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 휴거시킨 두 소설
  • 이문재 기자 ()
  • 승인 2006.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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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 <에덴의 불칼> 이승우<황금가면>


 ‘그 날’ 10월 28일이 가까워지고 있다. 과연 그날 휴거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질문은 이제 무의미하다. 문제는 시한부 종말론이 한국교회와 사회를 뒤흔들었다는 사실과, ‘10월28일’은 끝없이 연시되면서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이 시대의 종말론적 상황에 있다. 교계, 학계에서는 10월 들어 세미나와 토론회를 잇달어 열고 시한부 종말론은 기성 교단에 책임이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작가 趙星基씨(41)와 李承雨씨(33)가 최근 펴낸 두 소설은, 위와 같이 교단 안팍에서 논의되는 주제들은 넉넉하게 끌어안고 있다. 두 작가의 시한부 종말론 비판은 결국 종교의 종교다움을 위한 진지한 모색에 다름아니다. 신학대학을 졸업한 ‘목회자’인 두 작가는 그동안 기독교를 배경으로 聖과 俗, 세속적 가치관과 정신적 가치관, 권력과 광기 등의 문제를 치열하게 천착해왔다.

 조성기씨가 민음사에 펴낸 <에덴의 불칼>(전 7권)은 그가 지금까지 발표해온 ‘기독교 소설’의 집대성이다. 제 1부 <갈대바다 저편>으로 시작해 제2부 <라하트 하헤렙>을 지나 제7부 <가시둥지>에서 대단원을 이루는데, 전체적으로 하나의 주제 아래 모이면서도 각각의 소설이 독립된 장편소설의 구조를 가진 독특한 체계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자신의 ‘젊은 날의 초상’이라고 밝히고 있거니와, 성민이라는 한 인물을 통해 종교와 인간, 종교와 사회, 종교와 종교 사이에서 펼쳐지는 방황과 갈등, 화해의 파노라마를 그리고 있다.

 <황금가면>(고려원 펴냄)은 <에리직톤의 초상>으로 종교와 종교를 포함한 권력의 악마성을 파헤친 바 있는 작가 이승우씨의 본격 추리소설이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오대양 사건을 하나로 묶어 종말파 신자들의 자멸과정을 속도감 있게 추적한 이 소설은, 종교가 극단으로 치달을 때 얼마나 반인간 반사회적인 결과를 낳는가를 고발한다.

 조성기씨가 자신의 ‘젊은 날의 초상’이라고 표현하는 <에덴의 불칼>은 법대에 입학한 성민이란 청년이 “과연 하나님은 계시는가” “내가 이 땅에 태어났으며 나는 과연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라는 실존적인 물음 끝에 기독교에 투신하는 과정이 전반부의 기둥줄거리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아 소설이 성민의 자전적 성장소설만은 아니다. 가족사와 젊은날의 친구들?대학과 군대?선교단체?윤락녀 직업훈련소?신학교?기도원?교도소 등에서 겪은 다양한 체허미 우리 시대 기독교의 거대한 벽화로 확대된다.

 “문화가 없는 종교는 광신의 온상일 뿐”이라고 조성기씨는 강조한다. 이때의 문화는 성경을 주문처럼 인식하는 성경우상주의의 폐해를 해결한다. 즉 우리 고유의, 당대의 문화에 대한 합리적 연구가 길들여져야 극단적 배타성과 폐쇄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씨는 시한부 종말론이 성경 해석의 경직성(정통주의신학)에서 비롯한다고 지적한다.

 조씨는 “고난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와 세상에의 적극적인 동참을 가르칠 때” 종교가 종교다워진다고 강조한다. 개인의 차원에서 가지는 큰 공포는 죽음이다. 휴거는 죽음이란 생물학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삶에서 곧장 영생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시한부 종말론은 거부하지만, 적지 않은 신자들이 휴거론에 ‘감염’되어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종교가 고난에 대한 자세와 사회 속으로 들어가 함께 하라고 가르친다면, “유아적으로 하나님에게 의지하는” 종말론이나 기복신앙은 설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참다운 교회와 신앙인의 모습을 일제 강점기의 ‘무교회주의자’ 김교신에서 찾는다. <에덴의 불칼> 제4부에 상세하게 묘사된 김교신은 “당시 썩어서 냄새 나는 교회들을 향해 바른 말을 했고, 참다운 교회를 갈망했던 선각자”이다. 그는 홍남비료공장 노동자들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 그곳에 취직했다가 해방 직전 죽고 만다. 거대신화에 빠진 채 세상의 고난을 외면하는 오늘의 한국교회를 김교신을 통해 비판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종교 이후의 시대”

 이승우씨의 <황금가면>은 종말파 신자들을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설정한다. 종말파가 황금가면을 쓰고 ‘정결의식’을 벌이는 과정에서 죽어간 주검을 살인사건으로 위장, 그 주검들로 그들의 聖市를 건설하려고 한다. 종말파에 의해 죽어간 애인을 찾는 안효상과 연쇄살인 사건의 수사를 담당한 강 혁 반장은 갈산물산이 종말파의 거점임을 밝혀낸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오대양 사건에서 작가는 “문명사회의 현란한 포장지 뒤에 가려진 광기”를 발견한다. 聖과 俗, 종교와 일상에 동시적으로 작용하는 이 광기가 현대 문명에 치부인 것이다. 그는 종교는 상식, 즉 인간성 위에서 존재하고 가능하다고 본다. 종교는 휴머니즘에서 출발하고 휴머니즘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종말론은 기독교의 다양성에서 비롯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극좌에서 극우가 성립되는 것이다. 또한 각 교회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敎會主義가 교회 내의 일치를 가로막는다. 각 교회는 그 교회 목회자의 교리에 따른는 것이다. 이 교회의 불일치는 종말론처럼 사회의 불일치(불안)을 조성하기도 한다. 이승우씨는 현대를 “종교 이후의 시대”라고 규정하면서, 오늘의 종교는 이전 종교의 시대와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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