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통일한국 공포증'
  • 도쿄ㆍ채명석 객원편집위원 ()
  • 승인 1991.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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右派 “한국은 가상 적국”…日 정부, 군사대국화 속셈

 최근 일본의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 한반도 통일에 대해 발언하는 일이 눈에 뜨게 늘어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논객들은 노골적으로 “통일 한국은 일본의 ‘가상적국'이기 때문에 한반도 분단을 고착시켜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知韓派' 그룹에 속하는 일부 논객들로 “북-일 수교로 한반도의 분할지배를 노린다는 한국의 ??대일 경계령??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며 이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지난 8월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경영자 공무원 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앙케이트조사에 따르면, 과반수 이상이 통일 한국은 일본에 불이익보다는 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평가했었다.

 즉 한반도 정세가 안정되므로 정치ㆍ군사면에서 일본에 이익이라는 대답(복수 대답)이 63.8%, 한반도에 지금보다 큰 시장이 출현하므로 경제면에서 일본에 이익이라는 대답이 52.4%로, 한반도 통일이 정치ㆍ군사ㆍ경제면에서 일본의 국익에 합치된다는 의견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다. 반면 한국이 지금보다 대국이 되기 때문에 정치ㆍ군사면에서 불이익이라는 대답은 12.4%, 한국의 대일경제력이 지금보다 강화되기 때문에 불이익이라는 대답은 4.8%였다.

 일부 일본인들의 이같은 한반도 통일관은, 한국인의 65.5%가 “일본은 한국 통일을 원치 않는다”고 대답한 조사결과(작년 8월 MBC TV)와는 정반대의 수치를 보이고 있는데, 대다수 일본인들이 아직은 한반도 정세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를 가장하여 이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냉전체제붕괴 이후 세계 제2위의 경제력에 상응하는 정치ㆍ군사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일본의 우익세력들도 ‘신대동아공영권??구축을 외치며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의 패권 탈환을 의미하는 ??脫歐 入亞??를 다시 주장하고 나섰다.

우익 ‘新대동아공영권'주장
 특히 걸프전쟁의 전비분담을 둘러싸고 보수우익들이 벌인 반미 캠페인은 일본 여론의 우경화 무장에 큰 영향을 끼쳐 ‘嫌美(미국혐오)'라는 새로운 단어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난민 수송을 위한 자위대 항공기 파견에 33%만 지지했던 일본여론이 소해정 파견 때는 56% 지지로 돌아선 것도 이 '혐미현상'과 무관치 않다.

 통일 한국을 일본의 ‘가상 적'으로 단정하고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시켜야 한다는 노골적인 주장은 아직은 국수주의 우익에서만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통일이 가까워질수록 '통일한국 위협론'을 외치는 일본 우익들의 목소리도 함께 커져가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이다.

 또한 “한반도가 통일되면 반일감정으로 똘똘 뭉쳐 민족적 에너지를 일본으로 돌릴 것이다”라는 反韓캠페인에 지금의 일본여론이 언제까지나 무관심과 무지를 견지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것은 보수우익들의 반미캠페인으로 불과 몇 달 사이에 혐미감정이 만연했던 사실을 보면 자명하다.

 그 때문에 우리는 일본의 일부 지식인들이 지금 주장하고 있는 ‘통일한국 위협론??이 일본정부의 對한반도정책, 나아가서는 일본인들의 한반도 통일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것이므로 이에 대한 대응전략을 강구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것은 물론 즉흥적 감정적 대응보다는 그들의 발언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일본인들의 저변에 깔린 對韓감정을 다시 점검하는 작업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교토대학의 고사카 마사다카(高坂 正堯)교수는 월간지 《포사이트》 10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오늘의 한반도 상황을 청일전쟁이 일어났던 1백여년 전과 똑같다고 주장했다. 일본정부는 그 당시 전후의 조선반도처리안으로써 △조선에 대한 불간섭정책 견지 △조선을 명실공히 보호국화 △청국과 공동으로 조선의 독립을 보증 △조선을 열강과 함께 중립국으로 보증하는 네가지 안을 검토했으나 끝내는 당시 극동지역이 ‘힘의 공백지대??였으므로 일본의 입장에서는 대륙과의 완충지대로써 조선을 속국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를 폈다.

