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은 ‘불가침선언’부터
  • 남문희 기자 ()
  • 승인 1990.11.08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나의 국가’ 보장하는 언질 있어야 가능… 북한서도 주변정세 고려, 전기 마련 희망

盧泰愚 대통령과 북한 金日成 주석의 회동 가능성이 남북관계의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에 평양에서 있었던 김주석과 姜英勳 총리 면담에서 총리회담의 성공적 진행이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김주석이 노대통령과의 만남에 적극적인 태도를 표명, 정상회담의 조기실현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노ㆍ김회담의 성사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국가 대 국가를 대표하는 정상회담의 형식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그만큼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남과 북이 아직도 커다란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5공화국과 6공화국을 거치면서 남한 정부는 남북관계의 개선 및 통일과 관련한 문제를 남북정상회담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을 지켜왔다.  특히 89년 9월 한민족 공동제안이 6공화국의 통일방안으로 채택되면서 남한정부의 정상회담 주장은 이것과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한민족공동체안을 통일을 위한 과도기로서, 남과 북을 두개의 국가로 상정하는 남북연합은 남북의 정상이 회동하여 통일헌장을 채택함으로써 완성되게 된다.  이때 정상회담은 두개의 국가체제를 마무리짓는 최종 수준의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남한쪽의 정상회담 주장을 ‘두개의 조선 책략’이라고 비난해온 북한이 한민족공동체안이후 남한쪽의 정상회담 주장에 대해 더욱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이유를 여기서 읽을 수 있다.  북한의 주장에 의하면 남과 북을 국가 대 국가로서 대표하는 정상회담은 바로 이 국가 대 국가 관계를 폐기하기 위한 것일 때만 의미를 갖는다.  남북정상회담은 하나의 국가로의 통일을 위한 기본 원칙과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것일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지금까지 남북정상간의 만남을 거부만 해온 것은 아니다.  정상회담이 아닌 다른 형식, 남과 북을 국가 대 국가로 대표하는 정상간의 회담이 아닌 남과 북의 최고위 정치지도자의 만남에 대해서는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남한이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채택한 지 며칠 뒤인 89년 9월28일, 북한은 남과 북의 최고당국자를 포함, 정당ㆍ사회단체 대표들로 구성되는 ‘정치협상회의’를 소집할 것을 촉구했다.  김주석은 올해의 신년사에서도 이 정치협사회의의 개최를 주장한 바 있다.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남북 정상의 만남은 이 정치협상회의의 테두리 안에서 최고당국자회담이라는 형식으로 가능하게 된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김주석이 강총리와의 면담에서 노대통령과의 만남에 대해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한 것도 기본적으로는 이 최고당국자회담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특이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노대통령과의 만남을 다른 정상ㆍ사회단체 대표 회동과 연결시키지 않은 점이다.  이것은 분명 기존의 주장에서 한걸음 나아간 것임에 틀림없다.

왜 김주석은 기존의 주장과 달리 노대통령과의 단독 만남에 강한 의욕을 표시하고 있는가.  2차 고위급회담 대표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이에 대해, “김주석이 은퇴 전에 통일문제에 대한 돌파구를 열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분석했다.  또 그는 북한의 고위급 인사들이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노대통령 정부는 남한의 역대정권에 대해 통일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여러차례 했다고 하면서, 북한으로서도 노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통일문제와 관련, 전환점을 마련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로서 한반도 주변정세가 급진전함에 따라 남북 정상이 만나야 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한ㆍ소수교, 북한ㆍ일본관계의 급진전 등 한반도 주변정세는 남북한과 미ㆍ일ㆍ중ㆍ소의 쌍무적 관계의 심화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주석으로서도 남과 북의 평화공전체제의 구축문제, 즉 군축이나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주한미군 철수 등을 논의하기 위해 남한의 최고당국자와 만날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고위급회담에서 북한이 제기한 불가침선언 등이 채택될 경우 이를 최종적으로 인준하기 위해 최고당국자 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최고당국자회담이 아닌 명실상부한 최소한, ‘하나의 국가로의 통일을 보장한다’는 정도라도 통일문제에 대한 언질을 주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