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 전 국방부 장관
  • 문정우 기자 ()
  • 승인 1992.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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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鍾九 전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10월8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보안사(현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파동’ 수습책임을 지고 물러난 李相蕙 장관의 후임으로 임명돼 만 14개월 동안 재임했다. 길지 않은 재임기간 동안 이장관은 많은 일을 했다기보다는 많은 일을 겪었다.

특히 지난해 4월12일 한국편집인협회 초청 조찬회에서 “정부는 북한이 핵무기를 갖지 않도록 설득하고 있으나 북한이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력한 응징체제를 갖출 필요가 있으며, 그 내용은 엔테베작전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라는 발언을 했다가 큰 곤욕을 치렀다.

당시는 역사상 처음으로 축구와 탁구의 남북 단일팀이 구성되고 남북 직교역이 활발히 논의 되는 등 남북관계가 호전되던 때였기 때문에 이장관의 발언은 “남북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망언”이란 지탄을 받았다. 야당은 즉각 이장관의 파면을 요구했으며 여당 내에서도 그의 인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당시 이장관은 사표를 냈으나 그의 경북고 3년 선배인 盧泰愚 대통령은 사표를 반려했다. 그때 노대통령이 “국방장관이 그런 말도 못하는가. 쓸데없는 짓 말라”고 해 그에 대한 두터운 신뢰감을 보였다는 얘기가 전해졌기 때문에 이번 개각 때는 그의 이름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경질은 국방부 내에서 뜻밖의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최근 평화와 화해를 골자로 하는 기본합의서를 채택하는 등 남북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워졌기 때문에 노대통령이 어려운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 후문이다.

국방부에 출입하는 한 기자는 “그는 군출신치고는 진보적이지만 전환시대에 냉전논리를 극복 못한 것이 가장 큰 약점이었다. 그의 퇴진은 앞으로 국방장관도 국제감각을 갖추지 못하면 자리를 부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결국 전 이장관은 ‘엔테베’ 발언으로 물러나게 된 셈인데, 그가 본의든 아니든 한반도의 핵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주의를 환기시켰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의 발언을 계기로 한반도의 핵문제가 국제사회에서 시급히 해결돼야 할 초미의 과제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또 내년부터 ‘성역’이던 국방비 운용문제에대해 공개토론을 하기로 한 것이라든가 국민 편의를 위해 군복무 기간과 예비군 훈련 시간을 줄이기로 한 것도 전 이장관의 눈에 띄는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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