 고사카씨는 이어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지금도 “조선반도에서는 여전히 곤란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으며, 일본외교에 골치아픈 과제를 부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논리는 물론 오랫동안 일본인들이 품어왔던 “한반도는 일본의 옆구리를 겨누고 있는 단도”라는 인식과 무관치 않다.

 미국무부 한국과를 거쳐 현재 주일미대사관 안전보장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마크 피츠패트릭은 《국방》 9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일본인들의 이 ‘단도 논리??를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일본에게 한반도가 지리적 중요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큐슈지방과 2백14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한반도는 아시아대륙에의, 또는 아시아대륙으로부터의 완충지대 및 침략경로로 존재해 왔다. 일본인은 한반도를 일본의 옆구리를 겨누고 있는 단도로 인식해 왔다.”

 일본이 늘 위협을 느꼈던 것은 대륙세력이 패권을 장악하는 수단으로써 한반도를 악용할 위험성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안전보장상 한반도에 우호정권이 존속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해 왔다.

 고사카와 피츠패트릭의 설명처럼 이 ‘단도 논리??가 일제의 한반도 강점으로 이어진 것은 새삼 지적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해방 이후부터 청일전쟁 1백년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까지 일본인들의 이 ??단도 논리??는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한반도 통일되면 일본에 보복할 것”
 <산케이신문> 서울 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黑田 勝弘)는 월간지 《보이스》 11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조선반도는 일본이 좌우한다”고 주장하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 북한은 수교교섭을 서두르기 위해 대대적인 친일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자기 반성과 점검이란 측면에서 반일 내셔널리즘이 분출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얼마만큼 큰가를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 반도와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당사국인 미국 소련 중국이 이제는 ”조선반도의 장래를 좌우하는 것은 일본이다“라고 판단하고 있는데도 일본만이 이에 대한 자각이 없다.”

 그는 이어 일본인의 심층심리 속에는 과거의 가해자 입장에서 거꾸로 언젠가는 피해자로부터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감정이 숨겨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 예로 일본의 패전 직후 한국ㆍ조선인 중 일부가 전승국 기분에 젖어 일본 국내에서 보복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일본인이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6ㆍ25 직후 부산까지 적화될지 모른다는 ‘부산 적화론??이 일본인 사이에 들끓었던 것도 일본인의 한반도 공포증을 반증한 현상이었다고 주장했다. 미 외교관 피츠패트릭도 1946년부터 51년까지 일본에 불법입국 하려다 체포된 한국인 수가 4만6천명에 이르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일본인들의 한국공포증을 똑같이 강조하고 있다.

 피츠패트릭은 또 한국이 독도를 일방적으로 “점령”한 것도 일본인들의 한국공포증을 자극했던 한 요인이며 특히 이승만 대통령이 1952년에 선언한 ‘평화라인??은 일본의 어업권을 위협해 그들의 反韓심리를 증폭시켰다고 지적했다.

 지금 일본의 일부 우익세력은 이 ‘단도 논리??를 식민지통치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거로, ??한국 공포증??을 한반도 분단을 고착시켜야 한다는 논거로 다시 들고 나왔다.

 “한반도 통일은 일본의 옆구리를 겨누고 있는 반도에 인구 7천만의 대국이 출현함을 뜻한다. 일본의 인구가 7천만을 돌파한 것은 1936년이었다. 7천만 인구로 태평양 전쟁에 돌입했던 일본을 돌이켜 보면 한반도 통일 후 통일한국의 국력은 가히 위협적이다.”

“분단 고착시켜 한국의 大國化 막아야”
 이것이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통일한국 위협론??의 출발점이다. 그들은 특히 한국은 현재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로 살아가는 나라”이기 때문에 통일 한국은 피해자적 보복심리에서 그 결집된 反日 내셔널리즘을 일본으로 돌릴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얼마전 한 국제 세미나에서 ‘새로운 일본??이라는 강연을 통해 한반도 분단을 고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시사평론가 다케무라 겐이치(竹村 健一)가 바로 그렇다. 그는 최근 《일본의 비극》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한반도 분단논리를 한국의 군사대국화를 가정하여 더욱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통일된 남북이 대규모 군축을 실시할 것이라는 것은 오산이다. 통일 한국 군대는 조직의 생리상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려 들것이며 군사대국 소련 중국보다는 일본이나 대만이 그 대상이 될 것이다.”

