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도 집이 있건만
  • 편집국 ()
  • 승인 1990.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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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본·대만 시민단체, “주택 보장하라” 3국 정부에 촉구

 집한칸 땅 한평 없는 설움에는 국경이 있을 수 없다. 지난 2일 도쿄에서는 심각한 토지·주택문제로 동변상련의 처지에 놓여 있는 한국 일본 대만 세나라의 시민단체가 연석회의를 열고 “각국 정부는 모든 사람에게 주택을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한·일·대 토지주택운동 연대회의’라는 명칭이 붙은 이 대회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徐京錫사무총장과 李根稙정책연구실장이 한국측 대표로 참가했다. 일본측 대표로는 작년말에 결성된 ‘토지·주택시민 포럼’이라는 시민단체가 참석, 한국과 대만에서 겪는 토지문제의 심각성을 거울 삼아 일본의 광란지가와 주택문제의 해결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세나라 토지·주택문제 생존권 위협할 정도

 이 대회 참가단체 중 가장 이색적인 시민단체는 대만의 ‘무주택자 단결조직’. 이 조직은 토지·주택가격의 폭등으로 내집마련의 꿈이 요원해진 20~30대의 젊은이들이 작년 7월에 결성했다. 대만에서는 이들을 달팽이족이라 부르는데 그 단체의 심볼마크가 달팽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만의 젊은이들이 달팽이보다 못한 열악한 주택사정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한다. 달팽이에게 있어 집(껍데기)은 생명의 일부분이며 집이 없으면 죽기 때문에 달팽이 사회는 달팽이마다 각각 집을 갖는 합리적인 제도를 갖고 있으나 인간사회는 ‘1가구 1주택’과는 거리가 먼 비합리적인 사회라는 논리를 전개하며 토지~주택정책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집없는 달팽이족’으로도 불리는 이 단체의 리더는 30대 후반의 국민학교 교사. 달팽이족은 작년 8월 땅값이 가장 높다는 타이베이시 한복판에서 5만명이 참가한 대중집회를 열었으며 “집이 없으면 길에서 잘 수밖에 없다”고 도로에 드러누워 철야시위를 벌였다. 또 한달후에는 리더를 포함한 무주택자 1백쌍이 합동결혼식을 치르고 첫날밤을 공원에 설치한 텐트에서 보내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3개국 시민단체가 ‘아시아토지주택시민연맹’을 결성할 것에 합의했다. 무엇이 세나라 시민단체의 응집력을 북돋웠는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토지·주택문제가 시민생활의 생존권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있다는 위기의식이다.

 한국 일본 대만은 모두 87년을 전후해서 급격하게 토지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특히 인구집중 현상이 현저한 대도시에서 토지투기가 극성을 부려 서민들의 내집마련 꿈이 요원해지고 있다는 점도 공통적인 현상이다.

 이런 지가상승의 영향으로 자연히 주택가격도 폭등, 도쿄의 평균적인 아파트 가격은 5억원, 서울은 1억원, 타이베이는 2억5천만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이를 연간 평균 세대 수입으로 나눠보면(연수입배율), 도쿄가 10.7배, 타이베이가 12배나 되며 서울은 무려 10~15배의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 연수입배율을 미국(3.0), 영국(3.6), 서독(5.3)과 비교해보면 세도시에 사는 서민들의 내집 마련 꿈이 얼마나 요원한 이야기인가를 잘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연수입배율의 상한선이 5.5배라는 점을 고려하면 서민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자명해진다.

 한국 일본 대만에 한꺼번에 몰아친 투기열풍과 지가앙등을 초래한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그 근원적인 요인으로 전문가들은 세나라가 똑같이 국토가 협소한 데 비해 인구가 과밀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세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토지소유욕이 강한 편이었다. 또 이런 토지에 대한 잠재적인 초과수요는 “토지가격은 절대로 하락하는 법이 없다”라는 ‘토지신화’를 창조해온 것도 사실이다. 이 왕성한 토지소유욕과 토지신화를 맹신하는 풍토는 언제든지 토지투기를 유발할 수 있는 도화선으로 변신할 수 있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토지투기를 유발한 계기의 하나는 각국에 넘쳐흐르기 시작한 과도한 부동자금이다. 대만은 막대한 무역흑자국이기도 하지만 지하경제의 자금량이 국민총생산(GNP)의 30%에 달하는 지하경제대국이기도 하다. 이 지하경제의 부동자금이 얼마전까지는 중국과의 긴장관계로 보석 금 주식 등에 투자되었으나 중국과의 관계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자 토지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토지세제 결함 많아 기업의 ‘땅투기’ 극성

 얼마전 일본은행은 일본의 토지가격이 급등하게 된 원인으로 금융완화, 수도권에의 경제기능 집중, 토지투기, 절세를 목적으로 한 법인의 부동산투자 등을 지적하고 2.5%까지 금리인하를 단행한 일본은행의 금융완화정책이 토지투기를 조장하였다는 자가비판적인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초저금리정책은 부동산업자에게 막대한 투기자금의 공급을 가능케 하고 이로 인해 급격한 지가상승이 일어나게 됐다는 것이다. 또 한국 일본 대만은 이런 투기열풍을 몰고온 주역이 ‘기업의 땅투기’라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각국의 기업들은 재테크 절세라는 명목하에 땅사재기 경쟁을 벌였다. 한국의 경우 89년말 현재 30대 재벌기업의 보유부동산이 대구시 면적보다 큰 1억4천여만평이고 부동산 거래량의 90% 정도가 기업에 의한 것이었다.

