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민간 무대’선언 서울 연극제 개막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0.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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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기획사가 처음으로 전체 진행

국내외 10개 극단 참가… 농촌문제 등 현재 상황 다뤄

 제14회 서울연극제가 곧 개막된다. 오는 8월23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42일 동안, 국내외 10개 극단이 참가하는 ‘90서울연극제는, 연극계 최대의 행사일 뿐만 아니라 본격적인 민간연극제의 정착 여부를 가늠하는 첫 ’무대‘라는 점에서 큰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다.

 희곡심사를 통과한 6개 작품과 공연심사를 거친 2개 작품이 문예회관 대·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이번 연극제에는 유고슬라비아 슬로베네국립극단과 올 전국 연극제에서 대상을 차지한 인천미추홀극단이 특별초청된다(참가작·공연일정 도표 참조)

 서울연극제 운영위원장 金正鈺씨는 “연극인들이 자유롭게 만나 교류하는 축제적 요소를 강조했다”면서 “이번 연극제가 문예진흥원뿐만 아니라 서울시의 지원을 받게 된것도 의미있는 성과이다. 민간공연예술기획사(코벤토)가 처음으로 연극제 전체진행을 맡았는데 앞으로 이같은 형식이 정착, 활성화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위원장은 앞으로 서울연극제가 동북아문화를 이끌어가는 국제연극제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다양한 주제, 다양한 형식

 이번에 초연되는 창작극 6편은 정치 사회 교육 매스컴 농촌문제 등 우리 사회의 현재적 상황을 연극적 문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현실비판극과 역사극이 주류를 이뤘던 지난해 연극제에 비해 이번 참가작은 그 소재와 주제가 다양해진 것이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한가위 밝은 달아>는 농부 3대의 삶을 그리면서 흙에서 살아온 이들의 땅의 철학을 차분하게 형상화한다. 윤주상 박정자 이승호씨 등이 출연, 사실주의 연극의 한 수준을 보여준다. <언제나 어디서나>는 광산촌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권력과 인간의 함수관계를 그리고 있다. 권력의 편에 서거나 그에 맞서야 하는 인간의 갈등이 무대에 펼쳐진다. 마홍식 양금석씨 등이 출연한다. 위 두 연극이 산업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사각지대를 주목하고 있는 반면 다음의 작품들은 후기산업사회의 중심인 세속도시에서 드러나는 인간속성들에 초점을 맞춘다.

 지난해 연극제에서 콤비를 이루었던 李潤澤 蔡允一씨가 다시 만난 <혀>는 우리 사회 전반에 번져 있는 성(폭행·차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피해자인 여성인 가해자 남성의 혀를 잘라버려 화제가 되었던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전형적인 재판극이다. 채씨는 “사회적 통념과 싸우는 과정에서 연극적 진실을 보여주겠다”고 말한다. 이호재 채승희 김학철씨 등이 등장,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를 보여준다.

 30대 신진 연극인들이 올리는 무대 <시민 조갑출>도 실제 사건을 변형한 작품이다. 텔레비전 9시 뉴스에 나타나 “내 귀에 도청장치가 되어 있다”고 소동을 벌여 세상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한 소시민의 환각과 현실을 무대화, 매스컴의 이중적 얼굴을 드러내보인다. 박건식 장기옹 고인배씨 등 젊은 연기자들이 주축을 이룬 공연이다. 지난해에 이어 연극제에 참가하는 신예극작가 배봉기씨의 <불임의 계절>은 우리의 교육현장을 진실과 거짓이라는 두 대립구조 속에서 우화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승옥 정경순씨 등이 무대에 선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꾸준하게 재해석해 오고 있는 기국서씨의 <햄릿 5>는 <혀> <시민조갑출>등과 함께 형식 실험적인 성격이 돋보이는 공연이다. 모두 6개의 독립된 에피소드를 통해 ‘지금·여기’의 갈등과 모순을 ‘낯설게‘ 만드는데 이같은 형식실험은 거대한 권력과 갖가지 고정관념의 껍질들을 벗기려는 시도로 보인다.

 <우린 나발을 불었다>와 <그것은 목탁…>은 공연참가작으로 기왕에 발표되었던 작품 가운데서 선정된 무대이다. <우린 나발을…>은 도덕성을 상실한 기성세대와 명분주의자, 이기주의자들의 전형을 희극적으로 그려낸 작품인데 지난번소극장 공연작품을 대극장용으로 바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목탁…>은 “박제화되어가는 불교연극의 현재화”를 위해 쓰여진 작품. 구도의 길에 들어선 스님들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면서 사회에 대한 종교의 역할과 함께 참된 자아를 생각게 하는, 잔잔한 ‘불교사회극’이다.

