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골’ 박찬종 무너지는 신기루
  • 오민수 기자 ()
  • 승인 1994.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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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 정당대회 잡음으로 정치생명 위기에

개성이 강한 두 사람을 선장으로 내세우고 기세등등하게 출범한 신민호는 끝내 침몰하고 마는가. 박찬종과 김동길. 두 사람 모두 ‘반 양김’을 기치로 내걸고 성가를 드높여온 정치 편력으로, 현 정치권에서 각별한 대중적 인기를 누렷던 인물이다. 지금 이 두 사람이 서로 키를 잡겠다고 다투는 통에 배가 기우뚱거리고 있다. 사실상 두동강 났다는 분석이다. 지난 5월30일 국민당과 신정당이 합당했으니? 만 5개월도 안되는 짧은 항해였다.

내분 과정은 길고도 복잡하다. 합당 전 ‘양순직 당권, 김동길 대권’ 각서의 뒤늦은 공개, 이에 반발한 김대표의 사퇴와 번복, 김대표의 당권 장악 움직임에 양순직 최고와 박대표가 합세해 10월10일 반쪽 전당대회 감행, 그 전당대회장에서 벌어진 양측의 몸싸움에 동원된 어깨들과 동원책임자 구속, 폭력과 돈싸움으로 요약되는 신민당 내분에 대한 여론의 집중포화. 간단히 정리해도 그간의 과정이 어지럽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내용은 간단하다. 요컨대 김대표와 박대표 간의 ‘키 쟁탈전’인 것이다. 박대표 진영에 양최고 위원이 가담해 있는 점만 색다르다.

그런데 침몰 직전의 신민호를 바라보는 이웃들은 결코 가슴을 졸이지 않는 것 같다. 민자당과 민주당은 오히려 느긋하게 상황을 즐기면서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들의 관심은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차세대 정치인 1위’ ‘서울시장감 1위’를 기록해온 박찬종 의원의 행보와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 미칠 영향에 쏠려 있다.

민자당으로서는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구도인 야권통합 가능성이 차단되었다는 점과, 설령 박대표가 독자적으로 출마해도 야당 표가 분산되리라고 분석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들 역시 고소하다는 표정이다. 민주당은 내부 세력 구도와 경선을 거쳐야 하는 처지 때문에 박의원을 약권의 서울시장 단일 후보로 영입하기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야권 후보가 2명 출마하면 선거에서 승산이 없다는 점을 진작부터 고민해 왔다. 그러니까 신민당과 박의원의 인기 하락으로 인해 고민거리 하나가 상당히 해결된 셈이다.

최근 여론조사서 ‘박찬종 현상’ 급속 퇴색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이번 신민당 내분의 가장 큰 피해자로 박찬종 대표를 꼽는 데 이의를 다는 이가 없다. 그렇다면 박대표는 왜 이처럼 손해 보는 게임에 무모하게 달려들엇을까. 물론 신민당이 애초부터 한솥밥을 먹기 어려운 정치세력을 ‘정치적으로’ 봉합한 당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터져나올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어느 정도는 박대표측이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사실 전당대회 직후까지 박대표측은 상황을 낙관했었다.

그러나 현재 여론의 화살은, 각서의 진위를 놓고 양최고위원과 법정 싸움까지 벌이게 된 김대표보다는 박대표 쪽을 향하고 있다. 박대표는 “말을 해봐야 다 변명으로 비치는 마당에 무슨 말을 하겠는가.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사태가 이 지경으로 발전할 줄은 몰랐다”고 말하고 있다. 여론의 비난이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 여론조사 기관이 신민당 전당대회 직후에 서울시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박대표와 신민당의 인기도는 ‘엄청나게’ 떨어졌다고 한다. 다만 이 기관의 책임자는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킬까 봐 발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의정 활동이나 현실적인 정치력보다는 대중적인 인기에 정치 생명을 걸고 있는 박대표 진영에게는 피를 말리는 상황인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ㅈ박찬종 의원 지지도가 지난 대통령 선거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구준히 30~40%를 오르내리자, 이를 ‘박찬종 현상’이라고 부르며 마뜩찮게 여겨 왔다. 정치 난제를 함께 풀기보다 인기 관리에만 골몰하는 박의원의 행태에 대중이 속고 있다는 비아냥도 있었다.

사실 박대표를 알 만한 사람들은 일반 대중과는 달리, 박대표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다. <시사저널> 창간 5주년 여론조사에서 차세대 정치인 1위 · 선호 정치인 1위를 기록한 박찬종 의원은, 그러나 동료인 정치인 집단으로부터는 일관되게 낮은 평가를 받았다. 박대표는 그동안 정치부 기자를 상대로 한 영론조사에서도 매우 낮은 점수를 받아 왔다. 현 정치권에서 주변의 평가와 일반의 평가가 이처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인물은 없다. 신민당 사태를 지켜본 정치권에서 “이제야 바가대표의 본색이 세상에 낱낱이 드러났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역시 이런 맥락이다.

정가에서 박대표의 별명은 독불장군. 양김 정치를 비판하며 이를 세력화하기보다는 혼자서 그 열매를 독차지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래서 정당 조직 내에서 검증된 적이 없다는 약점이 늘 그의 곁에 따라다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신민당 전당대회는 박찬종 의원이 정당 내에서 첫 검증을 받는 시험대였다. 박의원은 이 시험에서 정치 생명까지 위협받게 된 것이다.
- 吳民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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