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임금체계는 걸레”
  • 장영희 기자 ()
  • 승인 1991.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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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임금체계 전면 재검토…기본급 낮고 수당 잡다해 개편 시급

 럭키금성그룹은 지난해부터 “헌법 고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임금체계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노동 경제학자 등 외부의 전문가로부터 자문을 받고 각 계열사 인사담당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수차례 계속됐다. 결국 그룹의 사업문화단위(CU)별로 알맞은 임금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잠정 결론에 도달했다. 가장 적합한 체계로 지목된 것이 직능급이었다.

 최근 현대자동차도 서울대 崔鍾泰 교수팀에 임금체계 개편 작업을 의뢰했다. 이 프로젝트는 노사 합의를 본 것으로 알려졌는데 올 10월부터 내년 말까지로 잡혀 있는 장기 과제이다. 이처럼 대기업을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14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열었던 ‘임금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세미나는 이런 관심을 확인시켜주었다. 각 회사의 인사담당자나 경영자들이 끝까지 남아 열띤 토론을 벌였던 것이다.

일부 업체, 수당 17가지 지급조건 52종류
 현행 年功給 체계는 노사 모두에게 불만스럽다. 경영자는 임금이 근로자의 업적 능력 생산성을 반영하지 못하면서도 인건비는 인건비대로 많이 지출돼 경영에 압박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근로자는 열심히 일해 회사이익을 내는 데 기여해봤자 그럭저럭 지내는 사람과 같아 보상이 적다고 느낀다. 이른바 ‘저임금 고인건비??상태라는 것이다.

 임금제도에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우선 임금수준에서 기본급의 비중이 50.8%(경총 조사)로 낮아 안정성이 결여돼 있다. 기본급이 낮다보니 잡다한 구실의 수당이 생겨났다. 어떤 업체는 수당의 종류가 17가지이고 지급조건에 의한 구분이 52종류나 된다는 노동부 조사도 있다. 경희대 金秀坤 교수가 “현행 임금체계는 걸레”라고 서슴없이 표현할 정도로 복잡하고 너덜너덜 기워져 있다.

 임금체계가 이렇게 넝마가 된 것은 특히 6ㆍ29선언 이후에 생긴 현상인데 정부의 한자리 수 임금억제 정책에 대해 기업들이 변칙적인 수당 신설 등으로 대응을 해온 것에 혐의를 두는 이가 많다. 연공급 체계가 더욱 고착된 데는 노동조함의 힘이 주효했다는 지적도 있다. 매년 단체교섭 때 연공서열에 따른 인산(베이스업)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임금이 너무 올라 아시아 경쟁국을 앞질렀다는 정부의 으름장이 있었으나 다른 나라와 직접 비교하기가 어려워 사실 여부는 불확실하다. 5년 경력의 임금관리 담당자도 파악하기 어렵다는 복잡하고 무원칙한 임금체계는 노ㆍ사ㆍ정 공동책임의 부산물이다.

 근로기준법 제18조를 보면 임금의 정의가 이렇게 명시돼 있다. “사용자가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임금 봉급 기타 어떤 명칭으로든지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을 말한다.” 그동안 노사는 매년 임금의 수준을 둘러싸고 격돌했다. 최근 들어서는 임금체계가 노사간의 협상탁자 위에 오르고 있다. 내년은 임금체계가 노사간의 보다 큰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임금수준??이 종업원이 받을 만큼 임금을 받고 있느냐와 관련된 적정서의 문제라면 ??임금체계??는 전체의 보상액(임금수준을 종업원수로 곱한 것)을 개별의 종업원에게 어떤 항목으로 어떤 기준에 의해 배분하느냐 하는 공정성의 문제이다. 임금체계는 임금 전체의 뼈대가 되고 상여금 퇴직금 등 다른 보상의 산출근거가 되는 기본급이 결정되는 기준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기본급이 연공요소에 중점을 두고 결정되면 연공급, 수행하는 직무의 가치에 의해서면 직무급, 직무수행능력 기준이면 직능급체계가 된다.

 경총이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실시한 임금제도 개선에 관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총 응답업체 2백72개사 가운데 연공급을 채택하고 있는 회사가 48.9%였고 종합결정급으로 응답한 회사도 43.4%나 됐다. 종합급은 직급 혹은 직책의 위상도 고려하고 ‘일??과 ??사람??의 요소를 종합적으로 감안한 임금체계로 사실상 연공급 성격이 짙어 연공급 채택 업체가 92.3%나 된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는 것이 경총의 설명이다. 직무급(4.8%)이나 직능급(2.9%)은 매우 적어 연공급이 우리의 지배적인 임금체계인 것을 알 수 있다.

