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계 장난이 틀림없다”
  • 조용준 기자 ()
  • 승인 1990.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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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계, 각서유출 첫번째 ‘용의자’로 朴哲彦 의원을 지목

비밀문서 종이 한장이 나라를 온통 뒤흔들어놓고 있다.  이른바 내각제 개헌 합의각서 유출사건으로 집권 민자당이 창당 이후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으며 많은 정치인들이 곤경에 빠져 있다.

  합의각서를 흘린 사람, 또는 ‘그 사람’이 속한 민자당의 계파는 어디인가.

  내각제 합의각서에 3인이 서명한 것은 민자당 창당전당대회·5월9일) 직전인 5월6일로 돼 있다.  한 국가의 대통령이 2명의 타계파 최고위원을 상대로 합의각서까지 작성하게 된 것은 4월초의 朴哲彦 의원 발언파문과 대권각서설 파동을 거치면서 계파간 분열상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게 되자 창당 전에 3당합당의 정치적 장래와 그 전제인 내각제개헌을 명백하게 문서화할 필요가 있다는 민정ㆍ공화계의 요구를 수락, 합의의물증을 남기기로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당시 김영삼 최고위원이 합의각서의 서명에 부정적으로 나오자 민정ㆍ공화계는 당헌에 “당은 대표최고위원이 이끈다”는 내용을 명시한다는 양해조건을 내세워 서명을 거듭요구, 김최고위원이 마침내 이를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자당의 정통한 한 소식통은 당시 합의문 작성에 관여했던 사람은 문안을 직접 기초한 盧在鳳 대통령비서실장과, 당3역을 맡고 있던 朴俊炳 사무총장, 金東英 원내총무(당시) , 金龍煥 정책위의장( 〃 ) 등 4인이었으며 박총장이 원본을 가지고 나와 김영삼최고위원과 김종필 최고위원의 서명을 각각 따로 받아 청와대에 보관했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따라서 합의각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최고위원을 제외하고 나면 당내에서는 당3역만이 알고 있었던 셈이다.

  지난 5월말 처음으로 합의각서설이 유포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朴泰俊 최고위원은 물론 김영삼씨의 핵심측근인 黃秉泰 의원조차도 합의각서의 존재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 소식통에 의하면 합의각서 서명 이후 청와대의 지시에 의해 崔昌潤 정무수석이 사본을 만들어 박총장에게 전달, 민주계와 공화계가 사본 1부씩을 따로 보관하게 했다는 것이다.

  ㅈ일보가 내각제 합의각서가 있다는 내용을 ‘특종’ 기사화한 것은 지난 5월29일.  朴俊炳 총장이 지난 주말 기자회견을 자청,  “내각제 개헌 합의사본은 여의도 민자당사 사무총장실 내실 서랍에 보관중 5월말쯤 나도 모르는 사이 며칠간 없어졌다 되돌아왔다”고 밝힌 것과 ㅈ일보의 보도 시점은 일치하고 있다.  총장실 내실은 기자들에게 출입이 제한돼 있으므로 이 사실을 박총장의 말과 접목시키면 기자가 아닌 어떤 누구인가가 총장실에 들어와 각서를 빼내 언론에 흘렸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김영삼 대표와 민주계는 박총장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다.  우선 김대표부터 “박총장의 단순 실수가 아니라 고도의 각본에 의해 저질러진 행위”라고 분개하고 있다.  또 다수 민주계 의원들은 “보안사령관 출신이 극비문서를 그토록 소홀히 취급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  “5월에 내각제 합의문 내용이 흘러나왔을 당시만 해도 김대표의 추궁에 박총장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오리발을 내밀었는데 지금은 그때 사본을 가지고 있었다니 이렇게 앞뒤가 안맞는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말이냐” 고 박총장의 말을 좀처럼 수긍할 기세가 아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 대한 민주계의 분석은 각서 사본이 박총장에게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민정계의 일부 세력이 사본을 의도적으로 빼돌린 것으로 집약되고 있다.  당시 박총장이 각서의 사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당내에서는 김종필 최고위원과 김용환 의원 그리고 박총장 자신뿐이었다.  김영삼 대표의 경우 박총장으로부터 사본을 아직 전달받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사본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이와 관련, 민자당의 소식통은 “김영삼 대표는 각서가 사본없이 청와대에만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합의에 관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 임을 강변해왔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한때 공화계가 합의각서 유출의 진원지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김용환 의원이 밀봉된채로 있는 각서를 민주계의 황병태 의원에게 공개, 공화계에 대한 오해는 풀리게 되었다.  황의원에 따르면 “내가 합의각서 자체를 부인하니까 김의원이 밀봉 각서를 직접 들고와 보여주더라” 는 것이다.

민주계는 최고급 정보에 접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각서의 공개로 인해 가장 현실적 이득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계는 박철언 의원을 일차적으로 지목하고 있으나 이렇다할 확증을 찾아내지 못했다.  또한 당 지도부 역시 이의 정확한 진상규명없이 조기진화만 서두르고 있어 각서유출의 진원지는 그대로 베일에 묻힐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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