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언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
  • 박중환 기획특집부장대우 ()
  • 승인 1992.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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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哲彦 전 체육청소년부 장관에 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의 재임 1년 동안의 치적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일반 국민 상당수는 그가 체육청소년부 장관인지 통일원 장관인지, 혹은 정무제1 장관인지 모를 지경이었다고 말한다. 북방정책에 관한 그의 집념을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소관 부처를 등한히하고 좌충우돌했다는 핀잔을 받을 수도 있다.

전문인들의 견해는 구체적이다. 체육청소년부를 출입해온 <스포츠서울> 申明徹 기자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첫째 전문 체육분야에서, 특히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좋았다. 체육계가 20여개의 금메달 획득이란 양적인 성과 못지않게 체조 여자유도 역도 등 비인기 종목에서 세계정상을 차지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를 박장관의 공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둘째 청소년 · 국민체육부문에 관해서는 사회생활체육협의회 출범과 그 정치성 여부로 시비가 있었으며 뚜렷한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사회생활체육 부문은 단기적인 평가가 어려운 문제여서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셋째 그는 북방정책 수행을 통해 많은 성과를 이뤘다. 중국과 쿠바를 제외하고는 모든 공산권 국가와의 체육교류를 가능하게 했다. 특히 탁구와 청소년축구의 남북 단일팀 구성을 성사시켰다. 부처간의 남북교류협의에서 그는 상당히 전향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등 능력을 발휘했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은 국회의원 출마를 의식한 행동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金在契 <日刊스포츠> 편집국 국차장은 “남북 단일팀 구성은 그의 개인적인 능력보다는 시대적 여건이 크게 작용해 가능했던 것 같다. 돋보이는 공적은 청소년기본법의 국회 통과이다. 시비도 있지만 청소년을 위한 10개년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골격을 마련했다. 앞으로 체육청소년부의 정책은 엘리트체육보다 청소년보호와 국민건강을 증진시키는데 비중을 둬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라고 평가한다. 김국차장은 “그는 실세장관이긴 했지만 경기단체간 불화 등 체육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동아대학교 체육대 安永弼 교수는 “88올림픽 이후 사회체육에 비중을 두었던 정책이 박장관의 취임 뒤 엘리트체육쪽으로 기울었고, 세계잼버리 한민족체전등 대규모 행사를 자주 열어 전시행정이란 인상을 주었다. 그는 92년 대구에서 열린 전국체전 준비에 대폭적인 지원을 해줘 지역적 불균형을 부추겼다. 그런 돈은 사회체육에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청소년기본법의 통과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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