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동생을 죽이지 않았어요"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1.12.1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포 국교생 살해방화 범인 ‘오빠냐 아니냐'는 논란 가족.변협 '증거는 허위자백뿐'… 경찰 '틀림없다'

 서울 마포구 대흥동 국교생 권미경양(9) 살해 방화사건의 진범을 둘러싼 수사당국과 피해자 가족 및 변호인간의 공방이 법정으로까지 비화될 것 같다.

 피해자 가족으로부터 사건을 의뢰받은 신기남 변호사는 “그동안 권양을 살해한 범인이 권양의 오빠인 경하군(10?가명)이라는 경찰과 검찰의 수사발표에 대해 언론과 대한 변호사협회가 숱한 의문을 제기하며 재수사를 촉구했으나 마포경찰서나 서울지검 서부지청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이제는 법정에서 시비를 가릴 수밖에 없게 됐다. 수사책임자를 피의사실 공표죄로 고발하는 한편 권군의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낼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소송에 들어가게 되면 권군의 진범 여부와 그동안 위법성 여부를 놓고 법조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어온 수사당국의 피의사실 공표 및 자백을 위주로 한 수사관행도 함께 법의 심판대에 오를 것으로 보여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수사당국에서 ‘마포 국교생 살인사건'이라고 부르는 이번 사건은 지난 9월30일 발생했다. 부모가 모두 일하러 나간 새에 집을 보고 있던 남매 중 오빠는 가느다란 줄로 몰이 졸린 상처와 화상을 입고 불난 집에서 빠져나오고 동생은 목에 전기줄이 감긴 상태로 불에 타 숨진 채 발견된 끔찍한 사건이었다.

 경찰은 처음에는 경하군의 진술대로 외부인이 침입해 저지른 소행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으나 곧이어 수사방향을 급선회해 사건 발생 5일만에 경하군으로부터 “동생과 다투다 화가 나서 칼로 복부를 찔러 죽였다??는 자백을 받고 사건을 종결지었다.

 하지만 권군이 부모에게 “경찰관 아저씨들이 강요해 할 수 없이 있지도 않은 얘기를 꾸며댔다??고 밝히며 자백사실을 번복하고 이를 <중앙일보>와 MBC가 보도함으로써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이어 대한변협 인권위가 진상조사에 들어가 지난 18일 “경찰의 판단이 너무 성급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검찰에 재수사를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경찰은 이에 맞서 변협 보고서가 발표되기 하루 전인 지난달 17일 사건 발생 직전까지 권군과 함께 있었던 노모군으로부터 “사건 당일 권군 남매가 싸우는 소리를 듣고 집안으로 들어가 보니 미경양이 코피를 흘리며 방바닥에 엎드려 있고 권군이 화가 난 얼굴로 무엇인가 마구 집어던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는 새로운 진술을 받아내 당초의 수사결과에 의문이 있을 수 없다고 반격하고 나섰다.

 현재 가족 및 변호인들과 수사당국은 서로의 견해를 굽히지 않고 팽팽히 맞서고 있는데 양측 주장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대한변협 인권위 : “경찰 수사과정에서 회유 협박이 있었다??
 경찰은 10월4일에는 13시간 동안, 5일에는 8시간 동안 밀실과 다름없는 방에서 권군을 심문하면서 지능적인 성인범에게나 사용해온 온갖 회유와 협박을 자행했다. 동생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던 권군에게 “미경이가 경찰서에도 왔다 갔다. 그러니 바른대로 말해라??라고 위협하는가 하면 ??13세 미만은 처벌받지 않는다. 빨리 범인이라고 대답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회유하기도 했다. 경찰은 권군이 시달리다 못해 ??주문??대로 자백하자 이번에는 ??검찰에서 조사받은 대로 얘기하지 않으면 다시 경찰서로 데리고 가겠다. 그때는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 패면서 조사할 것이다??라고 윽박질렀다.

 경찰은 우선 사망원인부터 잘못 짚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서에 따르면 권양의 사인이 ‘질식사??로 나와 있는데, 경찰은 처음에는 ??권군이 부엌칼을 들고 나와 미경양의 복부를 찔러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더구나 부검결과 장기손상이 미경양이 칼에 찔렸다고도 볼 수 없으므로 경찰은 명백한 오류를 범한 것이다.

 미경양이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경찰의 주당도 의심스럽다. 옷을 입고 있었다면 타지 않은 등 부위에서 옷 부스러기라도 눈에 띄었어야 했을텐데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방에 들어가니 미경이가 발가벗겨진 채 입과 고추 부위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는 권군의 진술이 오히려 객관적인 사실과 부합되는 것이다.

