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총리회담 대표단 서울 오다
  • 표완수 국제부장 ()
  • 승인 1990.09.1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분단 이후 고위급 첫 공식회동

우리측은 교류·협력증진, 북한측은 군축협상에 역점

 남북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延亨? 북한 정무원 총리를 수석대표로 하는 북한대표단 7명의 서울방문(9월4~7일)이 이루어지고 그와 姜英勳 국무총리 사이에 역사적인 남북총리회담이 열림으로써 ‘흐림’과 ‘맑음’사이를 오르내리며 민족에게 기대와 실망을 심하게 교차시키던 남북관계는 일단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남북 양측의 합의에 의하면 한달 보름 후인 10월16일에는 강총리가 같은 수의 남한측 대표단 등 일행을 이끌고 평양에 가서 3박4일간 남북고위급회담 제2차회의를 갖게 된다.

 남북총리회담은 작년 2월 첫 예비회담을 시작한 이래 1년7개월만에 결실을 본 것으로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고위 당국자간의 공개적인 공식회동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연총리는 북한의 권력서열상 제6위이기는 하나 행정부의 최고 실무책임자라는 점에서 이 회담은 남북한 제2인자 사이의 공식회동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정상회담 이전 단계로는 최고위 당국자 회담이 되는 셈이다.

 이전의 남북 고위급 교차방문 회동의 예는 지난 72년 7·4남북공동성명 발표 직전 李厚洛 중앙정보부장의 평양방문(5월2일)과 朴成哲 북한제2부총리의 서울방문(5월29일)이 있으나 그것은 비밀리에 이루어진 회동으로 성격과 내용이 이번 회담과는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이번 회담에서는 공식의제(남북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다각적인 교류·협력 실현문제)가 말해주듯이 정치·군사문제와 교류·협력문제가 주의제. 정치·군사문제는 북측에서 우선협상 대상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고 교류·협력문제는 남한측의 강조사항이다.

 북한측이 주장하는 정치·군사문제의 핵심은 군축문제로 집약되는데 북측은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인 지난 5월31일 자신들이 수정제안했던 ‘평화통일을 위한 군축안’을 내놓고 있다. 남북한 병력을 3년내에 10만으로 감축하고 이와 함께 주한 미군 철수,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실현하자는 게 주요 내용이다. 이에 대해서 우리측은 남북간에 군사적 신뢰구축이 선행돼야 현실적으로 군축이 가능하기 때문에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남북간의 교류·협력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군축을 우선 협상 대상으로 밀고 있는 배경에는 주한미군 철수와 미군의 핵무기 철거를 겨냥하고 있는 것 외에도 세계적인 군축추세 속에 최근 군비부담이 북한의 경제에 미치는 압박이 부쩍 가중되고 있는 현실적 이유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편 우리측은 교류·협력이 중·장기적으로 북한의 개방에 기여하고 남북관계를 안정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이 문제 추진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에따라 통행·통신·통상 등 3통협정, 60세 이상의 이산가족 자유왕래, 민족대교류 실현, 금강산 공동개발 등을 적극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양측의 입장 차이는 대표단 구성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북측 대표단이 경제통으로 알려진 연총리와 金正宇 대외경제사업부 副부장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軍(金光鎭 인민무력부 부부장·金英哲 소장) 및 대남협상 담당자들(白南俊 정무원 참사실장·崔宇鎭 외교부 순회대사겸 군축평화연구소 부소장·安炳洙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로 구성돼 있는 데 비해 남측 대표단은 강총리, 홍 통일원장관, 鄭鎬根 합참의장, 金宗輝 청와대외교안보보좌관, 林東源 외교안보연구원장, 李鎭卨 경제기획원차관, 李秉龍 총리특별보좌관 등 비교적 다양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우리측은 이번 고위급회담 실현이 남북관계에서 하나의 획기적인 성과라고 평가, 이를 정례적인 기구로 상설화하는 한편 우리측이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는 남북정상회담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원칙 아래 이번 회의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성급하게 기대하기보다는 회담을 지속시키는 방향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이에따라 공개회의 외에 비공개회의도 함께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 중에는 우리측의 이같은 신중한 접근에도 불구하고 총리회담의 결과에 대해 비관적 견해를 밝히는 이들도 있다. 남한의 對북한 접근이 아무리 조심스러운 것이라고 하더라도 북한이 종래의 폐쇄노선을 수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金日成주석의 존재 자체가 북한의 대남관계에서 개방과 변화를 억지하고 있다는 견해다.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남쪽의 노력보다도 오히려 미국과 일본의 대북한 접촉 확대가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같은 견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를 둘러싼 최근의 일련의 사태발전은 남북관계의 앞날에 긍정적 시각을 갖게 하는 면도 있다.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8월31일 중국·북한·일본 3개국 순방길에 오르면서 자신의 평양방문과 관련, “한반도와 아·태지역 전반에서의 군사적 대치를 완화하는 방안에 대해 심도있고 구체적인 모색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 소련이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해 모종의 역할을 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그 이틀 전에는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회견에서 “한반도의 군사적 대립 극복을 촉진시키기 위한 조건이 성숙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평양방문직전 錢其琛 중국외교부장과도 회담했다. 셰바르드나제 장관을 수행한 이고르 로가초프 소련 외무차관도 소련 〈노보스티〉통신과의 회견에서 “소련은 남북고위급회담에서 가시적인 결과가 도출되기를 희망한다”고 관심을 보였다. 이에 앞서 秦基偉 중국 국방부장을 단장으로 한 중국 군사사절단은 8월23일부터 30일까지 평양을 방문, 북한측과 상호 공동관심사를 논의하는 한편 판문점 일대를 시찰하기도 했다. 한편 金永南 북한 외교부장은 8월30일 소련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와의 회견에서 소련의 아시아외교정책이 ‘평화적’이라고 말하고 미국에 대해 “대화의 시기가 오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미국과 일본 역시 최근 對북한 대화 가능성을 수차례 시사한 바 있다.

 현재 서울에서 진행중인 남북총리회담이 당장 구체적인 결실을 내놓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한반도 주변국들의 對한반도 시각변화 움직임과 맞물려 돌아갈 때 남북관계는 기대 이상의 진전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