 연공급은 학력 연령 근속연수 성별 등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람 요인을 크게 고려하는 임금체계이다. 동양적인 가치관과 문화풍토에 알맞아 한국 등 동양권에서 많이 채택하고 있다. 연공급에서의 임금은 매년 일정률로 임금이 올라가거나 처음에는 승급액이 적었다가 근속연수가 지남에 따라 차츰 커져가는 형태 등 여러 가지 유형이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근속연수 높을수록 임금이 많아진다고 보면 큰 무리가 없다.

과도적 형태로써 직능급 도입 바람직”
 럭키금성그룹의 호남정유는 79년 3월까지 연공급을 채택하다가 이후 기능감독직 및 기능직에 한해 직무급을 채택했다. 사무관리직과 비교하여 승진에 불균형이 생기는 데 따른 불만이 증대된 것이 전환 이유이지만, 호남정유가 그룹 내 다른 회사와 색깔이 많이 다른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 회사는 미국 칼텍스사와 50대 50의 합작관계에 있다. 미국식 임금관리의 입김을 많이 쐰 것이다.

 호남정유의 직무급 체계 운용을 살펴보자. 먼저 단위직무를 조사해 직무기술서를 작성한다. 직무를 구분하는 요소로는 숙련도(지식 경험) 정신적 부하(일의 복잡성, 심적 긴장) 육체적 부하와 작업조건(작업환경 재해 위험) 책임(업무책임, 제품 및 기계장비, 타인의 안전) 등을 두고 있는데 각 요소마다 차등 점수가 매겨진다. 이런 각 요소의 평가항목에 따라 상하위 등급이 생긴다. ㄱ씨가 ㄴ씨에 비해 낮은 등급에 있다면 낮은 임금을 적용받게 된다. 이 회사는 기능직에 7개 등급, 기능감독직에 3개 등급을 만들어 총 10개의 다른 급여표로 임금관리를 하고 있다.

 호남정유의 예에서 보듯이 직무급은 직무평가에 의한 상대적 가치에 따라 임금이 결정된다. 같은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에게는 연령 근속 학력 등에 관계없이 같은 임금을 지급한다.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이다. 하지만 직무급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직무 분석과 직무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이 작업의 타당성과 정확성 여부가 성패를 결정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연공급과 직무급은 서로 반대편에 위치한 임금체계이다. 직무급이 연공급에 비해 합리적이라고 평가되지만 반드시 우월하다고는 볼 수 없다. 각각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연공급은 생활이 보장되므로 기업에 대한 귀속의식이 높고 노동력 이동이 적은 폐쇄적 환경에 적합한 것이 장점이다. 반면 능력있는 젊은 층의 사기를 떨어뜨리면서도 인건비의 부담은 늘어나는 것이 큰 단점이다. 또 전문기술인력과 능력있는 인력의 확보가 곤란하다. 이로 인해 소극적이고 무사안일한 근무태도가 만연되기 쉽다. 직무급은 이런 연공급의 단점을 많이 보완하는 체계이다. 직무에 상응하는 임금지급이 가능해 인건비를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성과 연계시킬 수 있다. 경영자들이 매력을 느끼는 내용이다. 반면 절차가 복잡하고 타당성이 결여되기 쉽다. 또 인사관리의 융통성이 적고 종신고용이 지배하는 동양적인 풍토에서는 적용이 어렵다. 근로자들로서는 무엇보다 생활주기가 무시되기 때문에 불안한 제도로 여겨진다.

 연공급과 직무급을 절충한 형태도 있다. 종업원의 직무수행능력을 직능고과에 의해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임금을 결정하는 직능급이다. 이 체계는 직능분류에 의한 직능자격제도가 반드시 확립되어야 실시할 수 있다. 직무수행능력의 평가에는 폭넓게 근속 연령 학력 등의 속인적인 기준과 인사고과 사내시험, 경우에 따라서는 직무평가 등 여러 가지 척도와 방법이 사용될 수 있다. 평가 방법은 우선 직무자체를 평가해 그 직무가 필요로하는 능력의 정도를 파악하고 그 다음 단계로 그 직무를 맡고 있는 사람을 평가한다. 능력은 기초능력(체력 지식 기능) 소속의식(협동심 규율의식 적극성 책임감) 응용능력(판단력 기획력 창조력 섭외력 통솔력)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직능급을 실시하고 있는 업체는 한국전력 서울지하철 포항제철 등이다. 지난해 4월 이 제도를 도입한 포항제철의 경우를 보자. 이 회사의 임금체계는 직원의 근속연수에 대한 보상체계로써 기본급(단일호봉제)과 직무수행능력을 보상하는 직능급, 그리고 수당으로 구성돼 있다. 직능급은 다시 직능기초급(10개의 직능등급별로 정액 지급)과 직능평가에 의해 개인별로 다르게 지급되는 직능가급으로 나누어진다.

