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괸 물’ 외무부 체질개선 물꼬 텄다
  • 변창섭 기자 ()
  • 승인 1992.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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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大使’로 정책 알리기 실천…예산 부족이 걸림돌

 우리 외무부는 다른 부처에 비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외무성과 비슷한 점이 많다. 예산부족은 물론이고 ‘물좋은’ 산하기관도 없다. 또 한평생 직업외교관으로 근무한 후 은퇴해도 다른 부처 사람에 비해 국영기업체의 장으로 가는 ‘특전’도 극히 드물다. 정부조직법상 외무장관의 서열은 장관이 부총리인 기획원과 통일원에 이어 3번째지만 외무장관이 ‘파워’가 있다는 말은 별로 들리지 않는다. 더욱이 과거 국회가 ‘통법부’ 역할에 머물렀던 시절엔 외무부 안건은 의례적인 보고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외교정책은 홀대받았다. 외교관 경력 27년의 한 고위 관리가 “과거엔 경제발전과 안보에 온 국력을 쏟는 통에 외무부는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부터라도 정책지도자들의 대외무부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뭔가 석연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외무부가 지금껏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외무부 출입기자 “한가롭던 시절은 옛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체의 冬宮”으로 불렸던 외무부가 탈냉전 후 신국제조류에 발맞춰 대대적인 체질개선작업을 벌여 주목을 끌고 있다. 장 · 차관 이하 주요 간부가 적극적인 대국민 홍보에 나서는가 하면 내부적으로는 외교정책기획실과 7개 과를 신설하는 기구개편이 단행됐다. 특히 작년 9월 유엔가입 이후엔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한 주요 간부의 브리핑제도를 새로 도입했다. “외무부 출입기자가 한가롭던 시절은 옛말”이란 모 중앙일간지 기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신문이나 방송에는 외무부 관련 뉴스가 거의 매일 실릴 만큼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게 요즘 외무부의 모습이다.

 외무부 변화는 △직제개편 △대국민 홍보정책의 강화 △외교정책의 다변화 등 세가지이다. 과거 친서방 중심의 안보 위주 외교에 치중해온 정부가 탈냉전 조류와 유엔가입 등 급변하는 대내외적 상황에 부응해 시의적절히 변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우선 직제개편부터 살펴보면, 외교정책기획실과 7개 과가 신설된 것은 작년 5월 하순이다. 李時榮 전 세네갈 대사가 실장으로 있는 외교정책기획실은 그 기능상 특기할 만하다. 정책기획실은 “고차원적인 방정식으로 풀어야 할 만큼 복잡한 향후 외교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실장의 설명대로 중장기적인 외교정책 수립을 맡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총회에서 중국 대만 홍콩을 동시에 회원국으로 가입시키는 외교적 개가를 올린 곳이 바로 이 정책기획실이란 점에서 그 기능이 기대된다. 정책기획실 내에는 4개 과가 있는데 남북문제를 전담하는 특수정책과의 북한의 핵문제를 다루는 안보정책과는 주목할 만하다. 특수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남북합의서가 발효되면 인원을 증원한다는 원칙이 서 있다”고 귀띔했다.

 신설된 7개 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유엔가입에 따라 기존의 국제연합과가 1 · 2과로 확대됐으며 조약국 내에는 국제협약과가 신설돼 앞으로 늘어날 각종 국제기구와의 협약업무를 맡게 된다. 이밖에 국민의 해외이주가 늘어남에 따라 기존의 재외국민과를 1 · 2과로 세분했고 스포츠와 학술분야의 교류를 위한 문화협력2과, 늘어나는 해외의 국유재산을 관리하기 위한 국유재산과도 생겼다.

 7개 과 중 국제경제국 내의 과학환경과도 눈길을 끈다. 정부는 금년 5월 오존층파괴 방지에 관한 몬트리올의정서에 조인하고 6월엔 유엔환경개발회의에 대표를 파견하는 등 어느 때보다 환경외교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나 과학환경과는 “정부의 모든 부처 중 지구환경 문제를 다루는 유일한 곳임에도 인력은 고작 4명으로 환경외교를 제대로 펼치기엔 미흡하다”는 게 鄭來權 과장의 설명이다.

