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한국인, 대륙시장 연다
  • 북경·박승호 통신원 ()
  • 승인 1991.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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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2백여명 적응에 고전… 점원 불친절, 물가 싸지만 집세 엄청나

 상해나 광주처럼 화려한 맛이 없으면서도 은근히 사람을 끄는 힘을 지닌 도시, 북경은 천년 古都의 역사적 중압감을 벗어나려는 듯 최근 들어 부산한 몸짓을 더해가고 있다.

 여기저기에 번듯한 호텔과 고층 아파트가 쉴 새 없이 들어서고 자전거 전용도로를 갖춘 곧게 뻗은 도로는 깨끗하게 정비되고 있으며 늘어나는 자동차 때문에 러시아워가 아닌 때에도 곳곳에 심한 교통정체현상이 생기곤 한다.

 북경에는 대략 1만명 정도의 외국인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이 도시가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발전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외국인들이 생활하는 데 그만큼 편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서울에 둔 채 북경에서 상사 주재원으로 일하고 있는 ㅇ씨는 이곳에 온 지 3년이 다 돼간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가족을 데려올 엄두를 못냈지요. 요즈음은 아이들 학교문제만 해결되면 합칠 궁리를 하고 있어요. 아직도 한국에서 오는 분들 중에는 휴지나 비누 라면 같을 것을 챙겨오는 경우가 있지만 전에는 거의 필수적이었습니다.??

 북경에 한국인들이 가족과 함께 들어와 상주하기 시작한 것은 금년초 무역대표부 상호교환개설을 전후해서부터이다. 이전에는 주로 홍콩상사원들이나 북경아시안게임 관련자들이 드나들거나 몇몇 한국계 미국인들이 업무연락을 위해 주재원으로 채용되어 거주하는 정도였다.

첫번째 문제는 갖가지 소문 정리하는 것
 현재 북경에 상주하는 한국인의 숫자는 동반가족을 포함하여 2백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중국의 각 지방이나 한국에 자주 드나드는 유동인구를 합치면 3백명에 가까울 것으로 이곳 한국무역대표부에서는 보고 있다. 대표부에서는 업무개시 이래 재외국민등록신청을 받고 있는데 보다 정확한 숫자파악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북경 한국인의 직업구성을 보면 외무부를 중심으로 정부 각 부처에서 파견나와 있는 무역대표부를 제외하면 종합상사나 대기업의 지사 그리고 현지 투자법인에서 나온 무역이나 투자를 위한 요원이 대다수이며 각종 기관이나 대학 또는 업체에서 어학연수 연구협력 업무협조 등을 위해 주재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고 사업채비를 위해 거주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까지 중국당국이 인가한 한국상사의 북경지사는 모두 9개, 현지투자법인은 8개, 일본이나 홍콩법인의 자회사형태로 참여한 업체는 5개(그중 4곳은 식당) 등이다.

 중국이 사회주의국가로 변신한 이래 처음으로 북경땅에서 생활하는 이들 한국인은 무한한 시장잠재력이라는 마력에 끌려 찾아오는 수많은 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어느 나라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중국이 지닌 갖가지 특이한 조건과 환경에 적응하느라 고심하고 있다.

 중국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처음 부딪히는 문제는 장님 코끼리 만진 얘기 듣는 식의 갖가지 별난 소문을 정리하는 문제다. 오랫동안 싱가포르에서 상사주재원으로 일해온 ㄱ씨는 북경에 인사명령을 받고 가까운 사람들과 상의한 끝에 사장실에 들어가 취소해주지 않으면 사표를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저는 업무경력은 많은 편이지만 중국은 잘 몰라 그랬습니다. 주변에서 하는 말을 듣고는 지금까지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이럴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화가 났었지요. 실제 북경에 와서 보니 듣던 바와는 많이 다른 게 사실입니다.?? 북경에 온 지 반년이 되어가는 요즈음 그는 거래영역은 넓어지는데 구체적 실적은 아직 적다면서 의욕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인을 포함해서 외국인이 북경생활에서 가장 헷갈리는 문제는 체제상의 특성에 기인하는 가격구조를 이해하고 적응하는 일이다.

