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 도시’ 멀지 않다
  • 남문희 기자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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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ㆍ공간 문제 해결책…관련 법ㆍ환경문제 등 풀어야 할 과제 많아




서울시청 앞 분수대를 일단 대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이 분수대에서 지하로 일정 깊이를 원통형으로 파들어간다. 맨 위에는 자연광을 지하 깊숙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특수유리로 만든 도식 지붕을 얹는다. 공간별로 용도를 지정한다. 맨위층은 사무실, 그 다음 체육 및 문화 시설, 그리고 그 아래로 지하도로와 주차장, 맨 밑에 고속지하철 등을 만든다. 용도별로 구획된 이 지하 거점공간은 고속지하철망을 통해 다른 거점 공간과 연결된다.

 그동안 지하구조물 설계를 전문적으로 담당해온 삼림컨설턴트가 올해 초 서울 시청앞 분수대 지하에 지하도시를 만든다면 어떤 모양이 될 것인가를 상상해 이런 밑그림을 그려보았다. 이 회사의 김치환 개발실장은 “지하공간 개발이라고만 하면 그 뜻이 구체적으로 전달되지 않아 이런 상상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당장에 이렇게 된다기보다 이렇게도 될 수 있다는 개연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하도시에 대한 상상은 한 건축 설계회사의 시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10월15일 공식으로 창립대회를 마친 ‘한국지하공간협회’가 올 11월초 열게될 심포지엄에서 그것은 보다 구체적인 연구결과로서 발표될 예정이다.

 한국지하공간협회는 그동안 지하공간 개발에 경험이 있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50여개의 건설업체를 정회원으로 하고 서울시, 건설부 등 유관부처와 학계인사를 준회원으로 하여 결성됐다. 지하공간 개발에 관한 민ㆍ관ㆍ학의 공조체인 것이다. 이협회의 첫 행상인 11월의 심포지엄 주제가 바로 서울시 지하공간 개발에 대한 청사진이다.

 삼성종합건설은 이 자리에서 ‘지오네스시티(Geonescity)’라는 새로운 개념을 소개할 예정이다. 지오네스시트티란 삼성종합건설이 장기프로젝트로 추구하고 있는 복합 지하공간 개발구상으로, 태평로 일대 지하에 거점도시를 건설하고 이를 전국으로 확산해 지하로만 연결되는 지하도시 네트워크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이다. 개발3팀의 민춘식 과정은 “앞으로 여러가지 주변 여건이 허락한다면, 조금씩 구체화해 언젠가는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하공간의 설계자들이 그리는 이런 밑그림은 일반의 상상 수준을 넘는다. 여태까지 지하공간 하면 유류 저장탱크나 LPG저장 탱크, 양수 발전소 같은 산업시설, 그리고 도시의 지하철 지하상가 지하도록 등을 일반적으로 떠올렸다. 산업시설을 별도로 친다면 도시 지하공간은 지하로 들어가 봐야 10m 이내이고, 그 동안 환기나 채광 등의 문제로 인해 지하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해소시키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복합 지하 개발구상 ‘지오네스시티’

 최근 서울시나 건설부 그리고 건설업체들이 제시하고 있는 지하공간의 이미지는 이와는 사뭇 다르다. 지상에 대한 보조공간으로서의 지하가 아니라, ‘제2의 생존공간’으로서의 지하인 것이다. 이런 공간은 기존의 도시 지하가 여러 지하매설물이나 기존 시설물 등으로 복잡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에, 최소한 20~30m 이상 깊이 들어가 설치하게 된다.

 서울시 도시계획과 정석효 과장은 도시 지하공간 개발의 당위성을 기존 도시들의 공간 부족 현상에서 찾고 있다. 특히 서울시는 과다한 인구 집중과 공간의 절대 부족으로 인해 이제 지상공간의 개발만으로는 더이상 도시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도로 하나를 새로 뚫으려고 해도 빠져나갈 데가 없다”고 장과장은 말한다. 또 서울시는 땅값이 비싸 “보상비로 지불되는 비용을 가지면 지하철 노선 하나를 신설할 수 있는”수준이다. 민원의 집중포화를 맞으며 비싼 땅값을 지불해 지상에 시설물을 만드는 것보다 지하에 만드는 것이 이제 비용 면에서도 거의 엇비슷하다는 것이다.

 건설기술연수원의 배규진 선임연구원은 “도시 지하공간 개발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말한다. 그동안 선진국에서는 지상공간 부족을 해소하는 방안으로서 우주개발 해양개발 지하공간 개발 등의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해 왔는데 최근에는 지하공간 개발이 가장 타당성 있는 것으로 제시되고 있다.

