에 덧붙일 중요한 개념이 하나 더 있다. 물류정보가 그것이다. 가령 어느 텔레비전 회사에서 대형 컬러텔레비전을 1백대 생산했다고 하자. 서울 등 5대 도시에 10대씩 공급하고 10개 중소도시에도 5개씩 내려보냈을 경우 대도시에서는 물건이 없어서 팔지 못하고, 중소도시에서는 반대로 물건이 남아돌 수 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부랴부랴 중소도시 물건을 대도시로 옮긴다 해도 이미 때는 늦다. 물류비용이 그만큼 더 들기 때문에 텔레비전을 1백대 다 팔아도 이윤이 줄게 되는 것이다. 기업이 물류정보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이같은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물자의 흐름이 막히면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피해를 입는다. 원하는 물건을 원하는 때에 공급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류관리의 합리화란 결국 서비스의 질을 더 높이면서 물류비용을 줄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류는 인체의 피돌기와 같다. 핏줄 속을 흐르는 혈액이 인체에 영양분을 공급하듯 도로와 철도와 항로라는 핏줄을 타고 물자가 생산되고 공급된다. 핏줄이 막히면 갑자기 혈압이 오를 때 혈액의 병목현상이 생겨 핏줄이 터질 수 있다. 그 결과 흔히 중풍이라 불리는 신체마비 현상이 온다. 우리의 경우 포장하역 보관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수송이다. 모든 길이 동맥경화증에 걸려 전 산업이 중풍을 맞은 듯 비틀거린다. 길이 막혀 기계를 못 돌리는 데다 수송비용마저 폭등해 자금압박이 심각하다.

늘어나는 수송비에 기업은 울상
 경기도 화성군에 있는 (주)풍진의 경우는 수송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대표적 사례이다. 풍진은 배합사료 전분 물엿 등을 만드는 회사다. 이 회사는 옥수수를 월 3만t씩 수입한다. 사료용 옥수수로는 배합사료를, 식품용 옥수수로는 전분과 과당을 만든다. 옥수수는 인천항에서 실어온다.

 “90년 후반까지 t당 3천3백원하던 수송비가 지금은 t당 1만3천원으로 올랐다. 전에는 8t트럭을 개조해 한꺼번에 27t씩 싣기도 했으나 과적단속으로 정량밖에 못 실어 필요한 차량 수도 세곱절 이상 늘었다. 그 때문에 더 교통이 막힌다.” 안태환 총부부장의 하소연이다.

 이 회사는 수원과 인천을 잇는 수인산업도로를 통해 옥수수를 실어나른다. 88년까지는 차 1대가 하루 2~3회전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도로가 막혀 1.5회전밖에 못하고 있다. 월간 3만t의 옥수수를 실어나르려면 8t짜리 화물차가 3천7백50회 왕복해야 한다. 월 24일 근무할 경우 하루 1백60회 가량 인천을 다녀와야 한다. 차1대가 하루 1.5회전을 하니까 화물차를 1백대 이상 확보 할 수 있어야 한다.

 ‘법대로’ 과적차량을 단속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회사측으로선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규정을 어겨 27t씩 옥수수를 싣고 하루 2~3회 인천을 왕복했을 때 화물차는 20대로 충분했지만 이제 그것은 먼 옛날의 얘기다. 원료 수송비만도 연 2억5천만원 증가했다.

 과당 등 제품을 수송하는 데도 어려움이 만다. 물엿을 탱크에 싣고 전국 각지로 수송하는 10t트럭 등 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차량은 88년 21대였으나 올해에는 40대로 늘었다. 이에 따라 차량유지비 인건비 일반관리비 등을 연간 5억원 가량 더 부담하게 됐다. 결국 풍진은 열악한 도로사정 때문에 원료수송과 제품수송에 연간 7억5천만원을 더 쓰고 있는 것이다. 풍진은 물류관리팀을 두어 지방에 하치장을 증설하고 심야수송을 늘리는 등 물류 관리를 위한 방안을 마련중이다.

 그렇다고 수송비를 높여 받는 운수회사만 원망할 수도 없다. 대한통운 서울지사 영업과의 백준석씨는 “11t 트럭의 경우 하루 15만원의 수입을 올려야 수지가 맞는데 서울~인천간 화물을 수송할 경우 하루 1회전밖에 할 수 없으므로 t당 1만원을 받아도 손해다”라고 말했다. 정부 물자의 경우 수송료는 현재 5천원(내년부터는 22% 인상)으로 묶여 있어 타산이 안 맞는다. 그래서 11t 트럭에 화물을 16t씩 싣기도 한다.

 교통체증은 차량회전율 감소를 낳고, 차량회전율 감소는 수송료 인상과 차량대수 증가를 낳고, 수송료 인상은 생산비 상승을 낳고, 차량대수 증가는 다시 교통체증 심화를 낳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도로·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부쩍 높아진 것은 이같은 사정 때문이다.

 6공 정부는 상대적으로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인색했다. 6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 기간중인 87~89년 사이에 정부가 교통부문에 투자한 금액은 모두 7조8천억원이다. 국민총샌산 대비 2.1%, 정부재정 대비 10.9% 수준이다. 6차 기간(82~86년(에는 모두 8조4천억여원을 지출했다. 국민총생산 대비 2.4%, 정부재정 대비 12.1% 규모였다.

