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대국 이라크 등뒤엔 서독자본의 ‘추악한 얼굴’
  • 본·김호균 통신원 ()
  • 승인 1990.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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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멘스 등 수백개 기업 핵무기 생산 설비까지 팔아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 대하여 ‘望聖’을 선포할 정도로 이라크가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는 데 서독이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적지 않은 물의를 빚고 있다. 서독의 <슈피겔>지가 최근 두차례에 걸쳐서 자세히 보도한 바에 따르면 서독의 수백개 기업이 이라크에 각종 군수공장을 그것도 대부분 불법적으로 지어주었으며,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던 날은 물론, 그 다음날에도 서독제 군사장비가 취리히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바그다드로 공수되었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서독 기업의 도움으로 이라크가 이미 완공했거나 건설중인 군수공장에서는 재래식 무기뿐만 아니라 화학무기도 생산되고 있으며 핵무기 제작에 필요한 농축 우라늄도 생산된다는 것이다.

 서독 기업의 범법행위 중에는 서독 검찰이 이미 수사중인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슈피겔>지에 의해 처음으로 폭로되어 서독 정부조차 당황하게 만든 경우가 더 많다.

 

서독 정보부 요원 관련설도

 이라크 군부의 연구센터인 ‘모슬’에서 ‘사드(Saad) 16’이라는 이름 아래 추진되었던 사업에서는 빌레펠트시의 ‘길데마이스터프로젝타社’의 주도하에 ‘칼 차이스’(Carl Zeiss), ‘데구사’(Degussa) 등 서독의 저명한 기업들이 미사일과 화학무기를 개발하는 데 참여했다고 한다. H·H 금속주형社는 87년 중반에 영국의 미드 인터내셔날社를 통해 이라크가 투하 탱크(drop tanks)에 관심이 있는지 이라크 국방성에 문의했는데 이 ‘투하 탱크’는 화학무기를 비행기에서 투하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 기업은 이라크의 우라늄 농축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독기업이 이라크에 수출한 군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중동 최대의 군수산업단지인 타치(바그다드 근교)에서 추진되고 있는 ‘3117 타치’라는 프로젝트이다. 대포공장을 건설하는 이 프로젝트에는 ‘지멘스’, ‘MAN', ’루르가스‘(Ruhrgas) 등 1백개 이상의 서독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머지 않아 이 공장이 완성되면 이라크는 1백㎜∼2백3㎜ 대형포를 연간 1천기씩 생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공장의 바로 옆에서는 이미 포탄공장이 가동중인데, 이 공장을 건설하는 데에도 서독기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SMS 하겐클레버社는 압연기를, ’MAN'계열의 한 기업은 50톤짜리 크레인을,‘루르가스’의 자회사인 ‘LOI공업화로社’는 최장 15m의 포신을 주조할 수 있는 특수화로와 담금질 기계를 각각 공급했고, 포신을 깎기 위해 고도의 정밀성이 요구되는 선반기에는 ‘지멘스’사의 컴퓨터가 장치되었다고 한다.

 금액에 있어서는 ‘3117 타치’가 최대이지만 인명살상력에 있어서는 독가스에 비할 바가 못된다. 이라크는 이란과의 전쟁에서 독가스를 사용한 바 있는데, 이라크가 연간 수백톤의 독가스를 생산할 수 있는 제3세계 최대의 독가스 생산국이 되는 데에는 개발에서부터 생산에 이르기까지 서독 기업들의 참여가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다름슈타트 검찰과 쾰른의 관세범죄연구소가 수사하고 있는 칼 콜프社는 이라크가 이란과의 전쟁에서 사용한 독가스를 생산하는 데 중요한 ‘노하우’와 실험시설을 수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함부르크의 워터 엔지니어링 트레이딩社는 신경가스인 ‘타분’과 ‘사린’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화학물질을 하루에 17.6톤씩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수출했는데 거래 중개인이 서독 정보부요원이라 사건은 더욱 미묘해지고 있다.

 이 보도가 있자마자 서독 정보부는 관련설일체를 부인했지만 의혹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몇년 전에 어느 중개인이 이라크 정보부에 체포되어 사형선고까지 받았을 때 서독 대통령과 외무장관이 탄원함으로써 석방되었을 정도로 그 중개인이 중요인물이었느냐 하는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더욱이 서독의 <타게스 차이퉁>지가 뒤이어 각종 서류와 증언에 기초해서 서독 정보부가 유령회사를 통해 이라크는 물론 이란 리비아 이집트에 레이다, 무전기, 전화 및 텔렉스 도청기 등 각종 전자정보장비를 수출했을 뿐만 아니라 군사요원까지 훈련시켰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서독 정보부의 부인은 더욱 신빙성을 잃고 있다.

 최근에 미국 CIA는 이라크가 현재 “화학무기의 수백배”의 살상력을 갖는 생물학무기를 구매하기 위해 한 이집트인을 서독으로 파견했다고 서독 정보부에 경고했는데 이미 이라크는 서독에서 3년 전에 2백mg의 세균독을 구입했다고 한다. 사민당의 군비 전문가인 간젤의원의 말에 따르면 미국 CIA가 지금까지 서독 정보부에 제공해준 정보만도 1천가지가 넘는데 많은 경고가 무시되었다고 한다.

 불법 무기수출은 미국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카네기 재단이 4월에 발표한 연구 보고서는 무엇보다도 “서독 수출통제 당국의 태만”이 분쟁지역의 상황을 현저히 악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서독이 이라크의 군비확장에 결정적으로 참여했음이 밝혀지자 겐셔 외무장관은 8월12일 “법을 어기면서 이라크에 전쟁물자를 공급한” 서독 기업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서독의 기업가, 학자 기술자가 직접·간접적으로 분쟁지역의 군비생산에 참여하는 모든 통로를 막기 위해 무역법을 강화할 것을 예고했다. 그렇지만 일단 나토 동맹국으로 수출되었다가 분쟁지역으로 재수출되는 경우와 민수용 뿐만 아니라 군사용으로도 사용될 수 있는 시설이 명목상으로는 민수용으로 수출될 경우 이를 어떻게 통제하느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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