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정상회담인가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1.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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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한관계의 전기가 될 합의서 채택을 두고 사회 일각에선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의 실현을 앞당기기 위한 하나의 수순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金日成ㆍ金正日 후계체제에 대한 지지의 대가로 우리측이 북측에게서 향후 정상회담에 관한 모종의 언질을 받은 게 아니냐는 추측도 일고 있다. 그러나 李秀正 청와대 대변인은 북한의 延享? 정무원 총리가 13일 盧泰愚 대통령과의 면담시 “정상회담에 대해 일절 언급치 않았다”며 정상회담건을 공식 부인했다. 노대통령은 지난 88년 8ㆍ15 경축사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공식 제의한 후 그해 10월4일 국정연설과 10월18일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이를 거듭 촉구한 바 있다. 과연 현시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은 시기적으로 성숙하고 또 필요한지 외무부 정책자문위원장인 李相禹 교수(서강대ㆍ정치학)로부터 듣는다.

우리측이 정상회담을 염두에 둔 나머지 합의서 채택을 너무 서둘렀다는 비판이 있는데…
사실 이번 합의서를 보면 우리측이 북한이 요구한 것을 전부 들어준 느낌이다. 무엇 때문에 이처럼 양보했는지 아직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으나 아마도 정상회담건이 개입되지 않았나 한다. 5공의 전두환대통령은 역사상 ‘민족중흥의 기수ㆍ통일의 기수’라고 기록되고 싶은 과대망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즉 최초로 통일을 위해 길을 열었고 金日成을 최초로 만난 지도자로 기록되길 원했다. 그는 실무자들에게 “정상회담만 성사된다면 모든 것을 양보해도 좋다”는 식의 지시를 내리곤 했다. 이 때문에 실무자들은 북한과 청와대 사이에서 꽤나 애를 먹었다. 6공 정권도 초기에는 이를테면 7ㆍ7선언이나 한민족공동체 통일안에서 보듯 평화구축에 더 큰 관심을 보였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정권 말기, 특히 3차회담이 끝난 지난 여름 이후부터 정상회담을 거론하고 있다.

현 단계에서 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남북 양측이 정상회담을 개최할 준비가 돼 있지도 않고 꼭 만나야 할 필요성도 없다고 본다. 정상회담이란 실무선에서 모든 게 다 끝난 뒤 열리는 하나의 의식이다.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것은 회담자체의 진전에 도움이 안될 뿐더러 오히려 혼선만 가져다줄 위험이 있다.

남북관계가 어느 정도 진전돼야 정상회담이 거론될 수 있다고 보는가?
현재는 정상회담이라는 의식을 치를 만큼 남북간에 진전된 게 없다. 이를테면 3통협정의 실현과 같은 구체적인 조치들이 실천단계에 있다거나 하는 구체적인 교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북정상회담의 시기는 언제가 적당한가?
남북한 정상이 언젠가 만나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공감하나 그 시기는 김일성 체제 이후라야 한다. 김일성은 한국전쟁을 비롯해 민족에게 숱한 죄를 지은 장본인이다. 정상회담은 그의 죄를 면죄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정상회담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지금 분위기대로 간다면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해방 후 김구 선생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평양에 가도 김일성은 악수만 해주면 될 것이고 그것으로 민족에 대한 죄과를 면죄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일성도 김정일 후계체제의 정당화를 위해 남북정상회담의 유혹을 느끼지 않겠나?
그런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설령 그같은 경우에도 정상회담을 남한측에서 구걸하러 왔다는 식으로 선전할 것이다.

현 정권이 정상회담에 집착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아다시피 내년엔 대통령선거를 포함한 4대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현 정권이 내세울 치적이라면 북방외교와 남북관계 개선이 고작일 텐데 이 경우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이를 내치용으로 삼지 않겠는가. 아마도 이같은 목적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이번 남북 합의서에 대해 평가한다면?
한 마디로 북한은 이번에 는 실효취할 것 다 취했다. 우리가 북한이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줌으로써 북한은 일본과 미국에 대해 관계개선의 명분으로 삼을 수 있는 실효를 얻어냈다. 향후 북한이 불가침 조항을 근거로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할 수도 있으며 내년 초 일본과 수교협상이 진전되면 언제든 이번 합의서를 무효화할 가능성도 있다.

현정권의 통일정책 입안자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통일정책은 어느 정권이나 개인의 이익이 개입돼서는 안될 초당적인 사안이다. 정상회담건도 마찬가지다. 통일정책의 궁극 목표는 결국은 북한의 2천만 동포를 염두해두고 입안돼야 한다. 어떤 합의건 행동이건간에 이것이 2천만 동포에 도움이 되느냐 여부를 기준으로 삼아야한다. 그런 원칙에 위배되는 것은 민족에게 죄 짓는 행위다. 통일에 대한 大綱을 정하고 이를 국회에서 결의해 어느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그 대강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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