 교통부문에 대한 투자가 인색한 가운데 자동차 수요는 급증했다 86년 1백30만9천대이던 자동차 대수는 89년 2백66만대로 갑절이상 늘었다. 이같은 차량대수 증가를 주도한 것은 역시 승용차였다. 같은 기간 승용차는 66만4천대에서 1백55만8천대로 90만대 가까이 늘어났다. 반면 도로 증가는 굼베이 걸음이었다. 86년의 우리나라 도로 총연장은 5만3천6백53㎞였는데 89년에는 5만6천4백81㎞로 3천㎞도 채 안 늘어났다. 80년대 후반부터 교통체증이 심각하게 된 것은 말 그대로 ‘뿌린 대로 거둔’ 결과였다(위 오른쪽 표 참조).

 지역간의 불균형 발전도 오늘의 교통난 가중의 한 원인이었다. 모든 불자의 60%가 수도권으로 몰리게 돼 있는 현상은 교통수요의 편중과 용량초과를 심화시켰다. 철도 도로 항만 항공 등 교통 전부문에 걸친 용량부족으로 인해 90년대 초반부터 수송능력은 한계에 이르렀다(위 표 참조). 수송의 지연은 기업의 자금부담과 대외경쟁력 약화를 가져왔다. 정부는 89년 현재 화물과 여객을 통틀어 교통체증 때문에 발생한 손실비용을 19조원으로 어림잡고 있다. 이 손실비용은 92년 31조원, 96년 43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국내 화물수송에 있어 철도의 역할은 점차 줄고 있다. 철도는 대량수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철도역에서 다시 짐을 부려야 하는 불편이 있다. 또 철도화물 수송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석탄의 이용이 감소돼 철도의 화물수송 분담률은 급격히 낮아질 전망이다.  89년 국내화물 수송에서 철도가 차지하던 비중은 18.7%였으나 91년에는 17.7%, 96년에는 14.5%로 감소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예측이다. 반면 도로·해운·항공의 비중은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 국내화물 수송의 63% 이상을 차지하는 도로수송의 경우 96년까지 연평균 4.7%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지금도 포화 상태인 도로가 수요를 따라줄지 의문이다.

 교통개발연구원의 신동선 연구원은 “산업화가 급속히 진전되고 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자동차 수요가 크게 늘었으나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는 이에 대비하지 못했다”면서 “2001년 이후 교통사정이 나아질 것”이라고 낙관론을 편다. 2000년대에는 서해안고속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이 확충되고, 자가용 승용차도 가구당 1대 이상 보급돼 교통수요 자체가 안정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그는 “도심지 진입 차량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등의 자동차 수요 관리 정책은 국민한테 인기가 없으므로 그 어느 정책책임자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면서 “앞으로 10년은 무척 고통스런 시기가 될 것인데 그 불편을 얼마나 잘 참아낼 것인가가 문제다”라고 걱정했다.

“물류는 제3의 이윤 원천”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되 효율적으로 쓰는 지혜도 필요하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상호보완관계를 가진 두 구간을 공사하면서 완공시기를 따로따로 잡을 경우 먼저 닦인 길이 제 기능을 못하는 수도 있다.

 수인산업도로와 교차되는 신갈~안산 고속도로는 91년말 완공될 예정이다. 이 도로는 94년 개통될 인천~안산간 서해안 고속도로와 연결돼 있다.

 두 도로가 완공되면 현재 심한 적체현상을 보이고 있는 수인산업도로도 다소 숨통이 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도로는 완공시기가 3년씩이나 차이난다. 따라서 91년 완공될 신갈~안산 고속도로는 94년까지 제 구실을 못하게 된다.

 안산 상공회의소 한승덕 차장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반월공단에서 밖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수인산업도로를 거쳐야 한다. 두 도로가 동시에 개통된다면 수원~인천 교통체증은 많이 완화될 것이다. 이같은 점을 고려하지 않은 투자에 문제가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생산물류로 박사학위를 받은 문상원 박사(럭키금성 경제연구소 경영컨설팅센터 실장)는 “우리나라 제품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제물류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국내기업들은 국내보다 임금이 낮고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나라에 현지공장을 세우고 있다. 외국의 수입장벽을 회피하거나 신시장 개척을 위해 해외로 진출하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도 물류를 체계적으로 살펴 공장입지를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미국시장을 뚫으려 할 경우 부품공장이나 조립공장을 세울 대 원자재를 어디서 공급할 것인지, 생산된 제품을 어떤 경로를 통해 미국으로 수송할 것인지, 비용과 시간을 세심히 다진 뒤 입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때 기업가는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가만히 앉아서 팔 수 있었다. 물건 주는 것만도 고마워 살 사람이 달려와 물건을 싣고 가기도 했다. 생산 그 자체가 이윤이었다. 그 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생산비 절감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게 됐다. 지금은 또 달라졌다. “물류는 제3의 이윤원”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다. 사회 간접자본에 대한 투자와 함께 각 기업의 물류 관리가 더욱 철저히 이루어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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