 지금 중국정부는 경제개혁의 최대핵심이 가격체제개혁에 있음을 인지하고 이 난제를 풀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지난 88년 여름 북경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발해만의 여름 휴양지 북대하에서 등소평이 참석한 가운데 조자양과 이붕이 가격체제개혁에 관해 격렬한 논쟁을 벌인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가격체제개혁의 방향과 속도는 현대화의 성격이나 사회적 안정과 직결된 문제인 것이다.

 계획가격을 시장메커니즘으로 전환해 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가격을 자유화해나가는 것은 농수산품이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식료품가격이 최근 몇년간 엄청나게 올라 도시노동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지만 일반자유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쌀 고기 생선 야채 등 식료품값은 서울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싸다. 남편과 함께 북경에 온 지 8개월이 넘은 ㅅ부인은 “물건 살 때 점원들의 몸에 밴 불친절 때문에 기분이 상하는 적이 많아요. 그러나 애들 옷값이나 반찬값은 서울보다 훨씬 싸서 생활비가 덜 듭니다??라고 말한다.

 문제는 엄청난 집세. 대부분의 외국인이 거주하는 아파트는 호텔에 부속되어 있는데 50㎡(15평 정도)당 하루 50~90달러 수준이다. 다시 말하면 30평 정도의 아파트 월세가 3천달러에서 5천달러를 넘는다. 이러한 아파트는 내부구조나 시설 관리상태가 그런대로 양호한 편인데 약간 처지는 아파트는 물론 이보다는 값이 싸다.

 북경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우리대표부 직원들이 들어 있는 國貿아파트로 이곳에 한국인 38가구가 입주해 있으며 북한인들도 최근 몇가구가 입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경에는 8천명에 달하는 ‘조선족 동포??들이 살고 있는데, 북경의 한국인들이 구체적인 업무나 생활에서 현지 사정을 익혀 나가는 데 이들 동포들로부터 적지 않은 도움을 받고 있다. 이 점은 대만과 홍콩을 제외한 다른 외국인, 즉 일본인이나 서양인들이 북경에서 맞는 여건에 비해 대단한 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북경의 조선족들은 대개 일제 때 만주로 건너간 조상을 따라 동북지방에서 살다가 학교진학이나 직장분배를 받아 북경에 이주한 경우가 많은데, 최근 한국과 관련한 일거리가 늘어나면서 북경으로 이주하는 조선족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정부기관, 각종 연구원, 각급 학교, 방송국, 공장 등에 근무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한국관광객을 겨냥하여 식당이나 가라오케술집을 경영하는 사람도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이들 조선족 중 일부는 한국인의 중국인 접촉을 돕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 상당한 중국통으로 알려진 인사들 중에 북경의 조선족 몇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중국정부나 업계의 고위층을 접촉하고자 하는 한국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북경의 한국인들은 이들 조선족의 생활수준을 보고 동족으로서 깊은 동정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나 그나마 중국의 수준을 놓고 보면 나은 편에 속하는 것이 위안이 되는 상황이다.

조선족 동포의 도움 적지 않다
 북경시내엔 북한에서 운영하는 식당으로 東大橋 부근의 ‘평양냉명관??과 아시아선수촌 안에 있는 ??류경식당??이 유명하다. 한국인들은 주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서라벌 보배 진로 두산 등을 많이 이용하지만 더러 북한식당 또는 조선족식당에 가기도 하는데, 이런 곳에서 이따금 김일성 배지를 가슴에 단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상사원 ㄱ씨는 북경호텔 뒤편에 있는 조선족식당에 점심식사하러 갔다가 고급양주를 비우며 점심식사를 하는 북한 사람들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북한 형편이 중국보다 어렵다고 하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있는데 간부들은 그렇지도 않더라는 것이다.

 북경은 북한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도시다. 아직 북경에서 남북한 동포들이 서로 격의없이 만나 얘기를 나누는 기회는 거의 없다. 그러나 남북대화가 진척되고 평화통일에 보다 확신을 갖게 되면 북경은 중국의 조선족까지를 포함하여 자연스레 민족화해의 또 다른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전쟁시대를 맞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국교를 수립하는 일은 중국의 특성을 생각할 때 중요한 일이다. 중국을 만만하게 본다면 시대착오라 할 것이다. 중요한 일일수록 보다 신중하게 다원적으로 접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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