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은 모두 바본줄 아나”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1.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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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목씨 “장애자 아파트 분양 부정”주장…고소 모두 기각

 뇌성마비 장애자인 김학목씨(37)는 얼마 안 있으면 17평짜리 아파트의 주인이 된다. 지나해 11월 서울시가 장애인들에게 특별 공급한 중계 2단지 시영아파트에 당첨돼 입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8년간 남대문시자에서 행상을 하며 노모와 동생들을 이끌고 단칸 셋방을 전전해왔던 만큼 김씨는 요즘 세상을 다 얻은 듯 기쁨에 들떠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김씨의 현재 심경은 착잡하기만 하다. 자신과 같은 장애인이 집 한칸을 마련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사회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장애자의 설움을 더욱 진하게 느끼고 있다. “방 한칸짜리 아파트나마 하나 얻어 걸리게 된” 저간의 사정을 살펴볼 때 장애인들이 너무나 우롱당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파트 16채 빼돌렸을 가능성 있다”
 김씨가 처음 아파트 분양신청을 낸 것은 89년 2월이었다. 장애자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된 직후라 장애자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던 때였다. 당시 서울시는 송파구 문정동에 4백76세대가 입주할 수 있는 장애자 전용아파트 건립계획을 수립하고 입주신청을 받았다. 김씨는 1차분양이 끝나고 난 뒤 미달된 1백83세대분에 대해서 추가신청을 받을 때 서류를 냈는데 추첨과정에서 ‘해괴한??일이 벌어졌다.

 신청자들이 알고 있던 접수번호와 실제의 추첨번호가 달랐던 것이다. 그래서 1백21명이나 되는 신청자가 번호로는 당첨됐지만 이름으로는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김씨는 추첨번호가 204번이었는데 번호는 당첨됐지만 이름은 딴 사람 것이었다. 당시 장애자 아파트 건립의 실무를 담당했던 송파구청측은 신청자 중 무자격자가 발견돼 누락시키다보니 접수번호와 추첨번호가 달라지게 됐다고 해명했지만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자격자가 발견됐으면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그 번호만 누락시키면 간단하게 끝날일이었고 부득이 번호를 바꿔야 했다면 신청자들에게 사전에 충분히 공지했어야 했다. 추첨은 아파트 분양신청자들이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민감한 문제이다. 따라서 대개의 경우 조그마한 변경 사실만 있어도 두 번 세 번 공지하게 마련인 만큼 단순한 사무착오로 이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믿기는 어려웠다.

 당첨자 명단에서도 ‘이상??이 발견됐다. 신청자가 5백명이 넘어 경쟁률이 3대1에 가까웠는데 1번부터 16번까지 모두 당첨된 것이었다. 확률적으로 아주 희박하기는 하지만 그러 수 있으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분양신청대장을 보니 공교롭게도 그 16명만 인감도장을 찍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는 구청 주택과 직원들이 인감도장도 빠뜨리고 아파트 분양신청을 받았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누군가 그 16명 모르게 구청직원에게 압력을 넣어 16채의 아파트를 빼돌리려 하지 않았나 의심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장애자 아파트는 장애자를 위해 짓는 것이 아니구나. 우리는 그저 들러리에 불과할 뿐이구나. 장애자들을 아주 바보로 아는구나. 그렇다면 좋다. 나도 장애자의 근성을 보여주겠다.”

 김씨의 투쟁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김씨는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몸뚱이를 이끌고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 송파구청장 등을 두차례에 걸쳐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고발했다. 이를 서울지검 동부지청에서 모두 기각하자 이번에는 담당 검사마저 고소했다. 청와대 정부종합민원실 대검찰청 서울시청에 잇따라 진정서를 냈으며 민자당에도 찾아가 진상규명을 호소했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려는 김씨의 법적인 노력은 결국 모두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 대신 김씨는 ‘정치적인 승리??를 얻어냈다. 지난해 서울시로부터 문정동 아파트 분양 때 ??사무착오??로 낙첨된 1백21명에게는 연내에 착공하는 중계지역의 장애자용 아파트를 우선 분양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김씨는 “서울시가 민원에 대해 이렇게 ‘합리적인??결정을 내린 것을 보신 일이 있습니까. 검사까지 고소한 민원인이 이렇게 대접받는 것을 보신 일이 있습니까. 결국 서울시나 검찰이나 모두 밝히고 싶지 않은 일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그러더군요. 검사에 대한 고소만 취하하면 이 사건을 한번 제대로 수사해보겠다고, 그 소리듣고 기분 나빠 이번 사건은 그대로 덮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씨가 다시 분통을 터뜨린 것은 지나해 11월 중계동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였다.

