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우리들의 일그러진 파수꾼
  • 편집국 ()
  • 승인 1994.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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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 기소유예 관련 시민 토론회 발제문 특별 게재/"특권층. 재벌 앞에 무기력"



문민 정부 하의 검찰은 이제 무기력의 수준을 넘어 거의 아사(餓死) 직전에 놓여있다.
 과거 독재 정권 아래서부터 이른바 '권력의 시녀'라는 비난을 받아왔던 검찰은 문민 정부가 들어선 초기에 '부정부패 척결' '국가기강 확립'이라는 두 가지 당면 과제를 부여받고 있음을 자임하고 사정과 개혁의 선봉으로 자처하면서 역사적 소명을 다하였던 결과 국민들도 새롭게 달라진 검찰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같은 '가슴뿌듯한 자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금번 검찰이 12. 12사건을 기소유예 불기소 처분을 하는 것을 보고 그러한 검찰의 자부가 얼마나 가소로운 것인가를 서글프게 느낀다. 검찰은 영영 국민의 사랑은 한번도 받아보지 못하니, 아니 받을 수 없는 천덕꾸러기인가. 정녕 검찰은 무엇이 정의인가를 과감히 선언하는 정의의 파수꾼이 될 수는 없는 것인가.

봐주기 한정 수사로 스스로 '소외'
 정의에 어긋난 검찰권 행사의 유형은 크게 수사 행태에 따른 유형과 수사 대상에 따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수사 형태에 따른 유형은 다시 △표적 수사△방목(放牧)수사△뱀꼬리 수사△괘씸죄 수사로 나눌 수 있다.

 표적 수사는 정치 목적 달성 또는 사정 개혁이라는 명의에서 야기된 갈등을 사후에 정치적으로 보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검찰권이 행사된 것이라는 의구심이 짙은 사안이다. 표적 수사의 대표적 사례는 3박(박태준. 박철언. 박재규) 전의원 사건과 한호선 전 농협회장 사건이다.

 박재규 전 의원 사건의 경우 3당 합당 이후 여당 의원이 된 박의원은 그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기소된 한국식물방제협회 이건녕 회장이 90년1월22일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뇌물수수 협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당시 박의원을 구속한 데 대해 '부패 국회의원'을 제거함으로써 새 여당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지극히 정치적인 결정으로 보는 견해가 검찰 안팎에서 나오고 있어, 검찰권 행사에 대한 의혹이 불식된 것은 아니었다.

 슬롯 머신업계 대부 정덕진 형제로부터 비호해준 대가로 5억원을 수뢰하였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철언 의원에 대한 수사는, 92년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반 김영삼 진영에 섰던 박의원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는 견해가 대두되었다.

 대검 중수부가 박태준 전 포철 회장에게 뇌물을 준 기업체 관련자에 대하여 93년6월7일 소환 조사에 나서는 등 본격 수사에 착수한 것은, 정치 성격이 짙은 이 사건의 수사 과정을 더 확실하게 관리, 장악하겠다는 검찰 수뇌부의 의도가 담겨져 있었다.

 박태준씨가 사법 처리될 경우 정부투자 기업인 포철의 과장급 이상은 공무원으로 인정되는 만큼 그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수수죄가 적용될 것이 확실시되며, 이 경우 그의 비자금 부분 의혹 해소에 쏠린 국민의 눈길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여전히 숙제로 남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한호선 농협중앙회장 비자금 사건의 경우 이를 수사하고 있는 대검 중수부는 94년3월7일 한회장의 개인 비리에 대한 수사는 확대하고 있으나. 한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민자당 14대 총선 후보 11인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했다고 보도되었다.

 방복 수사는, 검찰권의 적정한 행사에 국민의 관심이 쏠렸으나 정작 검찰은 내사 종결이나 무혐의 처분 결정을 함으로써 오히려 사건 당사자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냐는 비난이 인 사안이다. 대표적 사례는 이른바 기넥신 의혹과 한양 비자금 수사 의혹에 대한 수사, 원전뇌물 재벌 수사 축소 조작과 재벌에 대한 봐주기 수사,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씨 부부에 대한 봐주기 수사, 이원조 전 의원에 대한 내사종결 등이다.

