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세지감’ 실감나는 베이징의 남과 북
  • 안병찬 편집국장 ()
  • 승인 1990.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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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엔 홍콩서 교포가 북한팀 응원했다. ‘치도곤’

운동장 훈풍이 민족화해로 ‘현실화’될지는 미지수

 북경 ‘工人體育場’응원석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보자 우리 두사람은 똑같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잠시지만 아시아경기대회가 따뜻한 봄바람을 일으켜 남쪽과 북쪽 사람들이 아직 마음속에 걸치고 있는 무거운 겨울외투를 벗어버리게 만들었던가.

 금년에 예순세살이 되었을 申景相이라는 주인공이 저절로 생각나서 홍콩과 서울의 연고선에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하룻만에 서울 한강로3가에 있는 자택에 전화가 닿아 신경상씨의 이북 사투리와 접하게 되었다.

 그도 역시 홍콩의 九龍지역에 있는 ‘伊麗莎白’(엘리저베드 2세) 실내경기장의 그 사건을 되씹으면서 얘기를 나누고 싶던 참이라고 하였다. 76년 11월25일 밤 그곳에서는 월드컵배구대회 아시아지역예선 결승전이 열렸다. 그때 홍콩의 중국관중은 ‘북괴팀’과 중‘중공팀’이 밎붙어 ‘북괴팀’이 2대0으로 이기다가 3대2로 역전패하는 아슬아슬한 경기를 지켜보면서 천장이 떠나가게 ‘중공팀’만을 응원했다.

 그렇지만 수십명의 한국교민은‘북괴팀’경기를 보러갔으면서도 응원을 하지못하고 속들만 태우고 있었다. 유독 한사람이 큰소리로 ‘북괴팀’을 응원했다.

 “이겨라!” “파이팅!” “잘해라!”

 고군분투하는 ‘북괴팀’을 향한 그의 외침은 얼어붙은 정적을 깼다. 맞은 편 스탠드에 앉아 있던 필자는 그의 목소리가 참으로 커서 ‘절규’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가 당국에서 호되게 경을 친 것은 물론이요, 경기를 참관한 다른 교민(필자를 포함하여)도 총영사관 관계자에게 환문당했다.

 <경향신문> 홍콩지국장인 신경상씨는 그날 부인과 함께 경기를 구경하러 나갔다가 마음을 억제하지 못해 손뼉을 치며 응원하게 된것이었다. ‘북괴’선수들이 역전패 한 후 분한 눈믈을 흘릴 때는 부인의 손을 이끌고 코트로 내려가 “나는 한국교민 인데 손아프게 응원했지만 졌으니 나도 억울하오”하고 위로를 했다.

 다음날 “조사좀 하자”고 신경상씨를 호출한 총영사관은 호통을 쳤다. “야, 왜 손뼉쳐. 국가보안법에 얻어맞아 보겠냐.” 조사의 초점은 “왜 손뼉을 쳤느냐”에 있었다. 두 번에 걸쳐 조사를 받은 신경상씨가 총영사의 이름으로 ‘경고처분’을 받고 신문지국을 다른 교민에게 넘긴 후 귀국길에 오른 것은 연말께였다. 신경상씨는 “억울해 죽겠어서 술을 먹고 울기도 많이 울면서 잠시 망명할 생각까지 품었지만”그래도 잘못이 없으므로 돌아왔다.

 귀국한 후 검은 지프를 타고 남산 지하실에 가서 또한번 ‘왜 손뼉쳤나’에 대해 조사를 받았으며 그 후 몇년 동안 ‘출국정지처분자’명단에 올랐다.

 홍콩 ‘伊麗莎白’경기장에서 일어난 이 과거의 사건은 내용으로 보아 낡은 냄새가 나기론 비길데가 없다. 그때는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남모르게 화제거리가 된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 사건이 우리 머리에 새롭게 떠오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선명한 대조감 때문이다. 과거의 피해자인 신경상씨는 오늘 “사상을 떠나 동족으로 응원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 새삼스럽게 확인하고 있다. 북경 豊台體育場 관람석에서 한때지만 남과 북이 ‘융합의 응원’을 하는 장면을 보았을 때 우리는 과거에 상실했던 것을 오늘 되찾을 수 있고, 오늘 부족한 것은 내일 보충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어느정도’희망을 품을 수 있다.

 그점에 관해서 황해도사람 신경상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사건과 요새일이 참 대조적이다. 웃기는 세월이지. 10몇년 사이에 그렇게 달라졌어.”

 그때와 지금은 얼마나 격세지감이 드는가.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도 이념이라든가 체제라든가 정치권력이라든가 하는 구체적인 부분에서는 ‘공동응원’에서와 같이 딴 세대가 된 것처럼 달라진 느낌을 받지 못한다. 그런 문제들이 ‘기득권’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들려오기로는 서울 남북고위회담에서 한국은 북한을 흡수통일할 의사가 없으며, 김정일의 권력승계문제에 관여할 의사도 없다고 언질을 주었다고 한다. 혹시 그런 탄력성 때문에 훈풍이 불어오지 않았나 꽤 낙관적으로 관측하려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기득권’을 생각할 때 가장 궁금한 것은 역시 김일성 주석이 존재하지 않는 김일성체제가 어떻게 움직일가 하는 데 있다. 최근 평양을 다녀온 일본의 우파평론가 한사람은 김정일 부자권력 계승의 특이성을 깨닫고 ‘북한의 루마니아화’를 피하기 위해 탄력있는 정책을 펴나갈 수도 있다고 가정했다. 장개석의 독재체제에서 아들 장경국의 권위주의체제로 이행했다가 이등휘의 민주체제로 이행한 ‘臺?방식’ 같은 것이 적용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북경 운동장의 일시적 융합 열기가 얼마나 ‘현실’로 나타날지 여전히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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