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몰래 흘리는 입양아의 ‘눈물’
  • 코펜하겐ㆍ베를린ㆍ김진웅 통신원 ()
  • 승인 1994.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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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국 동시 취재/서유럽으로 간 아이들



  마리에(10)는 어느날 이웃에 놀러갔다가 친구들의 놀림을 받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돌로 자기 팔을 문질러댔다. 살갗이 하얗게 되라고 아무리 문질러도 하얗게 되지 않자 눈물이 뺨을 타고 주루룩 흘러내렸다. 마리에는 9년 전 덴마크에 입양되어, 역시 한국에서 데려온 오빠 쏘렌(13)과 함께 코펜하겐 양부모 집에서 산다.

  20여 년전 독일 가정에 입양된 마틴(24), 다니엘(23), 올리버(21), 광진(24), 산드라(20). 이들은 자기들의 특수한 삶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독일인처럼 생각하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감정은 항상 한국적이다. 독일에도 한국에도 우리가 뿌리를 내릴 곳은 없다. 우리에게 한국적인 것은 단지 검은 머리, 누런 피부 등 외적인 형상밖에 남아 있지 않다.”

“90년대 입양아 25% 매춘 등에 허덕”
  고아ㆍ사생아ㆍ신체장애자로 태어나 한국사회에서 버림받고 부유한 서유럽 가정에 입양된 어린이들. 이들은 잘사는 나라에서 경제적 풍요를 누리며 행복하게 사는가. 보잘것없는 고아원이나 길거리에서 평생 불행한 운명을 걸머지고 사느니 해외로 입양된 것이 다행인가. 왜 선진국에서는 친자식도 낳지 않는 마당에 제3세계 어린이들을 입양하는가. 경제 성장에 힘입어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는 단계인데도 지속되고 있는 한국의 해외 입양은 아직도 필요한가. 가끔 신문 귀퉁이에 난 ‘입양아가 친부모를 애타게 찾는다’는 토막 기사를 보는 한국내 분위기와 수천여 한국 입양아가 사는 이곳의 냉정하고 비판적인 분위기 간의 차이는 우리로 하여금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심각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입양에 대한 서유럽의 일반적 인식은 그동안 크게 변해 왔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미국의 농부 출신 해리 홀트씨(64년 작고)는 전후 한국에 와 55년 홀트아동복지회를 창설하고 불우 어린이 8명을 입양했다. 그러나 이처럼 인간애에 기초한 해외 입양 분위기는 60,70년대를 거쳐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입양되는 아이들을 돕기보다는 이기적인 동기로 어린이를 입양하는 사례가 점점 늘기 시작했다.

  독일 시사주간지〈슈피겔〉은 82년 ‘제3세계 어린이의 매매’라는 제목으로 변질된 해외 입양 실태를 폭로하기도 했다. 그후 해외 입양에 대한 인식은 더욱 부정적으로 변해 왔다. 함부르크 북부독일입양협회는 ‘90년대 초 개발도상국에서 온 입양아의 25%는 매춘 등 영리나 범죄를 목적으로 입양되고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고 폭로했다.

  그동안 서유럽 국가에서 해외 입양을 주선한 대표적 기관은 ‘테르 데 좀’(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생텍쥐페리의〈인간의 대지〉를 본떠 붙인 이름)이다. 테르 데 좀은 한국의 홀트아동복지회와 손잡고 그동안 많은 한국 어린이를 서유럽 국가에 입양시켰다. 지금까지 테르 데 좀을 통해 독일에 입양아를 보낸 나라는 10개국, 93년까지 이들 나라로부터 독일에 입양된 어린이는 모두 2천8백9명이며, 그 중 1천8백93명이 한국 출신이다. 한국은 71년8명을 입양시킨 것을 시작으로 92년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입양을 해왔다.