 작년 도쿄도의 토지거래 11만5천건 중 법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35%, 또 도쿄도의 토지를 지주 구성비로 볼 때 8%에 불과한 법인지주가 전체토지의 27%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일본에서도 '토지의 법인화 현상'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이같은 법인화 현상의 원인은 기업에 유리한 토지관련 세제에 있다. 일본의 경우 5년이하의 단기보유를 목적으로 하는 토지거래에는 높은 세율의 양도소득세를 부과하고 있으나 법인에는 여러 가지 특례를 인정해주고 있다. 또 토지보유세인 고정자산세는 평가액의 1.4%가 부과되고 있으나 시가로 환산한 실질적인 세율은 0.1%밖에 안돼 이것이 기업의 토지소유를 부채질하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미온적 개혁의지 공동 감사하기로

 대만에는 손문의 ‘삼민주의’ 중에서 민생주의의 이념에 입각해서 나온 ‘平均地權’이라는 제도가 있다. 토지는 그 성격에 따라 유효하게 이용되어야 하며 토지에서 얻은 이익은 반드시 공공목적에 환원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원칙을 기본이념으로 하는 이 제도는 이미 54년 8월에 ‘평균지권조례’로서 법률화되어 대만의 토지정책의 근간을 이루어왔다.

 덕택에 대만은 얼마전까지 토지정책의 모범국이라고 불려왔으며, 우리나라의 토지공개념 관련 3개법 중 개발이익환수법은 평균지권제도를 많이 참고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이상적으로 보이는 이 제도도 토지투기열풍에 직면하자 수많은 결함을 드러냈다.

 그 원인으로서는 법인기업에 대한 토지양도세가 개인과 똑같은 세율로 적용되는 세제상의 결함이 지적되고 있으며 이 세제상의 결함이 기업의 토지투기를 조장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만의 이상적인 평균지권제도가 사문화되고 있는 구조적인 원인은 이 제도를 시행할 수 있는 행정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말을 바꾸면 땅과 권력을 갖고 있는 정계·재계의 압력에 의해 말단 행정기관의 실행 단계에서는 구멍투성이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같은 대만의 교훈은 토지공개념 관련법이 아무리 이상적이라 할지라도 정부의 개혁의지가 부족할 때는 간단히 사문화되어 버린다는 경고를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기업의 토지보유를 억제하고 토지투기를 근절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토지관련세제를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일본 정부의 토지세제소위원회가 발표한 중간보고에 의하면 보유·양도면의 과세강화를 토지정책의 최우선과제로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대책으로서는 특히 법인기업에 대한 과세강화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체적으로는 토지보유세인 고정자산세를 대폭 인상하여 기업의 토지보유 비용을 가중시키며 특히 기업의 비업무용토지에 대해서는 국세형태의 새로운 토지보유세를 부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4백30조엔에 달하는 기업의 미실현 토지평가액에 대해서도 자산재평가세를 신설, 과세를 강화함으로써 토지의 장기보유를 억제할 것도 검토중이다.

 한국 일본 대만은 기적과 같은 고도경제성장을 이룩해놓고도 정부당국의 토지·주택정책의 실패로 국민생활의 질적 수준 향상에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정부당국의 정책이 재벌기업들의 로비활동에 밀려 자꾸 뒤집히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런 정부당국의 미온적인 개혁의지를 독려·감시하고 시민 차원의 정책대안을 제시함에 있어 3개국 시민단체가 함께 대응해간다는 결의를 굳힌 도쿄대회는 매우 뜻깊은 회의였다.

도쿄·채명석 통신원

아시아 3국 서민들의 내집마련 꿈, 얼마나 먼가

국토면적인구1인당

GNP지가상승률주택가격

(아파트)연수입배율

(주택가격/

연간평균세대수입)토지소유자수주택소유자인구대비세대대비전국대도시한국9만9천㎢4천만명5천달러3배

(78~88년)1억원10~15배서울

:70만명14명에

1명28%51.6%40%일본37만8천㎢1억2천만명2만달러2.9배

(83~90년)5억원10.7배도쿄

:98만명(개인 90만명)9명에

1명33%60%54%대만4만㎢2천만명8천5백달러3~4배2억5천만원12배타이베이

:63만명4명에

1명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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