 특별초청 작품인 유고국립극단의 <소시민의 결혼>은 국내 연극계에도 널리 알려진 브레히트의 초기작으로 에드바르드 밀러가 연출을 맡았다. 소시민의 결혼식 축하연에서 벌어지는 일상적 삶의 풍속도를 그린 이 연극은 대사보다는 ‘찰리 채플린과 같은’ 동작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초청작인 윤조병씨의 <아버지의 침묵>은 일그러진 정치현실 아래서 나타나는 인간소외와 이기주의를 고발한 작품인데, 전국연극제와는 달리 주제보다는 시청각적 요소를 부각시키면서 “침묵 뒤에 숨겨진 수많은 상황들”을 기호화시키고 있다.

 아직 막이 오르지 않은 상태여서 연극제의 의의와 성과들을 추스릴 계제는 아니지만, 기대가 커서인지 작품 심사과정, 연극제 운영미숙, 연극제 부대행사의 부족과 연극제 기간 등 ‘개선할 여지’들이 벌써부터 노출되고 있다.

 연극제 희곡심사위원 가운데 한사람이었던 金雨玉씨는 작품수준이 예년과 비슷하다며 “희곡심사 위주인 현 심사방법이 공연을 심사하는 실연심사제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간 여섯차례나 희곡심사에서 탈락했다가 지난해부터 연극제에 참가하는 연출가 채윤일씨도 같은 생각이다. “희곡은 문학성이 강조되어 실제 무대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작품성과 함께 연극제 운영이 관건

 연극제 전체 진행을 맡은 코벤토(대표 배경환)의 운영에도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 연극제 기간 동안 전체 입장권(객석 6만석)의 50%를 구입하는 조건으로 연극협회에 1억5천만원을 지불하고 대신 연극제의 광고료와 입장료 수입권을 갖는 코벤토는 연극에 대한 소양부족과 홍보미숙 그리고 대기업 스폰서 유치에 결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코벤토가 전체 운영을 맡아, 각 극단이 관객유치 부담감에서 벗어나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 것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만 연출가 심재찬씨나 채윤일씨의 지적처럼 “홍보시기를 놓치고 있으며 그 접근법이나 전략의 미숙”은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게 됐다.

 이번 연극제 기획에서 발견되는 또다른 아쉬움은 연극제 관련 프로그램의 부재이다. 브레히트학회 세미나를 제외하면 전무한 실정이어서  관객개발이나 연극붐 조성에는 거의 배려가 없다. 가령 한국연극사 자료 전시, 연극 사진전, 연극비디오 상영, 연극음악제, 무대의상전, 어린이를 위한 행사, 북한연극 소개, 해외동포 참가 등은 그리 어려운 행사가 아닐터이다. 또한 40일이 넘는 연극제 기간도 재고할 부분이다. 축제치고는 너무 길어 시민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어려운 것이다.

 연극제 막이 오르면 더 많은 지적들이 나올 것이다. 그 지적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연극계 전반은 더 성숙할 것이고 김정옥씨와 연극계가 희망하듯 국제연극제로 발돋움하는 길도 열릴 것이다.

 

 

제14회 서울연극제 일정

문예회관 대극장                          *공연참가작 ★ 초청작품 나머지는 희곡참가작

기간극단작품작가/연출내 용8.24~27유고국립극단소시민의 결혼★브레히트/밀러브레히트의 초기작. 소시민의 삶을 동작 위주로 표현8.28~30인천미추홀아버지의 침묵★윤조병/윤조병왜곡된 정치현실 속에서 삐뚤어져가는 인간을 묘사한다8.31~9.6성좌한가위 밝은 달아노경식/심재찬농부 3대의 삶을 통해 땅의 철학을 전하는 사실주의극9.7~9.13쎄실혀이윤택/채윤일성폭행 실화를 바탕으로 사회의 통념을 벗기는 재판극9.14~9.20신협햄릿 5기국서/기국서세익스피어 원작을 우리 상황에 맞게 재해석한 실험극9.21~9.27대하언제나 어디서나최인석/김완수광산촌을 무대로 권력과 인간의 관계를 조명한다9.28~10.4신시우린나발을 불었다★김상열/김상열우리 시대의 전형적 인물들을 코믹터치로 형상화

문예회관 소극장

기간극단작품작가/연출내 용8.24~9.6민예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이만희/강영걸득도의 과정에 있는 스님을 그린 불교사회극9.7~9.20맥토시민 조갑출박구홍/엄기백 소시민의 환각과 삶을 그리면서 매스컴의 두얼굴을 비판9.21~10.4여인극장불임의 계절배봉기/강유정거짓과 참의 대립 속에서 교육현장의 모순을 다룬다

                                                                                 (공연시간 4:30, 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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