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더이상 龍 아니다
  • 장영희 기자 ()
  • 승인 2006.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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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세계경쟁력 보고서 평가/말레이시아에도 밀려 개도국 중 5위


 지난 1백년 동안 1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 20대 부국의 대열에 새로 들어선 나라는 일본뿐이다. 원유생산이라는 특수한 경우로 졸부가 된 나라들을 빼면 일본은 20세기에 가장 비약적으로 성장한 나라이다.

 앞으로 1백년이 지나면 이 20대 부국의 명단에 변동이 생길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레스터 더로우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경영대학장은 그의 저서 《대접전》에서 아시아 신흥공업국 중 한 나라가 ‘제2의 일본’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아시아의 ‘4마리 용’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후보는 싱가포르라고 했다. 한국은 유력한 후보로 지명되지 못했다.

 그의 예측은 설득력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스위스 최고경영자 재교육 기관인 IMD와  세계경제포럼(WEF)이 분석한 《92년 세계경쟁력 보고서》는 싱가포르를 개발도상국(이하 개도국) 가운데서 경쟁력 1위의 국가로 지목했다. 물론 일본은 세계 각국을 통틀어 경쟁력에서 최강의 위치에 있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스위스 IMD와 세계경제포럼의 세계경쟁력 보고서는 80년부터 발간되기 시작해서 올해에 12번째로 나왔다. 이 보고서는 경제발전에 대한 차이를 고려해 국가별 경쟁력을 선진국(23개국)과 개도국(14개국)이라는 두 집단으로 나눠 평가했다. 92년 보고서에는 파키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 베네수엘라가 개도국에 새로 포함되었고 선진국이었던 헝가리는 개도국으로 밀려났다.

 이 보고서에 비친 92년 세계경제는 경기침체로 몸살을 앓고 있는 모습이다. 일본은 국제화 부문에서 처음으로 구조적 취약점을 드러냈지만 여전히 1위 자리를 지켰다. 2위부터는 부침이 심하다. 독일은 미국의 상대적인 경쟁력 하락에 편승, 2위로 올라섰다. 미국은 오랜 경기 침체로 인해 91년 2위에서 5위로 밀려났다. 미국보다는 정도가 덜하지만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 나라로는 캐나다 영국 등이 있다. 반면 덴마크는 8위에서 4위로 도약해 올해의 ‘세계경제 총아’가 되었다. 이 보고서의 순위결정 기준은 1인당 국민소득 등이어서 인구가 적은 나라에 유리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개도국 그룹의 선두주자는 싱가포르이다. 지난해 4위였던 대만은 올해 2위로 부상했다. 한국의 국제경쟁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지난 90년 4위였던 한국은 91년에 3위로 올랐으나 92년에는 5위로 떨어졌다. 한국은 ‘4마리 용’의 대열에서 밀려났을 뿐만 아니라 4위로 뛰어오른 말레이시아보다도 경쟁력이 뒤떨어진 것으로 평가됐다. 국제경쟁력에 대한 우리 관심은 80년대 후반 경제사정이 나빠지면서 커졌다.

 경쟁력의 명확한 개념 정립은 아직 되어 있지 않다. 흔히 한 국가의 부존자원이 풍부해 생산 원가가 상대적으로 낮으면 국가경쟁력이 강한 것으로 평가하는 방식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생산원가는 경쟁력을 결정하는 여러가지 요인 중 하나에 불과하다.

 국제경쟁력을 가격경쟁력과 비가격경쟁력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나, 한 국가가 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시장점유율의 크기로 보는 것은 불완전하다. 생산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부문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려는 생각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조동성 교수(경영학)는 “국제경쟁력을 갖춘 산업이 다수 있고 그 국제경쟁력이 국가 내에 존재하는 고유한 원천 때문에 형성된 것일 때 비로소 그 국가가 경쟁력을 가졌다고 판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위스 IMD와 세계경제포럼은 한 나라가 가지고 있는 국제경쟁력에 대해 8가지 평가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등수를 정했다.

8가지 기준은 국내경쟁력, 국제화, 정부, 금융, 사회간접자본, 경영, 과학기술, 노동력 부문인데 이 8가지 기준 속에는 3백30여 가지의 갖가지 요소가 들어 있다. 이 기준은 국제적으로도 비교적 잘된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경쟁력

 한 나라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전통적인 방법이다. 국민총생산 ,경제성장률, 투자, 인플레이션, 자본형성, 돈의 가치 등의 거시지표를 통해 측정한다. 또 경제의 흐름이 얼마나 유연한가, 경제침체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따위도 반영된다.

 일본의 국내경쟁력 수준은 세계 최고이다. 독일 미국 아일랜드 오스트리아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개도국 1위는 싱가포르이다. 한국은 지난 5년 동안 가장 큰 실질 국내총생산 증가를 이룬 국가로 평가돼 2위에 올랐다.

국제화

 한 국가가 국제무역과 투자흐름에 참여하는 정도를 보여준다. 스위스 경영대학원과 세계경제포럼은 한 국가의 경쟁력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세계 시장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국제화부문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했다.

 국제화 부문 1위는 독일이다. 그 뒤를 네덜란드 덴마크 벨기에 아일랜드가 바짝 뒤쫓고 있다. 이런 나라는 시장개방을 많이 해 경쟁 순위가 향상됐다. 일본과 스위스는 보호주의를 고집한 까닭에 6위, 11위에 머물렀다. 미국은 10위에 그쳤다.

