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상가상, 발병난 신발산업
  • 부산. 김방희 기자 ()
  • 승인 1991.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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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임금 피한 동남아 진출, 섣부른 기술이전 화 자초

 지난 10월8일 오후 6시 부산 사상공단에 있는 국내 유수의 신발제조 업체인 ㄱ사의 생산라인, 작업반장은 딴 작업을 끝낸 여성근로자들에게 잔업을 할 것인지 물었다.  한 근로자가 작업을 할 수 없다고 하자 “내일이라도 나오기 싫으면 나오지 말라??는 반장의 ??엄포??가 떨어졌다.

  연쇄도산 위기를 맞고 있는 신발업체는 종업원과 성과를 최대한 줄여 감량경영을 해야 할 형편이다.  이 회사만 하더라도 한때 1백 28개 생산라인이었던 것이 현재 가동중인 것은 14개에 불과하다.  내년 상반기에는 10개 정도로 감축할 예정이다.  업계는 올해 들어 9백44개 신발업체 가운데 현재까지 1백20여개 업체가 문을 닫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신발업계 순위 10위 안에 들었던 아폴로제화가 부도를 내기에 이르렀다.  작년 신발수출액은 43억달러로 전체 수출액의 6.6%에 달했다.  이 액수는 업종별로는 세 번째였고 단일품목으로선 가장 많은 것이었다.  세계2위의 신발수출국 한국의 신발산업이 왜 이렇게 됐을까.

“책임감 때문에 못 망한다??
 신발산업에는 신발에 대한 해외의 수요가 오르내림에 따라 호황과 불황을 거듭하는 주기가 있다.  그러나 신발주문량의 20% 정도가 줄어든 요즘의 위기가 전적으로 주기적인 요인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업계 일부에서는 과거와 달리 해외에서의 주문이 회복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동남아시아 각국과 중국에 경쟁력이 뒤져 시장을 뺏기고 있기 때문이다.  금액을 기준으로 한 한국 신발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지난 88년 28.7%를 고비로 점차 줄어들고 있는데 반해 인도네시아 태국 중국의 점유율은 매년 2배 이상 증가하고 있다.

해외 수입업자들의 주문이 다시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신발업 자체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국제상사 수출부의 李王雨  부장은 “신학기를 겨냥한 외국 바이어들의 주문이 다시 몰려 주문 사정은 다소 나아지고 있지만 업계사정이 풀리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한다.  수요가 좀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원가가 날로 높아져 채산성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까닭이다.  신발업계에 따르면 신발 수출물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운동화 한 켤레당 수출가격은 15.2달러 정도인 데 반해 원가는 18.5달러에 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많이 팔수록 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많이 팔수록 손해일 수밖에 없다.  업체 대표들은 ??망하고 싶어도 사회적 책임감 때문에 망할 수 없다??고 심경을 토로한다.

  제조원가는 올라가는데 수출가격이 변함없는 것은 외국 유명회사를 대신하여 우리 제품을 사들이는 바이어들의 횡포 때문이다.  그리고 외국 바이어들의 횡포를 부릴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업계가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거의 전제품을 수출해오면서 외국 유명업체들의 ‘하청공장??으로 안주해버린데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국내의 임금이 쌀 때는 OEM 수출이 큰 문제가 안됐지만 임금이 오르자 상황은 달라졌다.  외국 바이어들이 임금이 상대적으로 싼 동남아나 중국으로 발길을 돌리거나 싼 수출가격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우리가 싼 임금을 뜯어먹는 데 만족해왔기 때문에 오늘의 위기는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다??라는 반성도 나오고 있다.

  신발업체들은 임금이 오르기 시작한 87년부터 신발생산의 25% 가량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해 동남아로 공장을 옮겨갔다.  진출업체들에 따르면 동남아의 임금수준은 우리나라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국신발산업협회에서는 밝히는 바에 따르면 해외투자업체의 수는 31개에 이른다.  이 무분별한 해외진출이 오늘날의 위기에 한몫을 했다는 것이다.  공자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너무 성급하게 기술을 이전해준 탓에 동남아의 기술수준이 우리와 비슷해져서 바이어를 뺏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말 9박10일 동안 신발업계 해외이전 현황을 조사하고 돌아온 17명의 업계·노동계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신발산업의 해외이전을 경고하고 있다.  “과거 부산의 대표적인 산업의 하나로 인도네시아에 진출했다가 얼마되지 않아 거덜이 나버렸던 합판산업, 특히 동명목재의 재판이 되지 않을까??하는게 이들의 우려이다.

