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서 앞둔 두 대통령의 ‘거래’
  • 정태인 (경제평론가) ()
  • 승인 1992.0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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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의 위력은 역시 놀라웠다. 대통령선거를 코앞에 두고 걸프전으로 치솟은 인기를 경제문제로 인해 나날이 일어가는 부시 대통령과 자신의 거취 때문에라도 총선과 대선에서 민자당을 반드시 승리자로 만들어야 하는 盧泰愚 대통령이 만나 무엇을 했을 것인가. 신문을 대충 읽어만 보더라도 그 답은 명확히 드러난다.

 부시대통령의 선물은 최근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전폭적 지지였으며 그 궁극적 내용물은 남북정상회담이다. 너무 많아 골치 아프다던 우리의 수지 흑자는 대규모 적자로 돌아섰다. 60년대 경제 개발 이후 가장 안정되었던 물가는 두 자리 수냐 아니냐다 문제로 떠올랐다. 87년 대통령선서 당시 노태우 후보가 내건 3대 경제공약, 즉 내 집 마련· 토지 공 개념 · 금융실명제는 아예 물 건너갔다. 서민들은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금융실명제는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몰려 완전히 사장됐다. 그래서 6공화국 내내 경제 위기론을 들먹이게 만든 대통령에게 ‘우리의 소원’인 통일에의 접근은 충분히 만병통치약으로 보일만하다.

 그러면 부시 대통령은 무엇을 얻고 돌아갔을까. 미국 경제는 이미 89년 말 이후 침체국면으로 들어섰으며 91년에는 심각한 위기국면에 처했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부시 대통령은 금리인하 등 금융완화정책을 쓰고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나 자유무역지대 창설 등에서 보듯 수출촉진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완화정책은 각 나라, 특히 일본과 독일이 함께 금리를 인하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결정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미국의 연이은 금리인하에 발맞춰 일보도 금리를 내렸지만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서독은 오히려 금리를 인상하는 둥 국제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금융 기관의 마비 역시 금융완화정책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 따라서 부시 대통령은 다른 나라에 대한 통상압력에 목을 걸 수밖에 없다. 노태우 대통령의 선물이 바로이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통상압력의 초점은 주로 금융시장 개방과 통신시장 개방인 것으로 보인다. 89년 이후 이들 산업은 미국의 압력에 떠밀려 점점 더 개방의 폭과 속도가 넓어지고 빨라졌으며 이번의 요구는 이를 좀도 재촉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요 몇 년 동안 우리는 개방이니 동상압력이니 하는 말을 많이 들어 이제 무감각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정도면 ‘뭐 별로’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통신시장이나 금융시장이 그 나라 경제의 핏줄이라는 점에서 이 분야의 개방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전도로 엄청난 피해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국민경제의 이익, 미국과의 정치적 흥정으론 못 지킨다
 이번 회담에서 특이할 만한 것은 부시 대통령이 쌀 시장 개방 등 농업문제에 대해 언급을 애써 회피했다는 점이다. 과연 미국이 쌀 시장 개방 압력을 포기한 것일까.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말 중에 서도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찾아낼 수 있다. 이 번 방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의 조기 체결에 대한 한국의 협력이라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이 우루과이 라운드라는 다자간 협상과 각 나라에 대한 쌍무협상을 적절하게 배치해서 경제적 실리를 챙겨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서 가장 큰 문제 중하나가 농산물 협상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한국의 협력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정치적 부담이 되는 쌀 시장개방 등 농업분제는 다자간 협상에서의 미국 주자에 한국이 동의하는 것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아직 총선 일자가 언제인지 확정되지 않았지만 총선이 끝나면 이번의 합의를 들어 구체적으로 쌀 시장개방 압력을 가해올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두 나라 대통령의 웃음과 악수의 결과는 과연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한국에서 이번 회담의 경제적 결과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타날 것인가는 분명하다. 80년대 중반이후 한국에서 개방은 곧장 국제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의로 이어졌고, 따라서 대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 뒤를 이었다. 한 재벌에서만 매년 50억 원 이상의 정치자금을 받아온 정권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경제 논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가 국제화되면 어느 정도의 개방은 불가피하며 현재와 같이 세계경제가 몇 개의 블록으로 나뉘는 경향 속에서 북한 · 쿠바와 같은 자급자족 경제를 주장하는 것은 분명 시대착오이다. 그러나 이런 한 국제적 흐름 속에서 국민경제의 이익, 민중의 밥그릇을 지키는 길이 대내적으로 정경유착에, 그리고 대외적으로 미국과의 정치적 흥정에 있지 않다는 것 또한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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