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최후 지키주는 ‘사랑지기'
  • 여운연 차장 ()
  • 승인 1991.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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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50이 넘은 우리를 누가 그렇게 기다리며 보고싶어 하겠어요. 저희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올해로 3년째 호스피스 활동을 하고 있는 가정주부 김미자(51) 최덕원(55)씨는 거의 매알 말기환자들을 찾아보는 자원봉사자이다.

 두 사람은 한국자원봉사능력개발연구회(회장 김옥라)가 실시하는 호스피스 교육 프로그램 2기 출신. 10주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88년 11월부터 자원봉사를 나가기 시작해 지금까지 함께 임종을 지켜본 환자가 50여명에 이르고 있다. 두 사람은 늘 같이 다니는 이유는 사정상 한쪽이 환자와의 약속을 지켜주지 못하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이다.

 현재 나가고 있는 곳은 경희대 의료원내 암 병동. 병원측은 말기환자 중에서도 일체 말을 하지 않거든 치료를 거부하는 사람, 보호자가 없는 딱한 처지의 환자를 주로 이들에게 연결시켜준다.

 환자나 가족이 호스피스 봉사자를 원한 경우에도 막상 접근하려면 대부분의 환자가 경계의 눈빛을 보이게 마련이다. 이 때 환자와 대화를 나누게 돼도 병증세에 관한 화제는 절대 꺼내지 않는 게 상식이라고 한다.

 가령 요즘 같은 늦가을엔 거리에 쌓인 은행잎을 주워가지고 가서 환자의 손에 쥐어주며“벌써 단풍이 들었네요??식의 부담 없는 대화로 말문을 튼다. 환자쪽에서 일단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면 때로는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게 말못한 비밀까지 몽땅 털어놓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환자가 세상을 떠나면 가족보다 더 슬퍼할 때도 있다. 누구한테도 하지 못한 얘기를 다 들어줄 수 있었고 환자가 가장 고통스러울 때 만난 인연 때문이다.

 환자와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얘기를 들려주기보다는 그들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며 환자의 얘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일이다.

 김미자씨는 특히 환자를 보고 집에 돌아가면 반드시 그날의 일을 기록해둔다고 한다. 수년 동안 남겨놓은 메모를 모아 12월 초엔 첫 호스피스 사례집을 내놓을 계획이다. 또한 호스피스 교육프로그램과 신학교강사로 초빙돼 그간에 쌓은 호스피스활동 경험을 강의하기도 한다.

 “병명?나이?통증의 정도?임종 모습도 환자마다 다 다르지요. 한가지 뚜렷한 것은 죽음 앞에선 모두가 다 외로워하고 두려워한다는 사실입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두 사람은 일주일에 이틀을 환자의 집을 방문해 가정간호도 해준다. 때로는 부산까지 찾아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동안 호스피스 활동에 드는 경제적 부담도 적지 않아 애를 태우기도 했지만 얼마 전부터는 소속 교회(서울 방배동 새순교회)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자신들의 활동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몹시 꺼려하는 이들은“자원봉사이기 때문에 큰 기쁨을 맛볼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에 지속적으로 참여해주길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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