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배족사 탐구에 바친 한 평생
  • 정운현(중앙일보 조사부기자) ()
  • 승인 1990.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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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사학자 고 任鐘國씨 ‘삶·업적’ 재평가 움직임

지난 11월 12일은 일왕 아키히토가 즉위한 날이자 친일연구가 고 任鐘國씨의 1주기이기도 하다. 지난해 지병인 폐기종으로 60세를 일기로 아깝게 타계한 그는 평생을 친일(파)연구에 몸바친 재야사학자이며 시인·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한 인물이다. 최근 그의 1주기를 즈음에 그의 삶과 업적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서서히 일고 있으며 특히 그의 유업을 계승하기 위해 ‘임종국역사연구소’가 설립될 계획이다.

 그는 1929년 10월26일 경남 창녕군 창녕읍에서 임문호씨의 4남3녀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천도교 청년당수와 조선농민사 사장을 지낸 사람으로 당시 의식있는 조선인 중의 한사람이었으며 일제치하의 형무소를 몇번 드나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부친도 일제 말기에는 자의든 타의든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지원병으로 나갈 것을 권유해 친일파의 대열에 들고 말았는데 생전에 그는 이같은 사실을 그의 저서속에서 밝힌 바 있다.

 문인으로 출발했던 그가 친일배족사연구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65년 한일회담이 재개되면서부터다. 한일국교정상화로 해방된 지 20년만에 일본은 이 땅을 다시 찾아왔다. 그러나 일본은 가해자치고는 너무나 당당했고 상대적으로 피해자였던 우리는 저자세 일색이었다. 해방 직후 신생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걸 보고 그는 별 의식없이 보아넘겼으나 군사정부가 하는 꼴을 보고서는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다고 결론내렸다. “묵은 친일파들이 비판받는 꼴을 보면 제2의 이완용 송병준이 그래도 조금은 주춤하겠지, 이런 생각에서 나는 ≪친일문학론≫을 쓰기로 결정했다.”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밝힌 친일연구의 계기다.

 66년 그의 첫 결실로 나온 ≪친일문학론≫(평화출판사)은 당시 지성계에 큰 충격을 준 바 있으나 초판 3천부를 소화하는 데는 10년이 걸렸다. 그러나 이 책은 80년대 이후 양심범들의 ‘옥중필독서’로 꼽히면서 진가를 인정받아 현재 7판을 발행중이다. 친일연구의 여러 분야 중에서 문학분야에 먼저 손댄 것은 문학이 그의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학 한때 고시공부에도 전념했던 그는 건강탓도 있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의 대표적인 문학평론 ≪이상전집≫(3건)은 아직도 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처녀작 ≪친일문학론≫의 판매부진으로 당초 계획했던 후속타 출간을 포기하는 등 70년대에는 슬럼프를 겪기도 했으나 80년대 들어 그는 왕성한 저술활동을 보였다. 80년대에 그는 본거지를 서울에서 천안으로 옮겼는데 건강탓도 있었지만 우선 집필에 전념키 위해서였다. 그는 83년 ≪일제침략과 친일파≫(청사)를 시작으로 ≪밤의 일제침략사≫(한빛문화사·84),≪일제하의 사상탄압≫(평화출판사·86), ≪한국문학의 민중사≫(86), ≪친일논설선집≫(실천문학사·87), ≪일본군의 조선침략사 Ⅰ·Ⅱ≫(일월서각·88)등을 연속으로 펴냈다. 미완성작으로 남겨놓은 ≪친일파총서≫(10권 계획)는 87년부터 그가 친일연구를 총체적으로 규명하여 94년에 완간할 계획으로 기획했던 것인데 아깝게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이같은 유업을 계승하기 위해 생전에 고인을 곁에서 모셨던 김대기씨(천안 지평서원 대표) 등 후학들의 주도로 ‘임종국역사연구소’(가칭)가 금년중 서울에서 정식 출범할 예정이다. 주최측에 의하면 이미 연구원과 장소는 확보된 상태이며 현재 연구소기구와 구체적인 사업계획 등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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