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무부 ‘북방무대’에 지각데뷔
  • 김승웅 편집국장대리 ()
  • 승인 1990.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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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가있던 ‘제 역할’ 韓· 蘇외상회담으로 찾아와… 경협 구체안 전달할 듯

한· 소외상회담이 열린다. 회담시기는 이달 27일 전후, 장소는 유엔본부 건물 안팎, 회동시간은 1시간 남짓-회담에 관해 알려진 것은 이상이 전부다.

관심이 쏠리고 있는 외상회담의 의제나 회담 이후의 결과, 예컨대 양측이 회동 후 공동 코뮈니케를 발표할지 그리고 이 코뮈니케 속에 한· 소수교의 정확한 일정이나 제2차 盧· 고르비회담의 성사 여부 등이 담겨질지에 대해서는 일체 알려진 바가 없다.

그리고 셰바르드나제 소련외상이 “崔浩中 외무장관과 오는 9월말 유엔에서 만나자. 최외무에게 안부 전해달라!”고 지난 2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언한 것을 우리측이 너무 확대해석, 이번 회담을 한· 소 두나라만의 단독회담으로 증폭시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냐하고 경계하는 사람도 있다. 유엔총회를 전후해서 각국 외상들이 유엔본부에서 회동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따라서 ‘그때 보자’정도의 소련외상 발언을 놓고 우리측이 괜히 ‘김칫국부터 마시는’ 부산을 떨지 않느냐 하는 신중론이 나오는 것이다.

한갓 기우에 그치기를 바라는 바이지만, 지난 6월초 샌프란시스코의 한· 소정상회담 당시 회담장소와 儀典절차를 놓고 우리측이 소련으로부터 감수해야 했던 몇가지 ‘서운한’ 사례를 기억한다면 이런 경계심은 일응 당연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최외무장관은 오는 23일 일찌감치 訪美길에 오른다. 그의 방미에는 羅元燦 외무부구주국장과 文東錫 국제기구조약국장, 鄭義溶 외무부대변인 등이 동행한다.

우려되는 예의 경계심이나 불미스런 사례에 대해 당사자인 최외무는 “아무려면, 그럴리가 있겠느냐”며 한· 소외상회담의 의제나 시기· 장소에 관해서는 孔魯明 주소영사처장이 소련외무성을 상대로 교섭중이며, 공처장의 보고에 따라 구체적인 회담일정과 대응전략이 곧 수립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이번 한· 소외상회담은 두가지 특성을 지닌다. 대한민국 외무부의 ‘제자리 찾기’ 역할이 그 첫번째 특성으로 지적되고 있다.

북방외교하면 으레 청와대가 주역이고 외무부는 한갓 보조기능 또는 들러리 역할만으로 자족하는 ‘외교 面사무소’ 정도로 취급돼 온 것이 사실이다. 북방외교가 시작된 시점은 6공정부의 출범과 때를 같이 한다. 출범 후 2년7개월의 기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외무부 안에는 북방외교를 전담하는 局이나 課가 존재하지 않고 있다. 북방외교의 모든 기능이나 역할은 일단은 청와대 소관이고, 구체적으로는 金宗輝 청와대안보보좌관을 정점으로 하는 4~5명의 정치학자 또는 비외교관 출신관료들의 전횡업무가 돼왔다.

 

지금까지 북방외교는 ‘청와대 차지’

여기에 이따금 朴哲彦의원과 金泳三 민자당대표가 가세하여 심심찮은 화제를 뿌렸고, 한· 소정상회담의 개최를 전후해서 盧在鳳 청와대비서실장과 金鍾仁 경제수석, 李秀正 청와대대변인 등이 합세했다.

북방외교에 관여하고 있는 외무부 출신의 관료로는 孔영사처장 閔丙錫 鄭泰翼 金在燮 청와대비서관 등 일선 실무진이 고작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외무부 정통관료의 참여가 철저하게 봉쇄돼온 점을 지적하고 자성을 촉구하는 여론에 대해 정작 외무부의 고위당국자는 물론 중견급 외교관들조차 관료 특유의 무관심을 보여왔다는 점이다. 마지못해 대응하는 변명은 “외교총수는 대통령” 또는 “외교란 편의에 따라 비밀외교가 정석이 될 수도 있다”는 고식적인 책임전가가 고작이었다. 노대통령 스스로가 외무부가 외교의 주역임을 역설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통정리는 아직껏 자리가 잡혀 있지 않은 상태였다.

회담 그 자체의 열기나 중요성에 비추어 이번 외상회담은 지난 6월의 노· 고르비회담을 훨씬 밑돈다. 또 오는 10월 마슐르코프 소련 부총리의 방한과 때를 맞춰 예정된 양국 경제회담에 견주어 그 무게가 크게 떨어지는 회담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이번 회담이 비중을 지니는 이유는 이를 통해 한국 외무부의 ‘제자리 찾기’, 다시 말해 한국 외무장관의 북방외교 데뷔가 실현된다는 점 때문이다.

이번 회담이 지니는 두번째 비중은 한· 소 경협의 규모나 방식에 관해 한국측의 구체안이 소련측에 전달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있다. 한· 소수교란 바로 한· 소경협 그 자체로 인정돼올 만큼 소련의 對韓경제협력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던 것만은 사실이다. 구체적으로는 우리가 소련한테 건네줄 달러가 어느 수준이 되느냐인데, 이 액수에 관한 한 정부내 관련부처간의 액수와 산정방식이 제가끔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누구도 이 액수를 자신있게 밝히지는 못하고 있다. 대충 30억달러에서 70억달러 사이의 수준으로 압축되고 있는데, 이 액수산정을 놓고 “소련한테 과연 얼마를 쥐어줘야 그들이 만족할 것인가를 아직 판단할 수 없다”고 북방외교에 관여하고 있는 한 실무자는 토로하고 있다.

액수 못지 않게 관심을 끄는 대목이 그 지불방식이다. 흔히 타이트 론으로 알려진 지불방식, 즉 일정액의 경협자금을 소련측에 지급하되, 그 돈으로 한국산 제품을 우선적으로 구입시키는 의무를 부과하는 일종의 조건부 지불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최외무장관은 그 액수나 구체적 지불방식에 관한 답변을 외교적으로 피하고 있다. 한· 소외상회담 이후로 예정된 10월의 양국경제회담에서 다루어질 소재일 뿐, 목전에 놓인 외상회담의 당면안건이 되지는 않는다고 강변하고 있다. 과연 그러할까. 그 답을 이번 뉴욕회담에서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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