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택 대표 달라졌다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91.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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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역 벗으려 독자 행동 “총선 유리?? DJ도 협조

 “야권통합으로 이기택의 정치생명은 이제 끝났다. 김대중씨는 엄청난 흡인력으로 민주계를 공중분해시키고 말 것이다. 두고보라.??

 지난 9월. 야권통합을 자축하는 기자회견장에서, 통합호 승선을 거부한 민주계의 한원외지구당위원장이 내뱉은 말이다. 그러나 통합 두달째를 맞는 이즈음 그 예측과는 정반대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 이기택 대표최고위원의 정치 행보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통합 이후 이대표는 여러 측면에서 달라졌다. 우선 통합 직후 새로 해넣은 어금니 덕분에 하관이 가팔라 보이던 인상이 많이 달라졌다. 10월8일 제 1야당 대표로선 처음 행한 국회 대표연설에서는 국내 유일의 화장학 박사로부터 분장까지 해받는 등 신경을 썼다.

 변한 건 외관만이 아니다. 통합 이후 이대표는 매주 화요일 북아현동 자택에서 출입기자들과 함께 ‘조찬 회동??을 갖고 한 주일의 정치현안과 정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구 민주당 시절에는 없었던 일이다.

비호남권 지지 노린 ‘통일산하회??
 최근 이기택 대표의 움직임 가운데 가장 정치적인 것은 이른바 ‘統一山河會?? 결성이다. 이대표측은 통합 이전 경기도지부를 이미 결성한 바 있다. 통합 이후 강원 대구 경북지부를 연이어 결성했다. 특히 지난달 23일 계룡산에서 있었던 충남지부 결성식은 대전?충남 지역 지구당위원장 등 1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거창하게 치러져 눈길을 끌었다. 워낙 모임 규모가 컸던 만큼 당내 사조직을 꾀하는 게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안팎에 나돌았다. 이대표와 김대표의 갈등을 성급하게 예상하는 시각도 있었다. 이대표가 지난 10월15일 부산 기자회견과 16일 양 대표 공동기자회견에서 ??야권의 대권주자 경선 원칙??을 거듭 밝힌 것과 연계해 이대표의 행보를 파악한 것이다.

 그러나 이대표의 활발한 행보는 이대표 자신의 표현대로 “김대표의 적극적 지지와 동의 아래??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김대표와 이대표는 어렵사리 성사시킨 야당통합이 국민들의 냉소주의를 불식시키고 야당 붐을 조성하지 못했다고 판단한다. 한마디로 ??통합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다는 데 인식의 일치를 보고 있다. 통합효과가 떨어진 원인은 통합 논의가 너무 지루하게 이어지는 바람에 효과를 극대화할 시기를 놓친 것도 문제지만, 야권통합이 ??흡수통합??으로 비쳐진 때문이라는 게 자체 판단이다.

 김대표와 민주당으로서는 총선 전에 비호남권 지역에서 ‘김대중당??이라는 이미지를 가능한 한 탈색시켜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김대표 진영에서는 이대표를 가능한 한 전면에 부각시키고 도와주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신민계의 한 행심당직자는 ??이대표가 김대표와 함께 실질적인 공동대표라는 점을 얼마나 부각시키느냐가 총선의 승리와 직결된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국회 대표연설, 공동기자회견에서의 회견문 발표 등을 연이여 이대표에게 맡긴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김대표가 눈에 띄게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는 ??침묵 행보??를 하는 것도 이대표의 역할을 돋보이게 하려는 배려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통일산하회??의 경우도 마찬가지. 통일산하회는 이기택 총재가 거느리던 ??민주사상연구회??(민사)의 민사산악회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결성됐다. 이대표와 개인적인 연을 가진 세력들이라 할 수 있다. 훗날 이대표의 사조직으로 가동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현단계에서는 민주당의 당세가 취약한 강원 충성 영남 등 비호남권 지역에서 ??통합민주당 바람??을 일으키는 총성전략의 일환이라는 성격만 띠고 있다. 총선 승리로 대권의 디딤돌을 놓아야 하는 김대표로선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전국구로 나갈 공산 크다.
 이렇듯 이대표의 활발한 정치행보에는 민주당의 지역색 벗기와 ‘정치적 공동운명체??가 된 김대표의 전략적 배려가 깔려 있다. 반면 32간의 긴 정치인 생활에서 항상 양김씨 그늘 속에 가려 ??우유부단??하다는 평판을 들어온 이대표의 새로운 도전과 시험이라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이대표는 이번 통합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당사자이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떠밀려가는 ??조역??으로 비쳐진 데 대해 상당한 불만을 토로해 왔다. 노무현 의원은 ??이대표가 민주당의 개혁세력을 함께 끌어안는 수장 역할을 자임한다면 이대표에게나 당에게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야권 지도자로서의 가능성이다.

 그러나 이대표의 정치적 위상은 우선 당면한 총선에서 비호남권의 지지를 얼마만큼 확대시키느냐에 좌우될 것이다. 공동대표로서의 몫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몫을 해내지 못할 때 신민계의 홀대와 민주계의 또 한번의 분열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역할과 관련해 이대표가 지역구(부산 해운대구)를 고수할지 여부는 상당한 고민거리다. 비호남권 지지 확대를 위해서는 이대표가 김대표와 전국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이대표가 “부산 지역에서의 선전을 통해 영남지역 위원장들을 독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이대표의 지역구 사정으로는 지역구에만 매달려도 수월한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다는 게 정가의 관측이다. 정가에서는 지역의 정황과 야권의 논리로 볼 때 결국 이대표가 전국구로 선회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전국구로 선회할 경우 “밀실담합, 전국구 보장설??을  주장하며 민주당 합류를 거부했던 일부 구민주당 세력들로부터 ??야반도주?? ??패주??로 공격당할 가능성도 높다. 이기택 대표로서는 새로운 가능성과 도전에 직면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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