 끊임없이 신제품을 개발하고 신기술을 도입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풍토에서 종업원의 능력향상을 요구하는 직능급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직능급도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워낙 많은 요소를 포함하다보니 관리비용이 많이 들고 상위직능으로 올라갈 수 있는 훈련 등의 제도적 장치가 용의주도하게 마련돼 있지 않으면 근로자들의 반발을 사기 쉽다.

 경총 梁炳武 수석연구원은 “장기적으로는 현재의 연공급에서 직무급으로 전환하는 것이 소망스럽지만 과도적 형태로는 직능급의 도입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기본급과 여러 가지 수당, 그리고 상여금으로 구성되는 현행 임금체계의 틀을 크게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능력과 성과의 연계성을 높이려면 연공급 체계의 개선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이를 유도하기 위해 직능급의 도입을 검토해볼 수 있다. 학력간ㆍ성별간 격차를 합리적인 선으로 조정하기위해서는 직무급의 도입만이 해결방안이라고 진단하는 학자도 있다. 사람 요소가 지배하는 임금체계에서 일 중심 체계로 서서히 옮겨가는 것이 장기적인 추세이다.

 그러나 임금관리 담당자들은 연공성격이 짙은 현행 체계에서 직능급이나 직무급으로 애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일 중심과 능력주의로 급격하게 전환할 때 예상되는 근로자들의 저항이 있다. 근로자들은 임금제도가 바뀔 때 임금이 깍일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근로자들이 반드시 저지해야 할 것은 생계 위협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임금체계 개편에 대해 “기본급이 생활급 중심체계가 돼 최저 생계비를 보장할 것”이라는 조건부 찬성론을 들고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는 이미 직능급이나 직무급으로 전환한 회사의 사례에서 경험하는 현실이다. 연공급에서 직무급으로 기준체계를 1백80도 바꾸었던 호남정유는 생산직 5급 16호봉(임금 57만6천원)을 받던 ㅂ씨를 직무등급 4등급을 정해주면서 28호봉(57만8천원)을 책정했다. 과거의 임금수준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다. 포철의 경우도 비슷하다. 5급 21등급 9호봉 (52만8천2백원)을 받던 근속 10년인 ㅊ씨의 임금을 직능급으로 개편하면서 4급 기사직 15호봉(57만9천7백원)을 주었다. 거의 비슷하거나 조금 높게 책정하는 것이 상례이며 임금을 깎지는 않는다. 이러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앞으로 어떤 기업이 임금체계를 개편하더라도 임금이 깎이는 일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노사 한 배 탔다는 의식 중요
 럭키금성그룹 회장실 인사팀의 金榮基 부장은 “직능급을 도입하려면 개인의 업적평가 시스템이 개발되는 등 제도적 장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제도가 객관적이어야 차등임금을 적용받는 사람들의 불만을 재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직능급 체계를 적용하려면 직능자격제도가 확립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현재 이를 꾸려나갈 능력이 크게 부족하다는 말도 나온다.

 직무급의 이행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통상 종업원 1천명의 회사가 직무분석을 하려면 줄잡아 6개월이 소요되며 비용도 5천만~6천만원이 든다고 한다. 대부분의 기업에게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 차원에서 표준직무분석표를 만드는 등의 선행작업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직무평가가 객관적이지 못해 실패한 기업도 있다. ㅆ사는 직무급을 도입한 지 1년 만에 과거의 연공급 체계로 돌아갔다.

 내년에는 임금체계를 비롯한 임금제도 전반에 관해 노사간 공방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는 이미 노동법 개정안에 총액임금제 도입 근거를 마련, 정기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만약 처리되지 않으면 정부가 자체적으로 총액임금제 관련 시행령을 마련해 내년 임금교섭에서 총액임금을 교섭기준으로 지도할 방침이다. 연봉제니 성과급제니 하는 임금제도 개선안의 도입 여부도 내녀도 임금교섭의 탁자에 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동부 李洪志 근로기준 국장은 “임금체계 등 임금제도 전반에 대해 검토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현재 노동 연구원은 노동부의 의뢰를 받아 ‘임금제도 및 정책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이달 말게 장관에게 그 결과를 보고할 계획이다.

 학계의 한 관계자는 “과일나무로 치면 임금은 열매와 같다. 달고 풍성한 열매가 열리게 하려면 우선 좋은 씨를 심어야 하고 거름을 잘주고 전지작업도 세심히 하는 등 모든 노력이 집중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임금체계 등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는 노사가 한 배에 탔다는 의식을 가져야 가능하다는 것이 최근 몇년 동안에 얻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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