 개도국 1위는 싱가포르이며 그 다음이 홍콩 대만 태국 순이다. 한국은 말레이시아보다도  나쁜 평판을 받았다. 특히 외국 기업에 폐쇄적이며 보호주의 강도가 심해 순위가 지난해 4위에서 6위로 내려앉았다. 한국이 국제화 부문 중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해외직접투자와 무역이었다.

정부

 정부 정책이 경쟁력을 어느 정도 높이는가를 평가한다. 1위국은 뉴질랜드이다. 그 뒤를 독일 일본 미국 스위스가 쫓고 있다. 뉴질랜드는 지난해 8위에서 급부상했다. 미국은 로비스트의 영향력이 지나쳐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개도국 1위는 싱가포르이다. 홍콩 대만을 제치고 말레이시아가 2위로 부상한 것이 인상적이다. 한국은 6위를 기록했는데 세수부문만 유일하게 좋은 점수를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정부의 경제참여가 아일랜드와 일본에서는 긍정적 효과를 보인 것으로 평가 된 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부정적인 것으로 판정된 사실이다. 한국은 9위에 머물러 부정적 영향이 강한 나라로 지적됐다.

금융

 기업경영을 하는데 금융이 얼마나 뒷받침 해주고 있는가를 평가한다. 선진국 그룹 1위는 덴마크이고 스위스 네덜란드 일본 독일이 그 뒤를 잇는다. 개도국 그룹 1~3위는 싱가포르 홍콩 말레이시아 순이다. 대만과 한국은 이 부문에서 가장 취약성을 드러내 각각 7위, 8위로 처졌다. 한국은 주식시장 6위, 금융서비스 7위, 금융 효율성 10위를 차지, 전반적으로 성적이 부진했다. 한국은행의 한 임원은 “오랜 관치금융의 결과이다. 금융기관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은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가장 시급한 현안이다”라고 진단했다.

사회간접자본

 부족자원과 자원 재이용 정도, 정보·통신·수송 제도가 얼마나 잘돼 있는가를 평가한다.

노르웨이 미국 캐나다 스위스 등이 이 부문의 경쟁력을 주도했다. 천연자원만을 보면 호주가 1위를 차지했다. 일본은 천연자원은 풍부하지 않지만 컴퓨터 정보설비 로보트 등 생산 하부구조에서의 강점에 힘입어 5위로 올라섰다.

 2그룹에서는 싱가포르와 한국이 선두를 달린다. 한국은 천연자원에서는 10위이지만 생산하부구조에서는 2위, 지역개발에서 7위를 기록해 양호한 성적표를 받았다.

경영

 기업의 경영방침과 사업전망, 생산품의 품질과 가격, 노사관계 등 경영효율을 주로 평가한다. 경영부문의 1위는 역시 일본이다. 일본은 다른 경쟁국보다 빨리 제품개발을 시작하고 이것을 신속하게 시장에 내놓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뒤를 독일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이 따르고 있다. 미국은 9위에 머물렀다.

 2그룹에서는 싱가포르가 선두이고 그 다음이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순이다. 한국은 기업가 정신은 2위, 경영개발 수행은 3위로 좋은 점수를 받았으나 가격에 비해 품질이 낮고 소비자 지향성이 약한데다 신제품개발 등이 뒤떨어져 기업성과면에서는 6위 판정을 받아 전체 성적은 5위에 그쳤다. 한국 기업에 가장 부족한 점은 경영전문가에게 권한을 이양하는 정도가 낮고 장기지향성이 떨어지며 사회적 책임이 적고 이익률이 낮은 것 등으로 나타났다.

 이 부문에서 흥미있는 것은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영어권 국가는 단기적 보상을 추구하는 데 비해 일본과 독일어권 국가(독일 스위스 등)는 장기지향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이들 국가가 높은 경쟁력을 갖는 것은 한국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학·기술

 90년대 기업에게 생산활동과 기술개발의 연계는 피할 수 없는 숙제이다. 전세계 과학기술의 주도권은 일본과 독일이 쥐고 있다. 국민총생산과 대비하여 기술개발비가 많은 나라는 일본 스위스 핀란드의 순이며 인력면에서는 미국이 1위이다.

 2그룹에서는 대만이 이 부문에서만 유일하게 싱가포르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전체적인 기술개발에는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으나 핵심 산업의 기술개발, 상품기술, 금융 지원 요소에서 부진해 3위에 그쳤다.

노동력

 일본은 이 부문에서 최강자이다. 2그룹에서는 싱가포르와 한국, 대만이 선두를 이룬다. 한국은 고등학생 수 등 교육수준은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교육의 질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일본 싱가포르에 뒤져 있다. 한국의 노동자는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보상수준은 5위로 나타났고 삶의 질은 10위로서 열악한 상태이다.

 한국의 큰 강점으로는 여전히 질 높은 노동력이 꼽힌다. 사회간접자본 과학기술 등의 경쟁력도 좋은 편이다. 경제기획원의 한 고위 당국자는 “싱가포르는 도시국가이고 홍콩은 곧 주권을 상실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한다. 대만은 강력한 상대이지만 정치적 불안정이라는 약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올해 한국을 물리친 말레이시아에 대해서는 성장잠재력에서 비교대상이 못되며 화교가 경제권을 쥐고 있다는 점이 큰 약점이라고 평가했다. 이 당국자는 우리의 경쟁국은 일본 독일 등 선진국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종합 국가경쟁력에서 말레이시아에도 뒤져있는 상태다.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 교수는 그의 저서 《국가비교우위론》에서 “국가경쟁력의 원천은 각 나라가 처한 환경과 구조적 특성에 있다”며 이를 강화시켜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92년 세계경쟁력 보고서는 한국이 가진 경쟁력의 원천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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