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영병 아들이 토끼처럼 쫓길 때
  • 경남 밀양.허광준 기자 ()
  • 승인 1994.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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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군 46주년을 축하하는 10월1일 국군의 날 새벽, 潢性寬씨(56.경남 밀양군 산내면 송백1리)는 부산에 있는 육군 53사단 헌병대 앞에서 밤을 새웠다. 지난 9월27일 새벽에 장교2명과 탈영했다 검거된 아들 潢正熙 하사(23)를 면회하기 위해서였다. 1일 오전 1시께부터 부대 앞에서 아들은 보게 해 달라고 실랑이를 벌였지만, 조사 받는 중이라 면회가 안된다는 말만 들었다.
 결국 애원도 하고 싸우기도 해서 아침 나절에야 겨우 황하사를 만날 수 있었다. 황씨는 초췌한 아들에게 ‘네가 한 일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야기하고, 죄를 지었으니까 벌을 받아라'고 말했다. 이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황씨는 9월27일 오전에 소작을 부치고 있는 과수원에서 대추를 따고 있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아들이 무장한 채 부대를 이탈했다는 전갈이 동네 지서장을 통해 전달된 것이다. 처음에 황씨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착하고 조용한 정희가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남명리 검문소 인근에 차려진 군경 상황실에서 무장한 군인들이 부산히 오가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아들의 탈영이 사실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황씨는 군인들의 권유로 아들의 설득하기 위해 작전용 군 헬리콥터에 올라탔다. 황씨의 헬리콥터 방송은 27일 오후에 30분 동안, 그 다음날 낮에 두어 시간 계속됐다.

 그는 나중에 “군인들은 설득용 문구 하나 주지 않았다. 오로지 내짬짜미로 말을 지어 하는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헬리콥터 안에서 황씨는 울먹이며 마이크를 잡고 부르짖었다. ??정희야아, 아버지가 왔다아. 소위 두 사람은 이미 자수했다. 니도 얼른 자수해라. 다 무시할끼다. 아무 일 없기로 다 얘기가 됐다. 자수하는 게 살기이다아….??

 헬리콥터에서 내려와 침을 뱉었더니 피가래가 나왔다. 그다음부터 황씨가 한 일은 도랑에서 물을 떠 먹으며 상황실 옆 바위에 앉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아들이 도망한 곳으로 짐작되는 계곡에 올라가 살펴보기도 했다. 혹시 도망가다 자살이라도 하지 않았나 싶어 널찍한 소가 나오면 돌을 던져보기도 했다. 사람이 물에 빠져 죽으면 돌을 던져 시신을 찾는다는 말을 들어서였다.

 군인들은 황씨에 대해 무관심했다. 그들이 급히 찾기에 현장까지 와서 방송했는데, 그들은 황씨가 집으로 돌아갈 방도를 마련해 주지 않았다. 그는 언론사 차를 얻어 타고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무장한 군인들이 온통 아들을 찾으러 다니고, 군견까지 동원된 모습을 보며 황씨는 아들의 무사하기만을 빌었다고 한다. 아들이 사살된다거나 자살하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그럴 바에야 자수하는 것이 아들의 생애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을 황씨는 갖고 있었다. 목숨만 살아 있으면, 아직 젊으니까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무사하기만을 바랐다는 것이다.

 지금 황씨의 바람은, 아들이 왜 탈영이라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게 됐는지 그 이유를 밝히는 것이다. “정희가 왜 그 지경이 됐는지 식구들은 전혀 모른다. 나는 법도 모르고, 평생 흙만 파고 지내왔지만, 한번도 자식(3남2녀)들에게 잘못되라고 가르친 적 없다. 정희가 탈영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중학교 다닐 때 반에서 1,2등을 했으나, 집이 어려워 공업 고등학교에 보내려 했다. 결국 선생님이 권유해 장학금을 받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도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한 학기 만에 자퇴한 정희. 사병으로 입대했다가 하사관 학교를 자원해 분대장 교육을 받고 단기 하사로 군 생활을 하던 정희. 황씨는 무엇이 그 아들을 탈영으로 몰아갔는지 궁금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경남 밀양.許匡畯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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