 경찰은 권군으로부터 자백받은 다음날 바로 수사본부를 해체했는데 당시 부검 결과도 나오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서 이는 수사 미진이 아니라 수사의 포기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권군 부모의 주장 : “경찰이 빨리 화장하라고 강요했다??
 경찰 관계자들은 미경이의 부검이 끝난 뒤 “자식 묘를 보면서 평생을 가슴 아프게 살거냐??면서 자꾸만 화장을 하라고 종용했다. 이미 매장 허가서를 받아왔다고 하니까 일부러 동사무소에 가서 화장 허가서로 바꿔주기까지 했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 그 이유를 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경찰은 엉터리 수사를 하고 그 증거를 재빨리 없애려고 한 것이다.

 언론에 문제제기를 하고 관계요로에 진정서를 낸 다음에는 경찰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다. “관내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가라?? ??정 그러면 가정문제와 사업관계 일까지 파헤치겠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경찰들이 거래처에 자꾸 드나드는 바람이 고객중에 거래를 끊자는 사람도 많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분한 것은 경찰발표에 의해 우리가 무책임한 부모로 매도된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두부를 만들고 콩나물을 길러 파는 일을 하는 우리 부부는 여느 샐러리맨 부부보다도 훨씬 아이들과 하루에 두 번 이상은 전화통화를 했다.

 우리는 우리 아이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납득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경하가 미경이를 죽였다는 증거는 자백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 아이는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우리 아이를 일을 저지르고 은폐하기 위해 자해를 한 다음 불까지 지른 완전범죄자로 몰로 있으나, 누구라도 우리 경하와 10분간만 얘기해보면 도저히 그같은 끔찍한 일을 저질렀으리라고는 믿지 못할 것이다.

 우리 경하의 목에 난 상처만 보아도 안다. 어찌나 세게 목이 졸렸던지 나중에 멍이 시퍼렇게 들었다. 경찰에서는 미경이가 무슨 가느다란 실 같은 것으로 졸랐기 때문에 생긴 색흔이라고 발표했는데 이는 누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상식적으로 세상에 어느 남매가 그런 식으로 싸울 것이며, 힘없는 미경이가 어떻게 오빠의 목을 그렇기 무지막지하게 조를 수가 있었겠는가.

 그동안의 수사장면을 비디오로 꼬박 촬영했으면서 왜 유독 자백장면만은 촬영을 안했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경찰은 변협의 보고서가 나오기 직전 허겁지겁 경하의 친구를 데려다가 경하와 동생이 싸우는 장면을 봤다고 진술하게 하고는 그 장면도 비디오로 촬영해 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 경찰이 우리 아이에게 했던 행동으로 봐서는 경하 친구 얘기도 조작됐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마포경찰서측의 항변 : “권군의 진술에는 허점이 너무나 많았다??
 우리가 권군쪽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은 권군의 진술에 너무나 허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권군은 여러 차례 자신의 진술을 번복했다. 그래서 권군을 추궁하다보니 자백을 받게 된 것이다.

 우리가 사인도 모르면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는 이미 부검 직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부터 결과를 구두로 통보 받았다. 언론이 사건 초기에 마음대로 취재해서 쓴 것이 마치 경찰의 공식발표처럼 오해되고 있는데 경찰의 수사기록에는 사인이 분명하게 질식사로 되어 있다.

 사인이 질식사이기 때문에 외부인의 소행으로 봐야 마땅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칼에 찔렸어도 얼마든지 사인은 질식사로 판명날 수 있다.

 권군의 목이 졸린 상처에 대해서도 말이 많지만 마포경찰서 공의인 대흥의원 원장 신현수 박사는 권군의 목에 난 색흔이 치명적이거나 실신할 정도가 아닌 가벼운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외부인에 의해 목이 졸려 실신했었다는 권군의 주장은 믿기 어렵다. 성폭행 가능성도 얘기하지만 정액반응 검사 결과 음성 반응이 나왔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곳은 검찰이다. 검찰은 그동안 몇차례 언론에서 재수사에 들어갈 것이라고 보도한 데 대해 그저 부인만 하고 있다. 어느 변호사의 표현대로 “그저 잠잠해지기만 기다리고??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냥 조용하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변협 진상조사단에 참여했던 한 변호사는 “우리가 이 사건을 문제삼은 것은 진범을 가려내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자신들의 공적을 내세우기 위해 것만은 아니다. 자신들의 공적을 내세우기 위해 피의자의 인권을 짓밟는 수사관행에 일대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다. 이번 기회에 사문화되다시피한 피의자 혐의사실 공표 금지 조항 등에 대해 공개적인 논의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