 이른바 '징코민 의혹'에 대한 검찰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와 92년6월12일에 발표된 보사부의 자체 검사 결과는 국민의 의혹에 또 하나의 의혹을 덧붙였다. 동방제약의 징코민에 맞서 선경제약이 제조. 판매중인 은행잎 제재 기넥신에서도 메탄올이 검출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보사부가 이런 사실을 이미 확인하고서도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를 기다려 공개한 것은, 메탄올 파동의 불똥이 선경 쪽으로 튀는 것을 막기 위한 계산된 행위가 아니냐 하는 의혹이 있었다.

 한편 한양그룹 배종렬 전 회장의 비리를 수사중인 검찰은 수사 범위를 배 전회장의 개인적 횡령으로 한정해 건설업계와 정. 관계간 구조적 비리에는 애써 눈을 감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검찰은 회사 경리 간부들로부터 (주)한양이 매달 일정 액수의 비자금을 조성했으며, 이 중 일부만이 배 전회장의 개인 재산으로 관리되어 왔다는 진술을 이미 얻어낸 것으로 전해져, 나머지 비자금이 정치 자금으로 유입되었는지에 대한 자금추적 등을 과감히 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재벌에 대한 봐주기 수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94년8월20일 기소된 안병화 전 한전사장의 뇌물수수 사건은 수사 과정에 굵직한 국내 거대 재벌들의 뇌물공여 비리가 잇달아 드러남에 따라 충격을 안겨주었는데, 검찰이 이 사건을 안씨 개인 비리로 국한하고 관련 재벌들에 대해서는 불구속 기소라는 '관대한 처분'을 내리는 등 법 집행에 큰 문제를 드러낸 사실 또한 이에 못지 않게 충격적인 일로 지적되었다.

 이처럼 원전 뇌물, 지하철 부실 공사에서부터 성수대교 붕괴 사건에 이르기까지 재벌 그룹이 관련된 대형 비리 사건이 잇달아 터지고 있는데도 당국은 미온적 대응으로 일관해 '재벌 봐주기'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소영씨와 사위 최태원씨에 대한 외환관리법 위반 협의 고발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외화 밀반출 혐의 내용에 대한 수사보다는 이들 부부가 제출한 자료를 근거로 해명을 들어주는 수사에 치중(분산 예치금 9만7천달러 압수와 보호관찰 선고, 집행유예 1년)했다. 이 또한 방목 수사 유형이다.

 한편 이원조 전 의원의 경우 대검 중수부가 그에 대해 내사 종결 결정을 내리자 정치권과 재야 법조계가 일제히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서 법 집행의 형평성을 둘러싼 논란을 빚었다. 같은 사건에 연루된 김종인 전 의원은 안영모 전 동화은행장으로부터 2억1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징역 5년 추징금 1억1천만원을 선고받았다.

 뱀꼬리 수사는 태산명동서일필 격으로 초기에 의욕적으로 수사하겠다고 공언하다가 권력이나 외압에 의하여 나중에는 그 결과가 흐지부지되었다고 비난받은 사안이다.

 6공 최대 비리로 번져가고 있는 수서지구 특혜 분양 의혹을 둘러싸고 사실상 검찰을 못미더워하는 갖가지 제안들이 터져나와도 대통령의 특별 감사 지시가 떨어지기까지 '수사에 나서지 않을 방침'만을 되풀이 밝혀온 검찰의 태도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결국 수서 사건 수사는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과 전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 및 국회의원 5명, 공무원 1명, 주택조합관계자 1명 등 모두 9명이 구속됨으로써 일단 검찰 수사가 마무리됐다.

 상무대 이전공사 대금의 정치자금 유입 및 공사수주 과정 금품 로비 의혹이 증폭되고 있을 때도 검찰이 이사건에 대한 전면 수사를 계속 기피하여 검찰 조직의 존재 의미를 상실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그런데 대구 동화사 통일대불 조성자금 80억원을 시주한 청우건설 조기현씨는 상무대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피소되었으나 서울지검이 두 차례나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서울지검은 서울 고검이 재수사 지시를 내리고 국방부가 상무대 특감 결과를 통보해 오자 고소 제기 1년3개월 만에 조씨를 횡령(1백89억원)등 혐의로 뒤늦게 구속했다.

