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륙의 땅으로 변한 ‘자유의 땅’ 라이베리아
  • 양한수 (민주일보 경제부장) ()
  • 승인 1990.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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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도 정권과 반군 8개월째 치열한 공방전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비참한 국가는 아마 라이베리아일 것이다. 인국 2밷50만명, 면적 약 11만㎢의 서부아프리카 소국 라이베리아는 정부군과 반군간의 치열한 전투, 양측의 무차별 양민학살, 약탈 등 야만적 파괴행위로 침몰해가고 있다.

 작년 12월 크리스마스 때 1백여명의 극소수 반군이 인근 코트디부아르 국경을 넘어 새뮤얼 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인 잭슨 도의 출신지인 님바 지역을 통해 진격해 들어왔을때만 해도 아무도 새뮤얼 도 정권이 쉽게 붕괴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정보망을 자랑하는 미 중앙정보국(CIA)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반군이 대통령관저 부근을 제외한 라이베리아 전역을 장악하게 된 원인은 80년 집권 이래 실정을 거듭해온 도 대통령 정부의 무능과 부패, 그리고 크란족 우대 및 기오족을 비롯한 타부족에 대한 학대와 차별정책이 국민들의 반감을 산 것 등이다.

 찰스 테일러(42)가 이끄는 반군은 초기에 정부군의 반격으로 진압되는 듯했으나 정부군이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고 부녀자를 강간하며 재물을 약탈하는 만행을 일삼자 각 지역주민들이 오히려 반군에 가담함으로써 세력을 증강하게 되었다.

 라이베리아는 1847년 미국에서 해방된 흑인노예들이 중심이 되어 건국한 나라로 그간 미국이 대부 노릇을 해왔다. 그러나 미국이 민심을 잃은 도 정부에 대한 지원을 거부하자 반군의 공세에 고립무원이 된 정부군은 요새화된 대통령관저를 중심으로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30일에는 정부군이 수도 몬로비아 외곽의 세인트 피터즈 교회에 설치된 난민보호소를 습격, 최근 수도권 대부분을 장악한 반군의 주축인 기오족과 마노족의 부녀자와 어린이 6백여명을 무차별 학살했다고 생존자들은 전했다. 정부군은 잠자고 있던 난민 중 남자는 칼로, 여자와 어린이는 기관총으로 닥치는 대로 살해했다.

 

의학 연구용 침팬지까지 잡아 먹어

 한편 코트디부아르 국경을 넘어 수도에 진입한 테일러의 반군과는 별도로 북부의 시에라리온 국경지대에서 수도권으로  쳐들어온 제2의 반군(지도자·프린스 존슨)은 미국인, 영국인 등 다수의 외국인을 인질로 잡고 있어 수수방관하던 미국의 개입을 불렀다.

 AP통신은 미 해병대원 2백25명이 지난 5일 몬로비아에 진입, 미국인 62명과 외국인 12명을 철수시켰으나 이 과정에서 발포나 반군의 저항은 없었다고 백악관의 발표를 인용, 보도했다.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치열한 시가전이 전개되고 있는 몬로비아는 전기와 수도가 끊겼으며 상가는 철시하고 모든 식료품가게는 굳게 문이 잠긴 상태라 주민들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정부군과 반군의 일진일퇴로 주민들의 이동이 봉쇄된 상태라 사람들은 아사를 면키 위해 의학연구용 침팬지까지 몰래 잡아먹고 있다고 한다.

 70년대까지 아프리카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로 ‘아프리카의 작은 미국’ ‘검은미국’ 등으로 주변국가의 부러움을 샀던 라이베리아가 이처럼 비극적인 수난을 겪게 된 것은  지난 80년 4월 육군 상사 출신의 도가 유혈쿠데타에 성공, 집권하면서부터이다. 도 집권전까지는 소위 ‘아메리코 라이베리안’ 또는 ‘콩고피플’로 불리는 소수의 미국 흑인노예 출신들이 권력과 재력을 독점, 국민들의 저항을 받았으나 미국의 강력한 경제지원과 자원 수출 및 국적선 취득에 따른 해운수입에 힘입어 경제적으론 매우 안정돼 있었다.

 80년 쿠데타에 성공한 도 상사는 전임 홀버트 대통령을 관저 침실에서 사살하고 각료 전원을 해변가에 끌어내 많은 시민들이 보는 가운데 공개총살형에 처하는 잔인성을 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때 미국, 유럽 등지로 돈을 빼돌린 아메리코 라이베리안은 대부분 라이베리아를 떠났다.