 중계 2ㆍ4단지 시영아파트 2천3백22가구 중 장애자용은 모두 4백가구였다. 4백호 중 1백57호는 문정동에서 낙첨된 1백21명과 중계동 장애인 단체인 천애재활원의 36명에게 우선 분양하고 나머지 2백43호는 일반장애자의 신청을 받아 추첨해 분양할 예정이었다.

 중계 시영아파트의 시공을 담당한 도시개발공사는 당시 먼저 특별분양자의 신청을 받았는데 추첨하기 전에 신청자들에게 ‘어떤 평형에 당첨돼도 이의를 달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전원을 무작위로 추첨했다.

 김씨는 “신청할 때는 제가 몸이 불편하니까 노모가 대리인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도시개발공사 직원들은 별로 설명도 해주지 않고 노모에게 그같은 각서에 도장을 찍게 했습니다. 평형이 17평 22평 26평 등 세가지나 되고 분양가도 17평과 26평은 갑절이 가깝게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신청자의 의견을 묻지 않고 무작위로 추첨을 한단 말입니까. 더구나 분양신청 안내서에는 도대체 몇 평형의 아파트를 몇 채씩 짓는지조차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이는 장애자들을 형편없이 깔봤든가 뭔가 흑막이 있든가 둘 중의 하나가 아니겠습니까”라고 분개했다.

“장애자 아파트 입주자 90%는 정상인”
 김씨는 특별공급 대상자를 1백57명이나 잡아놓은 것도 수상하게 여기고 있다. 특히 당초에 천애재활원에 36명이나 배당한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천애재활원에서 입주신청을 한 숫자는 모두17명으로 서울시에서 파악한 숫자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따라서 문정동에서 낙첨된 사람 중에서 신청을 하지 않은 사람분까지 합쳐 특별공급 대상분 1백57가구 중 모두 29가구나 미분양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김씨는 미분양된 29가구 중 상당수가 음성적으로 처리됐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김씨는 지난 6월 도시개발공사 주택과 직원 3명을 배임혐의로 고소했는데 서울지검 동부지청은 피의자들에게 혐의사실이 없다고 기각했다.

 김씨에게 고소를 당한 도시개발공사 주택과의 한 직원은 “특별공급 대상자를 무작위로 추첨한 것은 행정상의 편의 때문이었다. 중계동 아파트는 장애자 전용이 아니기 때문에 장애자 아파트는 1~2층으로 한정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큰 평수가 얼마 되지 않아 신청자들의 양해를 구해 그냥 무작위로 추첨한 것이다. 특별공급 대상분 중 미분양된 29가구는 일반장애자 신청자 중 낙첨된 예비입주자들에게 모두 분양했다. 이는 검찰의 수사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이미 판명난 일이다”라고 얘기했다.

 또 서울시 주택과의 한 직원은 “김씨는 매사를 부정적으로만 보려고 든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일이 김씨에게만은 왜 이상하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는 피해망상증에 걸려 있는 듯하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김씨는 많은 주택사업 관계자들을 고소ㆍ고발했으나 검찰은 이를 모두 기각했다. 검찰의 수사가 김씨의 주장처럼 그렇게 허술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김씨는 서울시청 직원의 말마따나 피해망상증에 걸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동안의 검찰 수사대로 장애자 주택분양 과정에 한점의 의혹이 없다고 쳐도 김씨가 제기하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남는다.

 “지금이라도 문정동 장애자 전용아파트에 한번 가보세요. 거기 몇 사람의 장애자가 살고 있는지. 아마 10%도 안될 겁니다. 또 중계동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 중에 몇 사람이나 입주할 능력이 있는지 조사해보세요. 대부분의 장애자들은 앉아서 돈을 벌게 된 것을 감지덕지하며 딱지를 팔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게 어디 장애자를 위한 것입니까. 모독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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