 대국민 외교홍보가 강화된 것도 전에는 볼 수 없던 것이다. 외무부에 따르면 작년 한해 李相玉 장관을 포함한 주요 간부의 기자간담회가 2백37회에 이르며 이들의 각종 세미나와 연설회 참여는 86회에 달한다. 외무부가 부산과 경기도 등 대외관계가 빈번한 지역에 이른바 자문대사를 파견해 적극적인 외교시책의 홍보에 나선 것도 유별나다. 90년 11월 자문대사제도를 도입한 후 현재 부산시에는 權丙鉉 대사가, 경기도청엔 ?彩基 대사가 각각 파견돼 활동하고 있다. 외무부는 내년에 열릴 대전엑스포에 대비해 대전시에도 자문대사를 파견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한마디로 장관부터 일선 실무자까지 국민을 상대로 ‘발로 뛰는 외교’를 벌이고 있다. 국제정치학의 대명사 한스 모겐소가 외교정책의 3대 성공요건의 하나로 꼽은 ‘국민적 지지’가 중요함을 새삼 느끼는 곳이 외무부이다.

 기구개편과 홍보정책이 외형적 변화라면 이를 토대로 한 좀더 근본적인 변화는 외교정책에서 찾을 수 있을 것같다. 외교정책의 다변화가 그것이다. 48년 정부수립 후 80년대 중반 신데탕트 무드가 조성되기 직전까지 한 · 미관계를 중심으로 삼아온 우리 외교는 소련과 중국 등 사회주의권과 인도 등 비동맹권을 아우른 전방위외교로 방향을 틀었다. 탈냉전 이후 정치안보가 퇴색하고 국제무대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나 환경보호, 인권신장과 마약퇴치 등 비정치적 분야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우리 외교의 다변화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다변화 외교에 적절히 대응하기엔 아직 해당분야의 전문외교관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외무부 예산, 정부 예산의 0.8%에 불과
 문제는 기구개편 · 대국민홍보 · 외교관 자질 향상 등 모든 사안이 예산과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탈바꿈을 실현하기엔 외무부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작년의 직제개편 때 필요인력 80명을 충원한 예산도 이미 책정된 외무부 예산 내에서 마련했다는 후문이다. 외무부의 올 예산은 2천7백억원으로 정부예산 33조5천억원의 0.8%에 불과하다. 외무부 기획관리실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외무부가 예산증액을 신청해도 ‘작은 정부’를 내세우는 기획원측의 논리에 밀려 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최소한 정부 예산의 1%선은 확보해야 외무행정이 그런대로 굴러갈 것”이라며 선진국의 경우 정부예산에서 외무부 예산이 보통 1~2%를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외무부 예산은 지난 64년과 72년부터 75년까지 4년 동안을 빼면 한번도 정부예산의 1%를 넘어본 적이 없다. 이 때문에 일선 외교관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행정요원의 확충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기획관리실측 자료에 따르면 외무부는 외교관 1명에 행정지원 인원이 0.7명으로 일본의 4명이나 미국의 2.8명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사정으로 한 외교관이 다른 과로 옮기면 서류정리나 해당 문서를 일일이 찾아야 하는 잡무에 뺏기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외교관들은 하나같이 “최소한 외교관 1명에 행정요원 1명은 돼야 제대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자면 소요인력이 3백명을 웃돌게 되므로 현재로서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고 한다.

 외무부의 오랜 숙원인 독립청사의 확보 역시 예산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고위 외교관은 “우리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외교의 몸집도 커진 만큼 우리나라의 얼굴인 외무부가 독립청사가 없어서야 되겠느냐”고 말한다. 실제로 개발도상국에서 한국에 요청하는 원조 사항 중에는 자국 외무부 청사 건립도 가끔 들어 있는데 이럴 때면 우리측은 “우선 우리 외무부부터 짓는 게 급선무”라는 농담 아닌 농담으로 넘겨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외국 손님을 빈번히 만나야 하는 일선 과장들도 과내에 버젓한 응접실이 없어 낯을 붉히는 일이 많다고 한다.

 예산 부족은 외무부 유일의 정책산하기관으로 지난 76년 발족한 외교안보연구원의 연구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 외무부는 앞으로 10년 동안 주요 외교시책의 하나로 경제외교의 강화를 내세우나 본부의 실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줄 해당 연구원은 단 1명에 불과해 인력확보가 시급한 실정이다.

 오늘의 외무부는 전환점에 와 있다. 남북한이 유엔에 함께 가입하고 기본합의서를 채택하는 등 어느 때보다 통일기반이 싹트고 있는 상황에서 외무부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북방외교의 성공적 마무리, 유엔가입에 따른 다자외교의 전개, 우루과이 라운드와 같은 국제경제질서에 대응한 경제외교, 아태시대의 대비 등 할 일은 태산같다. 柳宗夏 차관은 이를 두고 “우리 외교는 지금껏 잔잔하고 쾌청한 날씨의 內海 속에서 항해를 해왔으나 앞으론 바람도 세고 풍랑도 심한 大海로의 진입이 불가피하다”고 비유했다. 과연 작금의 체질개선이 ‘大海외교’의 밑거름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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