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서울연극제, 해를 거듭할수록 뒷걸음
  • 한상철 (연극평론가·한림대교수) ()
  • 승인 1990.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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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을 만한 수작 거의 없어…연극제 기간 줄이고 작품수 대폭 늘려야

 사람이건 세상사건 해를 거듭할수록 개선되고 발전해나갈 때는 우선 그 자체가 기쁘고 미래에 희망을 걸게 된다. 그러나 그와 반대일 경우에는 당장 기분이 상하고 그 사람, 그 세상일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품게 된다. 올해로 14회째를 맞는 서울연극제(8.24~10.4)에 대한 필자의 평가는 솔직히 말해 후자쪽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비단 연극제 자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연극 전반에 걸쳐 적용할 수 있는 평가이기도 하다.

 80년대 후반부터 서울연극제는 일종의 타성과 무기력으로 침몰하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연극제는 재미없는 연극제’라는 세평이 나돌고 차츰 관객의 호응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몇차례 제도와 운영방법을 바꾸어 회생을 기도해보았으며, 금년에는 어느해보다도 과감하고 다양한 개선책을 가지고 연극제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오히려 더욱 큰 걱정과 불안감만 남겼을 뿐이다.

 

욕설과 퇴폐 언사는 관객에 대한 모독

 연극제를 연극제다운 축제분위기와 열기로 이끌고, 참가 극단은 오직 작품제작에만 열중하도록 하려고 홍보와 매표 관리를 한 민간대행사에 위임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이 대행사는 ‘후원자’ 확보에 실패하여 중도에 포기함으로써 연극제를 출발부터 난관에 부딪히게 했고, 초반에 공연한 극단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쉽게 후원자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오판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차선책을 마련하지 않았던 대행사측의 과실을 먼저 문책해야겠지만 대행사에 대한 감독을 철저히 하지 못하고 연극제의 성공적 운영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은 운영위원회와 연극협회도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40일의 연극제 기간이 너무 긴 데 비해 10개의 공연작품 수는 너무 적어 열띤 분위기를 조성하기 어렵다는 것은 처음부터 문제점으로 제기된 바 있다. 연극제 자체가 시민의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지지부진했던 것을 고려한다면, 기간을 반으로 단축하고 공연수를 배가하여 연극제에 힘을 갖게 하는 일이 절실하다. 이번 기회에 서울 연극제 본래의 취지인 창작극의 진흥에 관한 문제와 서울연극제의 본질적 성격에 대한 문제를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창작극의 진흥이라는 목적에 비해 기대에 비치지 못하는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연극제가 이처럼 저조했던 첫째 이유는 좋은 희곡이 없었기 때문이다. 80년대 이후 한국희곡은 정치현실과 사회문제의 중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재와 주제가 모두 여기에 한정되었다. 금년에도 마찬가지였다. 관객은 이같은 편향된 의식에 식상해 있으며 연극제에서 좀더 다양한 세계를 체험하고 싶은 갈망에 차 있는 것이다. 종교의 세계를 다룬 이만희의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에서조차 부녀자 겁탈 사건을 소재로 도입하고 있다. 극작가는 사건을 추적하는 신문기자와는 다르므로 사건이나 문제를 좀더 심층적으로 투시하고 그속에 감추어져 있는 보편적인 진실을 찾아내어 이를 개성적인 형식과 문체에 담아내야 한다. 그러나 이같은 작가, 작품은 없었다.

 윤조병의 <아버지의 침묵>은 주제가 뚜렷하지 못하고 노경식의 <한가위 맑은 달아>는 구성이 너무 방만하였으며 박구홍의 <시민 조갑출>은 사건 자체의 개연성과 필연성이 부족했다. 감상렬의 <우린 나발을 불었다>는 그점이 더욱 심했다. 배봉기의 <불임의 계절>은 무력하거나 그릇된 의식에 차 있는 교사를 바라보는 눈이 너무 한쪽으로만 기울어져 있었다. 최인석의 <언제나 어디서나>는 사건과 인물의 구체성을 지나친 관념과 추상화로 증발시켜버렸다. 기국서의 <햄릿 5>는 희곡이 아닌 연출 작품이었으며 그 연출은 절제와 통일과 주제부각의 3대 요소를 모두 부인했다.

희곡은 기억에 남을 만한 인물을 창조하고 의미가 겹겹으로 쌓여야 좋은 작품이다. 그러나 이번 연극제 작품들은 하나같이 살아 있는 작품을 창조하지 못했고 인물의 성격이 너무 단조롭고 앙상하게 그려져 있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도, 탁월한 연출가나 배우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무대장치 역시 <시민 조갑출>의 서인석을 제외하고는 연극에 공헌하지 못했다. 그나마 끝까지 긴장감을 가지고 볼 수 있었던 연극은 <불임의 계절>뿐이며 연극을 보는 동안 지루하지 않은 작품은 <그것은 목탁구멍…> 정도였다.

 무대 위에 욕설과 퇴폐적인 언사의 도가 지나칠 때는 관객에 대한 모독이 된다. 연극제의 품위를 잃어가는 오늘의 무대는 연극 자체에 대한 위기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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