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의 탯줄을 찾아서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4.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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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수의 첫 소설집 〈사랑하라, 희망 없이〉

윤영수(43)의 첮 중.단편 소설집 〈사랑하라, 희망 없이〉(민음사)에는, 온전한 외양을 갖추었지만 정신적으로는 결코 온전하지 못한 반쪽짜리 인간 군상이 모습이 되풀이 나타난다.

  첩실의 딸이 주인공인 〈생태관찰〉이나 씨받이 첩실 어미를 둔 아들이 나오는 〈올가미 씌우기〉,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감정 유치된 적이 있는 아들을 둔 부모와 그에게 보내지는 생활비를 가로채는 동생의 이야기〈바람의 눈〉,〈봄 뜰〉에서처럼 무엇인지 훼손당하는 사람들,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가족의 모습, 이들 사이의 긴밀한 긴장관계가 그려진다. 이에 대해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가정이야말로 일차적인, 가장 근원적인 폭력 구조 아닐까요."

 윤영수의 문단 데뷔작인 〈생태관찰〉(제1회 현대소설 신인상)에서는, 머리가 없어도 호르몬만 있으면 성숙하여 알을 낳을 수 있는 나방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나방은 하반신만 암컷인데도 수컷을 유인할 뿐 아니라 교미하고 수정하여 알을 낳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사람들은 반쪽뿐인 나방과 별 다를 게 없다. 그 사람들의 세상은 “어머니.할머니이기를 거부하고 온전히 암컷으로만, 아랫도리로만 살려고 하는 여자들, 혹은 그와 반대로 여자이기를 거부하면서 머리로만 살려고 하는 여자들이 점점 여성들의 대표로 전화하고 있는 현상이 벌어지는?? 세상이기도 하다.

“모든 벽은 문이다"
 〈모든 벽은 문이다〉의 주인공 ‘나'는 '40대의, 일살이 올라 손모양이 두텁떡 같은 중년 여자에게 개성이라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내가 딸아이만 했을 때 지금 내 나이 또래의 중년 여자들이 길에서 방만하게 웃는 모양을 보고 저 아줌마들, 계속 살생각인가부지 하고 바로 옆을 스치며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렸던 생각이 난다??라고 생각한다.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70학번이고 교사였으며, 한때 돈벌기에도 열심이었던 전업 주부 윤영수가 문학으로 들어서는 길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의 문학적 특질은 모성마저 철저하게 분열을 겪는 오늘날의 사회, 그리고 가정을 들여다보는 시선과 인식의 깊이에서 탁월하게 드러난다.

 그렇지만 ‘모든 벽은 문'이라는 희망 어린 명제에서처럼 그의 소설의 주인공들은 상처투성이 가슴을 치유해줄'세상의 풍경'을 기대한다. 그리하여 그는 표제작 〈사랑하는, 희망 없이〉의 끝에서 마치 거대한 잠언처럼 말한다. '눈 감은 채 마주선 연인들이여. 가장 깊은 진실은 눈을 감아야 보이나니. 사랑하라. 희망 없이'

趙瑢俊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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