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대권 가까운 총선 DJ, 친위대 공천 고민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1.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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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내보내면 ‘부자세습’ 오해산다”

 대권의 길은 멀고 험하다. 긴 인내와 승부수 사이에서 위험한 줄다리기를 하는 민자당 金泳三 대표최고위원만 그런 것은 아니다. 민주당 金大中 대표최고위원에게 놓인 길도 그 못지 않게 험하다. ‘야권통합’이란 마라톤 경기를 성공적으로 완주했지만, 통합 이후에도 쉽지 않은 장애물 경기를 치르고 있다. 신민계 체중 감량의 몫이 워낙 커 최고위원 당무위원 조직 강화특위 위원 임명과정에서 탈락 인사들의 반발을  최소화하느라고 진땀을 흘렸다.

 결정적인 장애물은 아직도 남아있다. 당직 임명과는 또 다른, 당사자의 정치 생명을 좌우하는 공천권 행사가 바로 그것이다. 김대중 대표의 강한 흡인력과 지도력으로도 이를 둘러싼 반발을 완전히 제압하기란 쉽지 않다.

대권 전략에 따른 다양한 공천 ‘용병술’
 이중 김대표를 가장 고민스럽게 만드는 대목은 집단적으로 출사표를 던진 ‘동교동 사람들’의 공천 여부다. 그동안 김대표가 측근정치를 한다는 비난을 많이 받기는 했지만, 막상 그의 주변에 머물다 금배지를 단 국회의원은 權魯甲 趙昇衡 비서실장 등 단 두명의 초선의원에 불과하다. 정치행로를 같이했던 金東英 金德龍 沈完求 徐淸源 崔箕善 등 비서들을 일찌감치 원내로 진출시킨 김영삼 대표와는 대조적이다. 자신이 제도정치권 밖에서 오랫동안 유폐되는 바람에 재대로 공천권을 행사하지 못한 상황 탓이긴 하지만, 김대표로선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교동 사람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진 것도 이번이야말로 김대표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들을 챙겨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출마의사를 밝힌 특보 보좌관 비서 수행비서 출신으로는 權魯甲(목표) 韓和甲(신안) 金玉斗(도봉을) 南宮珍(관악을) 裵基善(무안) 薛勳(창원) 崔在昇(익산) 金景梓(순천) 崔雲祥(성동병) 李錫鉉(안양을) 宋善根(인천북구갑)등이다. 김대표의 보좌역인 崔在昇씨와 李大成 비서실 차장도 조직책 신청을 내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인 출마의사를 비치고 있다.

 이들의 공천 가능성을 놓고 당 내에서는 두 가지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상당수의 공천 가능성과 그 반대의 가능성이다. 공천을 낙관하는 쪽에서는 ‘대권가도에서의 친위부대의 필요성’을 들고 있다. 민주당의 한 소식통은 “14대 총선 이후 대통령선거 때까지 험난한 역정이 펼쳐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험난한 길을 같이 헤쳐갈 측근이 필요하다. 또 정당 민주화의 국민적 요구가 있는 한 원내 진출을 한 측근이 아니고서는 비밀정치, 측근정치라는 비난에 또 직면하게 된다. 결국 확실한 측근들을 공천해 원내에 진출시키는 길이 최선이다. 김대표도 이미 이런 큰 원칙을 세워놓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측근들이 오히려 ‘희생양’이 되리라는 정반대의 관측도 만만치 않다. 신민계의 ㅇ의원은 “현역의원은 많고 지분은 상대적으로 적은 신민계의 대량 출혈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전제하고 “DJ가 다른 사람들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해선 자기 사람부터 희생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 ㅇ의원은 “측근 공천을 둘러싼 마찰과 잡음은 김대표의 대권 행보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므로 가능한 이를 피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마찰의 소지는 이미 조직책 신청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의 측근들이 신청한 지역들은 ‘신민계의 당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따라서 현 지역구를 사수하려는 현역들의 의지도 강렬하다. 아무리 당내 장악력이 뛰어난 DJ로서도 ‘교통정리가 어려운’ 곳이다.

 실제로 지난달 25일 조직책신청 마감 이후 DJ 측근인사의 도전장에 접한 許京萬 최고위원(순천) 朴錫武 의원(무안) 등은 내심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허최고위원은 김대표에게 강하게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대표가 몇몇 측근에게 “자네들이 나를 그렇게 곤란하게 만들면 어떡하는가”라고 불편한 심기를 토로한 것도 이런 당 내 분위기 때문이다.

 이처럼 상반된 관측이 있지만 김대표는 대권이라는 큰 포석 속에서 인물과 용도, 지역사정에 따라 적절한 용병술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즉 원내에 진출시켜야만 하거나 원내에서 진가를 발휘할 만한 인물에게는 공천을 주고, 대권전략상 곁에 두는 쪽이 유리한 측근은 만류하는 양면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동교동으로서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버티어준 ‘家臣’임에도 13대 총선 당시 피선거권 규제에 묶여 국회에 입성하지 못한 한화갑 김옥두씨의 경우, 이번엔 꼭 금배지를 달아주어야 한다는 부담을 김대표에게 주고 있다.

‘원내용’ ‘원외 측근’포석, 균형감각  관건
 한씨의 경우 13대 때 공천을 받았던 신안지역이 뚜렷한 경합자가 없는 만큼 재입성이 거의 확실시된다. 도봉 을(李喆鎔 의원)을 원하는 김씨도 설사 이 지역에 공천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다른 지역구나 전국구)공천은 받게 되리라는 관측이다. 재야운동권 출신의 비서진으로 강한 충성심을 보여온 설훈 배기선 씨도 ‘원내용’으로 점찍힌 만큼 무리 없는 지역 조정이 관건이라는 관측이다. 설씨의 경우 최근 김대표의 강력한 권유로 창원으로 희망지를 바꾸긴 했지만, 13대 때 출마했던 성북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원내용이긴 하지만 지역문제가 걸려 있는 대표적 사례가 김경재 전 정치담당 특보다. 《김형욱회고록》의 집필자(필명 朴思越)로 더 유명한 김씨는 13대 총선 때 강남 갑에서 어려운 싸움을 치러 떨어진 만큼 이번만은 ‘상대적으로 수월한 지역’인 고향 순천에서 출마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허경만 최고위원의 반발이 워낙 강한 데다, 김대표가 ‘득표력이 높은’ 김씨의 서울 출마를 종용하고 있어 막판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수행비서역으로는 거의 완벽하다”는 평을 듣는 최재승 보좌관의 경우, 당분간 곁에 두어야 할 필요성과 대인관계가 모난 그를 둘러싼 당 내외의 부정적 시선을 감안해 출마를 만류할 공산이 크다는 후문이다.

 아들 金弘一씨의 공천도 친위부대의 진출과 함께 김대표의 큰 고민거리다.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를 위시한 김홍일씨 주변은 야당의 가장 튼튼한 전위 청년조직을 꾸려온 실력자이면서도 오랫동안 부친의 그늘에 가려져온 김씨의 공천을 주장하며 오래전부터 당내 정지작업을 해왔지만 “국민감정상 부자세습의 오해를 받아 큰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당 중진들의 반발 또한 못지않게 강하다. 김대표로선 대통령선거를 감안, 이번 공천 과정에서 측근세력의 절묘한 배치와 함께 ‘껄끄러운 인물’들의 배제를 동시에 이뤄야만 한다. 대권을 위한 포석이 대권을 가로막는 ‘지뢰’로 작용해서도 안된다. 어려운 장애물 경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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