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평] 사랑놀이 탈피한 주말극 ‘성공’
  • 이경순 (방송평론가) ()
  • 승인 1990.11.2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말연속극은 멜로드라마” 고정틀 깬 ‘몽실언니’‘야망의 세월’

 연속극이 주말 저녁시간대의 텔레비전 프로로 고정 편성된 것은 방송 초창기부터 굳어진 관행이다. 그 연속극의 종류는 몇몇을 빼고는 거의 멜로드라마 일색이다.

 이처럼 틀에 박힌 편성은 이른바 황금시간대로 불리는 주말 저녁시간대에 비싼 광고료를 지불하는 광고주들의 계산과 관계가 깊다. 가정에서 구매력을 행사하는 주체는 대부분 주부들이다. 따라서 자기네 회사의 상품을 광고하려면 주부들, 특히 구매력이 높은 중산층 주부들의 취향과 기호에 영합하는 프로그램의 스폰서가 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철저한 계산이 ‘주말연속극은 멜로드라마여야 한다’는 불문율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고정틀로 인해 주말연속극은 대부분 남녀간의 삼각관계를 단골 소재로 삼게 마련이어서 거의 예외없이 ‘불륜이니 가정파탄이니’하는 윤리성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KBS,MBC양사가 지금 방영하고 있는 두 주말극 바로 직전에 나란히 방영한 ‘배반의 장미’와 꽃피고 새울면‘이 그 좋은 예다.

 

소재·연기 돋보이는 ‘몽실언니’

 두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끊임없이 윤리성 시비를 일으키는 바람에 과연 주말연속극은 멜로드라마 아니면 안되는가 하는 회의가 시청자 등 방송사 바깥쪽에서뿐 아니라 방송사 안에서마저 심각하게 일어났다. 이는 결과적으로 크게 다행한 일이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KBS 제 2텔레비전의 ‘야망의 세월’과 MBC의 ‘몽실언니’는 드라마의 시대배경을 현재로부터 살짝 뒤로 돌렸다는 점에서 묘한 공통점을 보인다.

 동화작가 권정생씨의 작품을 임충씨가 각색한 ‘몽실언니’는 해방 직후에서 6·25에 이르는 혼란기의 충청도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드라마는 절대 가난과 전쟁의 와중에 휘둘리고 피폐해지는 사람들 속에서 고되고 슬픈 삶을 살면서도 맑고 따뜻한 심성을 잃지 않는 몽실이란 어린 소녀를 소재로 삼고 있다. 몽실의 삶을 통해 시청자가 만나게 되는 것은 지나간 시대에 대한 향수를 뛰어넘어 잃어버린 인간서의 회복에 대한 의지이다.

 매우 어둡고 슬픈 이야기이기 때문에 드라마화하기에 적합치 않을 듯하지만 이를 어른들의 한풀이가 아닌, 지순한 어린이의 시각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시청자의 공감을 얻고 있다.

 원작의 동화적 분위기를 훼손하지 않고 전달하려는 각색자의 의지가 꾸밈새없는 어린연기자, 즉 몽실 종국 종식 삼남매에 의해 잘 살아 있고, 여운계 나문희 김인문 박인환 등 조연들의 탄탄한 연기는 예쁘게 보이려는 여주인공의 이기심을 내버린 이경진의 밀양댁역을 한결 돋보이게 한다.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프로 편성해야

 그밖에도 비교적 새 얼굴로 이뤄진 마을 젊은이들도 ‘그 얼굴이 그 얼굴’에 식상한 시청자에게 신선감을 준다. 이 드라마는 주말극의 고정틀에서 벗어나보려는 제작진의 의지가 돋보인, ‘드라마적 성공’을 거둔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야망의 세월’의 시대배경은 ‘몽실언니’의 그것보다 20년 정도 지난 1960년대 중반, 대학가에서 한일회담 반대시위가 거셌던 6·3사태 때에 맞춰져 전개되고 있다.

 학생시위의 주역으로 구속된 남자 주인공(유인촌)과 경제적으로 몰락한 그의 집안, 그리고 그 집안과 대립하는 부정적 기업가 집안이 여주인공(황신혜)을 사이에 두고 얽히는 갈등구조가 기둥 줄거리이다. 이같은 기본 구도는 이 드라마의 작가 나연숙씨의 옛 작품들, 이를테면 ‘도시의 얼굴’같은 데서도 즐겨 사용한 구도이다.

 4·19와 5·16이란 시대적 격변직후의 정치·사회상황을 드라마속에 담으려는 의도가 지나치게 드러나 생경하게 느껴진다거나 시청자에게 재미를 주려는 의욕이 극중의 과장된 연기, 거친 대사로 나타나는 것은 이 드라마가 극복해야 할 큰 걸림돌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주말 저녁시간대는 온가족이 함께 즐기는 때이다. 그러므로 이 시간대에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앉아 얼굴 붉히지 않고 같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편성돼야 함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는 상식이다.

 오랜만에 윤리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멜로드라마가 뒷전에 물러앉은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야망의 세월’이 ‘선정적 장면 및 비속한 대사’로 방송위원회의 ‘주의’를 받은 것은 또 다른 걱정을 갖게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