  덴마크에는 독일보다 훨씬 많은 한국 입양아가 들어왔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도 덴마크와 비슷한 수의 한국 어린이가 입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 테르 좀의 한국 담당관인 홀치 여사는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된 어린이는 약 7만명, 이 중 5만여 명이 미국에, 2만여 명이 유럽 국가에 입양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왜 유독 한국만 그렇게 많은 어린이를 해외로 입양시켰는가. 한국에는 다른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 비해 불우한 어린이가 훨씬 많은가. 무책임하게 해외 입양을 보낸 당국자들과, 불우한 어린이들을 외면해온 사회 풍토가 더욱 큰 문제이다.“

  한국에서 쏘렌과 마리에를 입양해 키우는 페어(43) 피어(39)씨 부부는 “미혼모를 양산하는 한국의 성교육 부재와 입양을 꺼리는 사회 관습이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코펜하겐시의원이기도 한 페어씨는 한국의 입양 정책에 대한 견해를 묻자, 해외 입양을 보내는 것보다 한국 가정에 입양하는 것이 최선이라며, 지금도 계속 덴마크에 해외 입양을 보내는 한국을 우회적으로 꼬집었다. 테르 데 좀의 스펠링씨(60)도 “한국은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며, 한국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서유럽 지역에서는 해외 입양을 받아들이는 것이 불우한 어린이를 진정으로 돕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와 비판이 점점 고조되어 왔다. 이에 따라 독일 테르 데 좀은 몇 년 전부터 해외 입양 주선 사업을 점차 줄이기 시작해 지금은 거의 손을 뗀 상태이다. 그러나 문제는 입양을 원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공공 입양 기관 대신 영리를 목적으로 한 불법 사설 입양 기관이 생겨나, 이를 통해 입양되는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독일은 불법 입양기관을 운영하면 최고 5년 징역에 처한다는 법을 제정했는데도 어린이를 매매하는 암시장이 없어지지 않고 있다.


  입양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양부모측에서 부담한다. 페어씨 부부의 경우 83년 쏘렌이 입양할 당시 약 4백30만원을 지불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양쪽 입양 기관의 수신에 필요한 비용, 아이와 아이를 데려오는 사람의 항공료 그리고 입양한 아이의 건강진단비와 입양이 결정된 뒤 양부모에 인도하기까지의 모든 비용이 포함된다.”

  독일의 경우 “일정하지는 않지만 4천~6천 마르크(2백만~3백만원) 정도 든다”고 홀츠 여사는 밝혔다. 그러나 불법 사설 입양 기관을 통하면 비용일 훨씬 많이 든다. 테르 데좀을 거칠 경우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데다 복잡한 절차 때문에 불법 사설 기관을 통해 입양하는 사람도 많다. 이 때 거액의 뒷돈이 오가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어느 입양부모는 “내가 너를 데려오는 데 얼마를 썼는데 말썽을 피우느냐”며 입양한 딸을 꾸짖었다는 후문도 있다.

아이를 위해 애쓰는 양부모들
  대개 갓난아기에서 네 살 사이에 입양된 한국 입양아들은 현재 어린이부터 20,3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에 분포되어 있다. 쏘렌과 마리에는 엄마가 보고 싶으냐는 질문에 딱잘라 아니라고 말한다. 똑같은 질문에 20대 독일 입양아들 역시 “낳았다고 해서 부모라고 말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입양아들을 도우며 가까이서 지켜보아온 ㄱ씨는 자기가 경험한 한국 입양아들의 성장 과정을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는 자기가 독일인이라고 생각하다가 사춘기 때 사회에 눈을 뜨면서 정신적 방황과 갈등을 겪는다. 그 단계가 지나면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현실에 적응하거나, 계속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로 나누어진다.” 입양아들은 성장하면서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과정을 거치다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을 위한 입양 부모들의 노력도 지속되고 있다. 페어씨 부부는 쏘렌과 마리에가 두 살이 되면서부터 입양 사실을 솔직하게 설명하고 이해시켜 왔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혼란과 고통을 겪게 되고 열두세 살이 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한 페어씨는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해 가정집에 머물면서 가족들이 한국을 좀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이 사는 코펜하겐에는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도 못배우는 등 한국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고 아쉬워했다. 입양 가족들은 입양아 협회를 조직해 서로 친밀하게 교류하고 있다. 이들은 자기들이 낸 회비로〈입양아 사회〉라는 잡지를 매년 6회 정기 발행해 정보와 경험을 서로 교환하며 아이들을 위해 애쓰고 있다.

코펜하겐ㆍ베를린ㆍ金鎭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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