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 대신 풀즙을 뿌립니다”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0.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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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永秀씨(40·한국유기농업환경연구회 상무)는 농사일에 교육사업까지 해야하는 고된 하루를 넉달째 보내고 있다. 지난 3월 강남구 거여동에 문을 연 ‘유기농산물유통본부’일도 해야 하고,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자신의 밭도 일궈야 하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 일은 그가 지난 10년간 터득한 ‘이론 실천의 장’이기도 하다.

 상업에 종사하던 박씨가 농사를 시작한 것은 지난 81년. 타고난 농사꾼이 아니어서인지 2년만에 연작피해(땅이 지력을 잃어 비료를 주고 약을 쳐도 농사가 안되는 것)를 당하여 한 해 농사를 완전히 망쳤다. 연작피해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던 박씨는 신문을 통해 유기농법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것이라면 땅도 살고 나도 살 수 있다는 신념으로 다시 농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결과 지금은 처음 시작할 때보다 4천7백평이 많은 6천7백평의 밭을 가꾸고 있다.

 유기농법이란 ‘농약을 쓰지 않는 농법’으로 유기환경농법, 자연농법 또는 생태학적 복합경영 등으로 불린다. 지력을 높이기 위해 화학비료 대신 생물비료와 유기질비료를 사용하고, 병충해 방지를 위해 농약 대신 천적·자연광물·살충식물을 활용하여 토양생태계를 파괴시키지 않으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유기농법 이론이 실천되고 있는 경기도 구리시 갈매동 박씨의 비닐하우스단지에서 농약은 찾아볼 수 었다. 30여동의 비닐하우스에는 근대 상추 쑥갓 시금치 파 아욱 열무 케일 등이 심어져 있다. 일반인들은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것과 농약을 뿌려 재배한 농산물을 육안으로 구별할 수 없다. 박씨는 “유기농법으로 생산된 농산물은 투박지고 약간 억세 보이며 맛이 짙다는 특징이 있다”고 말하면서 “오이는 향기가 주변에 퍼질 정도이고 상추는 자른 단면에서 흰 진이 나오고 먹으면 쌉싸름하다”고 구별 요령을 일러준다.

 상추 파종을 앞둔 비닐하우스 안은 마치 한증막 같다. 군데군데 닭똥, 돼지똥, 왕겨등 퇴비가 쌓여 있다. 발효된 퇴비를 며칠 동안 땅에 펼쳐놓은 후 씨를 뿌린다. “상추가 자라는 동안 벌레가 생기면 농약 대신 풀즙을 2번 정도 줍니다. 양약 대신 한약으로 치료한다고나 할까요.” 풀즙은 박하 은행 익모초 무화과 오동잎 등 야생풀과 꽃을 이용하여 만든다. 또 물에 녹인 전분 소다 흙설탕 현미식초 등을 뿌리기도 하는데 이는 벌레들이 알칼리성을 싫어하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이렇게 해도 더러 벌레먹는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농약을 뿌리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농약으로 가꾸어 깨끗하고 예쁜 엽채류와는 분명 다르지요. 그러나 그동안의 농약 과다살포 책임의 절반은 소비자한테 있습니다. 벌레먹은 것은 헐값에 사고 깨끗하고 예쁜 것은 제값 주고 사니까 농민들은 농약을 뿌릴 수밖에요.” 박씨는 소비자가 원하기 때문에 간접살인제인 살충제를 친다며 농민들의 아픈 속마음을 헤아려 보인다.

 농장에서 수확한 엽체류는 서울 거여동 유기농산물유통센터로 보낸다. 한국유기농업환경연구회 회원들은 자신들이 거둔 것을 무공해식품회사에 납품하고 나머지는 각 백화점이나 가락동 농산물판매센터로 보낸다. 가격은 보통 농산물의 1.5~2배로 다소 비싼편이다. “일반 농사보다 유기농업은손이 많이 가고 힘이 드니 비산 가격은 아닙니다. 농민들은 떼돈을 벌려는 게 아니라 ‘적정가격’을 보장받고 싶어합니다.” 박씨는 재배물을 팔아주는 단체가 있다는 확신을 농민들이 갖을 수 있도록 해야 유기농법이 확산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유통센터를 연것도 판매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농민보호, 소비자보호를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태계 순환과정의 한 고리를 깨끗하게 한다는 점에서 유기농업은 확산되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또 소득수준이 향상된 만큼 영농정책은 양보다 질 우선으로 전화되어야 한다면서 “수송과정에서 방부제가 첨가될 확률이 높은 농산물 수입개방을 막는 데 유기농법이 일조를 했으면 한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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