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육체노동자 정년은 60살?
  • 신기남(변호사) ()
  • 승인 1990.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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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만에 무너진 ‘55살’의 벽…일본에선 67세 적용

 “육체적 노동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농업종사자의 가동연한이 55세까지라는 경험칙에 의한 추정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고 오히려 일반적으로 56세가 된 뒤에더 더 가동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경험칙에 합당하다.” 이것은 금년 5월22일 선고된 대법원 판결이다.

 어떤 사람이 앞으로 몇살까지 일을 할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을 논하는 소위 가동연한이라는 것, 이것은 인사사고로 제기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가동연한이 길다고 인정되는 사람일수록 노동능력 상실로 인한 손해배상금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가동연한은 사고를 당한 사람의 직업 경력 연령 건강상태 등 구체적 조건에 따라서 다르며 이것의 구체적 판단은 법관이 내리게 된다.

 어떤 직업의 정년이 법이나 취업규칙으로 정해져 있다면 그 직업의 가동연한은 정년대로 인정을 받겠지만, 따로 정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가동연한에 있어서는 법관이 판단기준을 정하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별다른 특기나 지식이 없어도 신체만 건강하다면 누구나 종사할 수 있는 육체 노동자의 가동연한은 곧 일반적인 보통인간의 가동연한을 뜻하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 점에 관해서 일정한 합의점이 요구되던 끝에, 1956년 1월26일 일반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은 만 55세가 끝날 때까지임이 경험법칙상 명백하다고 선언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고, 그 이후 만 55세의 법칙은 30년이상 우리나라 법원을 지배해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55세 법칙은 시대에 맞지 않는 고루한 법칙이라는 인식이 팽배하여 이법칙을 깨고 일반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상향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아지게 되었다. 소송을 통한 변호사들의 끈질긴 도전이 판결에서 번번이 패배를 당하기 33년만인 지난해 12월26일 드디어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로서 55세 법칙을 폐기하기에 이르렀다(종전의 대법원판례를 폐기할 때는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하여 판결을 한다). 이 판결은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수명이 대폭 늘어난 점을 지적하면서 (1950년대는 남자 51세, 여자53세, 1989년은 남자 66. 92세, 여자 74.96세), “일반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이 만 55세라는 경험칙에 의한 추정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이 전원합의체 판결은 일반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이 몇살인지에 대하여는 판단을 하지 않고 사실심 법원인 하급법원이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하여 정하도록 일임하였다.

 이러한 획기적인 전원합의체 판결이 선고된 이후로 대법원은 여러번에 걸쳐서 일반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이 55세라는 종전의 경험법칙은 옳지 않다는 것을 판결로 재확인하였는데, 이 글의 첫머리에 인용한 대법원 판결은 똑같은 취지로 내려진 판결들 중에서 다섯번째의 것이 되겠다. 이에 고무된 하급심 판결들도 다투어 일반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55세를 초과하여 잡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 몇살이냐 하는 것은 확립되지 못하여 법관마다 판결내용이 들쑥날쑥한 형편이다. 현재의 경향은 대체로 만60세 정도로 판결을 하고 있는 듯하나 확립된 것은 아니다. 역시 대법원 판례를 통해 새로운 법칙이 탄생해야 할 성싶다. 하급심에 구체적인 경우마다 알아서 판단하라고 일임하는 것은 자칫 공평한 법의 적용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 이왕 상향 조정할 바에야 60세도 넘도록 대폭 상향시키는 것은 어떨까. 일본의 법원이 적용하고 있는 가동연한이 67세라는 것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사람의 가치가 노동에서 나온다고 치면 노동자의 가동연한의 연장은 곧 사람가치의 연장을 뜻하는 것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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