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時, 점점 ‘닮은 꼴'
  • 김재홍 (문학 평론가·경희대 교수) ()
  • 승인 1991.11.2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0년대 이후 민족문학‘공감대??형성…동질성 회복 가능성 보여

 이땅에 분단으로 인한 단절의 시대가 지속된 지 어언 반세기, 그간의 남북문화 특히 시는 커다란 간극과 편차를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시라는 개념만해도 그렇다. 남쪽에서 시란 시인이 사상과 정서를 표현하는 언어예술로서 보통 읽는 시를 지칭한다. 그러나 북쭉에서 시란 읽는 시와 함께 노래부르는 것으로서 가요의 가사가 시에 포함된다. 즉 북에서 시란 공동체의식의  표현수단이며, 노래로 부를 것을 전제로 한 가사시가 시의 개념 속에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0년 주기로 서로 대응  
 남의 시는 전적으로 시인 자신의 세계관이나 예술관에 의지하지만 북의 시는 원칙적으로 당성·노동계급성·인민성이라는 문예이론과 당의 정책에 좌우된다. 말하자면 북의 문학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북한현실에 맞게 특수화한 주체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정책문학의 범주에 속하지만, 남의 문학은 개인에 귀속되는 자유문학에 기초를 둔다. 북의 문학은 이른바 절대주의원칙, 그리고 남의 문학은 상대주의원칙에 기반을 둔다는 뜻이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가 남과 북의 문학을 논할 때 서로의 입장에서 자기만을 주장할 게 아니라 사로의 가치·평가기준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는 자세가 긴요하다고 하겠다.

 해방 후 남북문학은 대체로 10년 주기로 서로 대응하면서 전개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른바 해방공간(1945년 해방부터 6·25 발발 무렵까지를 지칭), 북에서는‘새조국건설시기??라고 부르는 이 시기가 남북 시 이질화의 시발이 된다. 남에서는《청록집》(46년)《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48년)등과 같이 자연?생명?사랑 들 원형적인 정감이 주류를 이룬다. 이에 비해 북에서는 만주빨치산의 무장투쟁을 형상화한《백두산》(조기천?47년)《김일성 장군의 노래》(이찬?46년)《삐라대》(최석두?47년) 등과 같이 정치사회적 선동 선정성에 집중하고 있다. 순수문학과 정치문학이라는 변별성이 이질화의 단초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남북의 시가 극단적인 이질화 내지 적대적 감정으로 치닫게 되는 것은6·25부터이다. 6·25의 성격 자체가‘사변?동란??이나??조국 해방전쟁??이라는 용어선택에서 드러난다. 30년대 시단활동을 하던 안용만은 북에서 종군하며??따바리 불타는 총자루 /앞세워 승승장구/38선을 넘어/벌써 아득한 천리길/나의 따바리 가자/대구, 진주를 거쳐/려수, 목표, 부산으로/아니 제주도 끝까지??(〈나의 따발총〉 부분)라고 인민군의 승전의지를 고무, 선동한다. 한편 모윤숙은??물러감은 비겁하다. 항복보다, 노예보다 비겁하다/둘러싼 군사가 다 물러가도 대한민국 국군아-너만은/이 땅에서 싸워야 이긴다. 이 땅에서 죽어야 산다??(〈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부분)면서 국군의 반공애국의식과 승전의지를 적극 고취한다. 어제 時友가 오늘의적이 된 셈이다. 수백만의 사상자가 나면서 6?25는 국토와 민족을 양단하고 민족의 마음마저 원수처럼 갈라놓은 것이다.

 6·25 이후 남북의 시는 더욱 폐쇄성을 강화하면서 극단적인 이질화로 치닫는다. 분단에 의한 민족재편성이 문학재편성 내지 민족문학의 분단·불구화를 심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60년대는 남에서 4·19와 5·16이라는 상이한 갈등을 낳는다. 그러면서 순수시 편향성에서 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한다. 북에선 천리마운동을 축으로“수령에 대한 충성과 찬양, 사회주의 혁명?건설의 찬양고취, 인민의  노동계급성 찬양, 제국주의?사회주의 비판 폭로,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이라는 기본정책을 집중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이질화를 심화해간다.

 70년대 와서는 하나의 전기가 남쪽으로부터 마련된다. 70년대 벽두 김지하와 전태일 충격이 그것이다. 70년대 들어서 급격한 산업화와 그에 따른 빈부격차의 심화, 노동계급의 급격한 대두, 각양각색의 소외·불평등 문제에 문학이 응전력을 강화해가시 시작한 것이다. 시〈오적〉과 소설《객지》《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등이 그 한 예가 되겠다.‘민중적 내용의 민족적 양식화??로 요약되는 김지하의 일련의 담시들은 독재정권 및 각종각양의 사회구조적 모순과 부조리에 맞서 민족문학의 한 가능성을 제고하기 시작한 데서 의미가 드러난다.