 다케무라는 이와같은 근거로 “남북의 병력을 합치면 1백70만 대군이 된다. 일본의 자위대는 그 10분의 1인 18만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고, 결국 통일한국 군대가 일본을 공격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남북한이 대립하고 있는 현상이 일본의 안전보장에 있어 바람직스럽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는 나카소네 전 총리가 얼마전 예일대학 강연에서 “소련ㆍ중국은 당분간 북한을 국가로서 존속시키는 것이 이 지역의 안정과 각국에 대한 완충적 존재로서 필요불가결하다는 선택을 내릴지 모른다”고 발언했던 부분을 들추어 내고, 나카소네가 일본 국내에서 그와 같은 발언을 삼가고 있는 것은 한국의 반발을 회피하기 위한 계산이라고 강조했다.

 교토대학 명예교수 아이다 유지(會田 雄次)는 한걸음 더 나아가 아예 현재의 한국이 일본의 ‘가상적국??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는 《보이스》 9월호에 발표한 <일본이여 다시 태어나라>라는 글에서 “일본이 고립 무방비상태가 되면 한국은 즉각 공격할 의사를 갖게 될 것이다. 상상조차 하기 싫지만 이 상태로는 한국이 일본의 가상적국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일본은 현행헌법을 개정하고 방위비를 GNP의 2%로 끌어올려 자위대를 군국주의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아울러 핵무장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일본이 아시아전략을 추진함에 있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 북한 중국 캄보디아 베트남 등 일본에 적의만을 품고 있는 나라와 공산주의 국가의 존재라고 지적하고 한국에 대해서는 ‘우호적 동결상태??로 놔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위협 내세워 방위비 증액 추진
 그렇다면 통일 한국은 일본의 군사적 위협이 될 수 있는가. “왜 일본은 한국 통일을 환영하는가”를 발표한 피츠패트릭은 현재의 남북한 병력 1백76만이 통일후 병력의 전통적 표준비율인 인구의 1% 수준, 즉 65만명 정도로 감축되리라고 전망한다.

 주변 강대국들이 1백80만 병력의 상비군 체제를 인정할 리도 없고 한반도가 통일되면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할 이유나 명분도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정치가와 여론지도자들이 남북한 병력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 안전보장상의 위협을 내세우는 것은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현재의 일본해군력 우위를 감안하면 침공 운운하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의 우익들이 통일 한국을 가상적국으로 몰아가는 데는 어떤 저의가 엿보인다. 냉전체재 하에서 ‘소련위협론??을 전제로 방위비를 대폭 늘려올 수 있었던 일본은 소연방의 약체화로 지금 최대의 ??가상적국??을 상실해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세계적인 군축무드에도 불구하고 올해부터 시작된 중기 방위력정비 5개년 계획에 총 22조7천5백억엔의 예산을 책정하고 있다. 또한 최근 미ㆍ소의 전략핵감축선언이 나온 뒤에도 일본정부 당국자는 “세계적인 군축 움직임은 어디까지나 핵ㆍ전략 병기와 같은 공격적 병기에 국한되어 있다. 일본은 ‘專守방어??원칙에 입각해 방위력을 증강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움직임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또 최근 한국 정부가 국방백서에서 “일본의 방위력은 점차 전진방위를 위해 공격적 성격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지적한 데 대해 이에 대한 설명을ㄹ 요구하고 나왔다.

 일본 우익들이 외치고 있는 ‘통일한국 가상적국론??도 바로 이 일본정부의 방위정책과 무관치 않다. 일본의 가상적국을 소련에서 통일 한국으로 바꿔줌으로써 일본의 방위력 증강을 계속토록 측면에서 지원하고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적극 추진한다는 것이 그들이 노리는 목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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