  19개 업체가 진출해 있는 인도네시아의 경우 우리 업체가늬 경쟁이 지나치고 원부자재를 국내에서 수송해가야 하며 근로자의 생산성도 낮다.  공장이전 결과가 신통치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삼호실업의 林聖萬 이사는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지 않을 작정??이라고 밝혔다.  해외에 진출하기 위해서 쏟아붓는 투자와 정성만 있으면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투자환경 더욱 유리한 중국
 정부는 무분별한 동남아 진출을 우려해서 지난 89년 3월부터 “한 나라에 5개사를 초과해서 진출할 수 없다??는 ??1국5개사??제한조처를 시행해왔다.  그런데 최근 업계 일부에서는 이 조처를 철폐해줄 것을 건의하고 있다.  동남아보다 투자환경이 훨씬 유리한 중국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국제상사쪽에서는 ??인건비가 동남아보다 싼 데다 원부자재의 수송이 쉽고, 근로자의 생산성도 높기 때문에 중국 天  에 진출하여 3개 정도의 생산라인을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미 진출을 했거나 허가를 받은 5개사와 국제상사 외에도 삼영통상 세원 등이 중국에 진출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12만명에 이르는 신발산업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위태롭고 신발업체의 80% 이상이 몰려 있는 부산지역 경제가 흔들린다는 이유로 해외이전과 관련, 노사대결이 격화되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노총) 산하 전국고무산업노동조합 총연맹(고무노련)은 88년 말부터 조직적으로 신발업체들의 해외이전을 막아왔다.  또 지난 9일에는 노총 부산지역본부(부산시 동구 범일동)앞에서 5백여명의 조합원이 모인 가운데 ‘신발산업 해외이전 저지투쟁 결의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사진). 이 대회에서 근로자들은 ??신발업체들은 공장을 해외로 이전할 것이 아니라 기술개발과 독자적인 시장 개척 노력을 계속하라??고 촉구했다.  고무노련 金萬   위원장(54)은 ??호황으로 돈을 잘 벌 때는 근로자들에게 이익을 환원해주지 않다가 임금이 조금 올랐다고 해외로 빠져나가겠다는 건 조강지처를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버리는 격??이라면서 분개했다.

  신발업계 종사자들은 ‘사양산업??이란 말을 극도로 싫어한다.  신발산업은 사양산업이란 선입견 때문에 정무나 금융기관들이 돈을 빌려주길 꺼려 했고, 그 때문에 올해 하반기의 어려움이 가중됐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 8일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업계대표 간담회에서는 ??금융기관과 언론의 신발산업에 대한 인식이 제고돼야 한다??는 이색적인 건의가 나왔다.  또 사양산업이라면 그에 걸맞는 ??대우??도 해줄 것을 요구했다.  신발산업을 산업합리화 업종으로 지정해 긴급 정책자금을 지원해줄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들은 대표적인 사양산업이라고 알려져 있는 섬유와 신발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가 각각 독일과 이탈리아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사양산업이란 선진국이 되면 버려야 할 산업이 아니라 막대한 투자 없이도 돈별이가 되는 산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신발업계와 정부가 신발산업 관련기술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지난 87년 설립한 한국신발연구소의      內權 소장은 “자금지원이 단기적인 정책이라면 장기적인 대책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 회사에서 감당하기 힘든 막대한 광고비와 판매망 구축비용 등을 정부가 일부 지원하고 나머지는 업계가 공동으로 분담할 것을 주장한다.  모든 신발업체가 똑같은 고유상표로 생산해서 수출하는 것이다.  민소장은 지난 89년 좋은 신이라는 뜻으로 ??존신??이라는 상표를 개발했으나 정부의 지원 부족과 업계의 협력 부족으로 실패했던 경험을 상기시키면서 이 두 요소만 갖춰진다면 신발산업을 희생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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