새뮤얼 도는 쿠데타 후 ‘녹색혁명’을 내걸고 농업정책에 주력했으나 구호에만 그친 감이 없지 않다. 그의 측근에선 크란족 출신들이 ‘인의 장막’을 구축하고 매관매직을 비롯한 각종 부정을 저질렀다. 라이베리아는 지구 생성 후 한번도 손대지 않은 엄청난 양의 목재와 철광석, 그리고 세계 최대인 파이어스톤, 고무플랜테이션 등 많은 천연자원을 가졌으나 정부관리들이 식민자본가들에게 농락당해 뇌물을 받고 각종 이권을 팔아넘기기에 정신 없는 상황을 연출했다.

 도는 화장실까지 달린 벤츠1000과 벤츠600등 여러 대의 고급 승용차를 갖고 있으며 88년엔 짐바브웨의 하라레에서 열린 阿洲기구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전세기를 대절하는 등 호화스런 생활을 즐겼다. 그가 행차할 땐 대부분 차량통행을 금지시키고 모터케이드를 앞세워 무서울 정도의 빠른 속력으로 거리를 질주하곤 했다.

 

지역감정 촉발해 비극 초래

 라이베리아의 민심은 도와 측근의 부정부패로 경제에 금이 가기 시작하자 극도로 악화되었다. 이에 미국은 도의 私黨이나 마찬가지인 집권 라이베리아민족해방당(NDPL)외에도 몇 개의 야당을 허락하도록 압력을 넣어 85년 다당제하에서 대통령선거를 치르도록 했다.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세계은행(IBRD)의 고위직을 지낸 존 앨런 서리프 여사가 이끄는 라이베리아행동당(LAP)은 국민들의 큰 지지를 받았으며, 행동당의 대통령후보 잭슨 도의 인기는 현직 새뮤얼 도를 능가했다. 막상 선거 개표가 시작되어 패색이 짙어지자 도는 개표를 중단하고 며칠간 투표지를 불태우는 등 각종 비행을 저지른 끝에 자신이 당선된 것으로 공표해버렸다.

 특히 도의 쿠데타 동지이며 군사령관을 지내다가 도의 포악한 성격에 위협을 느껴 미국으로 망명했던 토마스 퀴용파 장군이 85년 10월 반군을 이끌고 궐기하자 대부분의 라이베리아인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성격이 유약한 퀴용파 장군은 시민들의 환호에 감격하여 대통령관저의 접수를 미루다가 반격에 나선 도에게 결국 사살당하고 말았다. 그후 도는 퀴용파 장군과 잭슨 도의 출신지인 님바지역의 기오족을 철저히 탄압하는 등 지역감정을 촉발시켜 오늘의 비극을 초래했다.

 찰스 테일러와 프린스 존슨 등 두 갈래로 형성된 반군이 도 정권을 붕괴시킨다 해도 라이베리아는 고질적인 부족갈등과 부정부패의 늪에서 헤어나리란 보장이 없다. 우선 반군지도자 들 중의 하나는 도태돼야 한다. 소위 아메리코 라이베리안으로 알려진 테일러가 집권한다 해도 라이베리아를 도탄에서 구출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테일러는 대부분의 라이베리아 지도급 인사가 그렇듯이 미국의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침례교 신자로 알려지고 있는데 공금횡령으로 지명수배 돼 붙잡혀 라이베리아로 인도될 때를 기다리던 중 탈출했다고 한다. 도피한 뒤 5년간의 행적은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 일부 미국의 분석가들은 그의 반군이 리비아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 소속 5개국 정상들은 7일 감비아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8개월째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라이베리아에 나이지리아군을 주축으로 한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테일러는 새뮤얼 도 대통령과 친구관계에 있는 이브라힘바방기다 대통령이 나이제리아가 평화유지군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데 대해서 거부반응을 보였다. 반면에 테일러와 경쟁관계에 있는 프린스 존슨은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의 군사력 개입을 환영하고 “만일 이들이 개입하지 않을 경우 미해병대를 공격할 것”이라고 위협하여 대조를 보였다.

 아무튼 라이베리아는 추악한 내전상황을 조속히 종식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선량하고 낙천적인 라이베리아인들은 국호가 의미하는 ‘자유’를 찾고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서 파괴된 국가질서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블랙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식민지 경험을 갖고 있지 않은 라이베리아인의 자존심을 되찾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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