 최근 몇년 사이 서울시를 중심으로 주요시설물의 지하화 추세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지하주차장이다. 요즘 건물 신축공사장에 가보면 기존의 공사보다 지하로 훨씬 깊이 들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기존의 건물들이 지하 7~8m 정도 내려가는 게 고작이었다면 요즘은 최소한 지하 20~30m, 층수로는 6, 7층까지 내려간다. 대개 1, 2층은 스포츠센터 등으로 활용하고 3층 이하는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등 건물 지하에 다각적인 활용이 모색되고 있다.

 건물에 부속된 주차장 말고도 최근에는 전용 지하주차장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종묘지하 주차장이나 올해 9월 문을 연 세종로 지하주차장은 지하공간 개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고 특히 주목된다. 건물지하 이외에는 통념상 옥외에 짓는 것이 보통인 주차시설을 지하로 끌어내리고, 그 대신 지상공간에는 공원이나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한다. 지하공간에도 단순한 주차시설뿐 아니라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었다. 세종로주차장의 조영목 소장은 “지상과 다름없는 환경을 조성했다”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서울시, 지하 개발의 타당성 검토중

 도시기반 시설과 관련해 대표적인 것은 서울시가 북안터널과 불광터널 등에 지을 예정인 지하배수지, 하수처리 시설 등이 있고, 2기 지하철 공사가 끝나는 96년경 착공 예정인 창동~강남 구간 19㎞의 지하도로가 있다.

 또 서울시는  최근 서울 여의도 관광 지하에 문화교육시설, 편의시설, 주차시설을 수용하는 지하타운 건설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우선 대강의 방향이나 추세는 이와 같이 기존의 도시 기반시설 중 상하수도 시설, 주차장, 도로 등을 지하로 끌어내리고 지상공간을 여유있게 활용하자는 쪽으로 잡혀 있다. 하지만 아직 장기적인 개발구상이 제시된 상태는 아니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앞으로 지하공간 개발을 도시계획의 주요부분으로 포함시키겠다” 선언한 이래, 건설부와 함께 지하공간 개발과 관련한 여러 제도ㆍ기술적 측면을 검토하고 있다. 늦어도 내년 말이면 기본 구상 정도는 나올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나 건설부 등 관계 부처가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고 나섬에 따라 그동안 지하공간 개발에 관여해온 건설업체는 아연 활기를 띠고 있다. 대우건설기술연구원의 조철근 차장은 “건설업은 그때그때의 추세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전반적 추세는 지하공간 개발이다”라고 말한다.

 그동안 국내 건설업계는 지하철 공사나, 양수발전소, 유류저장탱크 등 지하산업시설을 건설한 경험을 통해 기술을 축적해 왔다. 따라서 기술적인 면에서 커다란 어려움은 없다고 한다. 다만 이 분야에 섣불리 뛰어들기 어려웠던 것은 각종 법령이나 제도가 지상 위주로만 되어 있어, 소유권 문제 등 제도적인 측면의 보완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또한 지하공간 개발은 공사비 규모가 크기 때문에 채산성이 우려돼 선뜻 나설 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 삼성의 종묘지하주차장이나 선경의 세종로지하주차장 사례에서 보듯 지하공간도 이제 장기적으로는 채산성을 맞출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고, 공사비 규모에서도 최근의 땅값 상승을 고려할 때 지상공간과 비교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 연구해야

 그러나 지하공간 개발의 당위성은 인정한다 해도 지하철 등의 대중교통 시설을 확충하는 것은 급선무라는, 시기 및 예산 문제와 관련한 반대여론이 있다. 이러한 주장은 지난번 서울시가 지하도로 건설계획을 제시했을 때 첨예하게 제기돼, 지하도로의 착공 시기를 2기 지하철 건설이 완공될 96년 이후로 미룬바 있다.

 지금 당장의 개발 방향은 사람의 장기간 체류와는 무관한 기반시설물 위주로 될 수밖에 없다고 해도 장기적으로는 인간의 거주공간으로서의 지하공간 개발이 목표라는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결국 지하공간에서 인간이 얼마나 생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즉 지하공간이 과연 제2의 생존공간으로서 타당한가는 확인해야 할 점이다

 여전히 환경 문제가 가장 크게 대두된다. 이 문제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선진국에서는 이미 다양한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채광의 경우 지상의 자연광을 될 수 있는 대로 지하 깊숙이 끌어들이기 위해 특수거울이나 광섬유를 통한 자연광의 재생기술까지 동원되고 있다. 환기 문제도 시설투자만 가능하다면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지하공간은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지상보다 살기 좋은 공간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도 아직 인간이 지하에 어느 정도나 머무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연구된 바가 없다. 심리적인 폐쇄감이나 지하 깊은 곳에서의 기압 상승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 앞으로 검증돼야 할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가 제대로 규명될 때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지하세계에 대한 마음의 빗장을 열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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