 슬롯 머신업계 대부 정덕진씨 비호 세력 수사는 검찰의 숨겨진 환부가 속속 모습을 드러낸 충격적 사건이었다. 특히 검찰 고위 간부들이 슬롯 머신업자로부터 거액의 뇌물과 승용차등을 상납받았다는 사실은 형사 피의자의 기소권을 독점하여 수사의 주재자임을 자처해온 검찰이 수사 대상이 되어야 할 업자들과 검은 거래를 해왔다는 점에서 검찰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율곡 비리 수사 또한 '한정 수사'의혹의 큰 대표적 사안이다. 율곡사업 비리를 수사중인 대검 중수부는 11개 무기중개업체 및 방산업체 관계자 12명을 소환 조사한 후에 13명을 추가 조사, 이종구 전 국방부장관 등 피고발인을 조사하여 이종구, 이상훈, 김철우(전 해군참모총장), 한석주(전 공군참모총장) 등 4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수수) 협의로 구속했다. 또 김철우씨에게 3억원을 뇌물로 준 무기중개상 학산실업 대표 정의승씨를 뇌물 공여 혐의로 구속하고, 현대정공 정몽구 회장, 대한항공 조중건 부회장, 삼상항공 윤춘현 전 상무, 진로건설 박태신 전 사장 등 뇌물 공여자 10여 명을 불구속 입건했으나,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횡령 피해자라는 이유로 제외하였다.

 괘씸죄 수사는 공무원으로서 내부 비리를 양심 선언 방법으로 폭로하자 권력이 이를 괘씸히 여겨 검찰이 전격적으로 구속 기소한 사안이다.

제도 보완과 함께 국민 의식 수준도 변화해야
 검찰이 재벌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소유에 관한 감사 내용을〈한겨레신문〉에 알렸다는 이유로 감사원 감사관 이문옥씨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구속한 처사는, 재벌기업의 부동산 투기를 근절할 것이란 정부의 거듭된 의지를 의심케 하였다. 또 검찰의 조사 내용도 이씨가〈한겨레 신문〉에 제보할 당시 밝힌 내용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이씨를 구속한 것은 재벌 기업과 정부 부처의 비리를 고발한 이씨에 대한 보복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또 한준수 연기군수가 92년8월31일 국회 민주당 원내총무실에서 양심 선언을 통해 "정부가 지난 14대 총선에서 여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광범위한 금권. 관권 선거를 지시했다"고 폭로한 사건에 대해서도 대전지검은 한군수와 임재길 연기지구위원장을 구속하면서 이종국 충남지사는 불구속기소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수사 대상에 따른 유형은 그 대상에 따라 △권력형 △재벌형 △고급공무원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구체적 사례는 앞서의 분류와 중복된다.

 검찰권 행사가 정의롭지 못한 원인은 우선 대통령과 국회의 책임을 꼽을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사법부와 검찰의 독립을 존중하지 않으면 사법부와 검찰이 독립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특히 상문고 사건에서 보듯 문민 정부 하의 검찰의 청와대 눈치나 살피고 대통령 지시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현상을 보이는 것은 문민 시대의 검찰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다. 국회 또한 검찰의 독립과 중립을 보장하는 일을 소홀히 하였다(예:비민주적인 법률 개폐, 행사 소송법 개정, 특별검사제 도입을 관철하지 못함).

 이는 또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과제이기도 하다. 과거 독재 권력은 소신파 검사를 법무부장관이나 검찰총장에 등용하지 않았다. 검찰과 국민을 지키기보다 독재 정권 유지에 노력하고 정치지향적인 인물들을 임명하였다. 일반 검사들도 공익의 대표자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출세 지향 사고방식이나 권위주의를 불식하여야 한다. 검찰권 행사에 무관심했던 국민도 검찰의 독립이 침해된 데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특히 검찰의 법적. 제도적 대책으로 제시된 기소 독점주의나 기소 편의주의에 대한 제한, 특별검사 제도 도입, 검사 동일체 원칙 수정 등은 검찰권 남용이 지적될 때마다 수차 제기되어 왔으나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위와 같은 제도적 보완책이 마련된다 하더라도 전반적인 국민의 의식수준이 함께 변화하지 않는다면 결국 검찰권 남용에 대한 대책은 미봉에 그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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