80년대 들어‘ 분간??어려워 
 80년대 들어서 남북의 시는 새로운 활로를 열어가기 시작한 것으로 이해된다. 사회주의 체제로서 북한은 북한대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당성·노동계급성·인민성을 강화해가는 가운데 서정성과 예술성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대두된다. 오로지 선동선정성에 치달아오던 정치문학이 순수·예술주의문학의 향기가 더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자본주의체제에서 남한은 개인·자유주의문학을 기본으로 순수지향·예술편향성을 보여왔던 바, 80년대에 이르러 세칭 만족문학으로 요약되는 노동계급성·사회정치투쟁성의 시들이 전면에 대두한다. 박노해의《노동의 새벽》이나 이산하의 장시《한라산》 김남주 백무산의 일련의 시들이 그 대표적 예이다. 분단 반세기의 세월이 어느새 문학의 개인성·사회성 및 사상성·예술성이라는 두 가지축을 자생적으로 회복해가기 시작한 것일까. 아니면 갈등·대립의 냉전이데올로기가 공존·화해라는 탈이데올로기로 변화해가기 시작한 세계사적 조류가 한반도에도 조금씩 밀려들기 시작한 것일까.

 여하튼 80년대 들어 남북의 시는 하나의 공감대를 이루기가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①새벽이슬 남 먼저 털어서만도 아니라오/꽃나이 꿈을 묻고 땀을 묻어/나른 벌 땀빛마저 달라지게 기름지운/그 뜨거움이 이랑이랑 물결친다오/스쳐지나는 바람결에도 풍겨온다오/쭉정이 한 알 밝은 가을 흐리울 것 같아/벼꽃 피는 소리를 지켜 밤새우던/그 갸륵한 마음의 향기

 ②마른 자리 반반한 풀밭을 골라/빨갛게 파랗게 원앙을 수놓은 하얀 보자기를 깔고/그 위에 들밥을 차리는 농부의 딸을 보아라/…중략…/-아저씨 밥 한숱 뜨고 가세요/지나가는 낯선 사람도 불러/이웃처럼 술도 한잔 드시게 하는/조선의 딸 그 마음을 보아라/마을에 하나뿐인 아니 이 나라에 하나 뿐인

 이 두편의 시는 어느 것이 남의 것이고 어느 것이 북의 것인지 분간이 쉽지 않다. 그만큼 두 편의 시가 농촌의 삶, 농민들의 삶을 다루면서도 예술성과 넉넉한 사랑의 마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①이‘벼꽃피는 소리를 밤새우던/그 갸륵한 마음의 향기??라는 공감각심상의 섬세한 표현과 그 서정적 울림으로 인해 예술성을 추구하는 남쪽의 시로 여기기 십상이다. 시②가 공동체의식이나??조선의 딸??과 같은 시어로 인해 북쪽의 시로 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시①은 북한시인 량덕모의〈이 벌로 오시라〉이고 시②는 남쪽 시인 김남주의〈조선의 딸〉이다.

 그만큼 80년대 이후 남과 북의 시는 민족문학이라는 커다란 공감대를 형성해가면서 근접해가고 있는 데 아닌가 한다. 남과 북의 민족문학은 비록 다소 개념의 차이는 있어도 민중이 역사전개의 주체이자 근본추진력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민족적 양식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근년에 들어 북한문학에 갈등이론이 제기되고 도식성·목적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작품들이 다수 등장한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라 하겠다. 아울러 남쪽에서 노동자계급성을 강조하고 전위성을 주창하는 진보적 성향이 대두함으로써 남과 북의 문학 내부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것은, 그것 자체가 분단극복을 위해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일제 강점기까지만 해도 공유하던 민족사, 민족문학적인 자산과 원형질을 적극 발굴하여 최대한 살려나감으로써 민족동질성을 회복해가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남북간에 활발한 길트기 작업을 전개하면서 민족공동체 의식, 운명공동체 의식을 확보해가야 할 운명적 시점에 처한 것이다.

 ‘한국??이 주체가 돼야 하지만??한국??만 내세워서도??조선??만 강조해서도 안된다. 모든 민족구성원이 주인의식을 갖고??민족??의 대도를 향해 걸어갈 때 진정한 분단극복, 통일에의 길이 열릴 것이 분명하다. 이 점에서 오늘 이 땅의 문학이 진정한 민족문학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당위적 명제라고 하겠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