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최고] 유익한 텔레비전 프로 '인간시대'
  • 우정제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0.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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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손 꼽힌 소설은 '태백산맥'

올해 가장 유익했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MBC 텔레비전의 <인간시대>(8.1%), 가장 재미있었던 프로그램은 지난 9월초 종영된 MBC 텔레비전의 주말연속극 <배반의 장미>(13.1%, 김수현 극본 곽영범 연출)로 나왔다. 응답자들은 유익성 면에서는 교양 프로그램과 뉴스, 재미로는 드라마와 외화를 꼽아 유익한 프로그램과 재미를 주는 프로그램이 크게 달랐다. 반면 MBC 텔레비전의 농촌드라마 <전원일기>는 유익성과 재미면에서 각기 2~3위를 차지, 10년 장수프로의 생명력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인간시대>(월요일 밤 8:05~9:00)는 85년 5월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대체로 서민층의 삶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훈훈한 드라마로 호평을 받아왔다.

 

연기자 중 '으뜸'은 윤석화

<인간시대>의 제작진은 팀당 7명으로 짜인 5개팀. 편당 열흘 내지 보름간 동행취재하며, 55분짜리 1편을 만드는 데 평균 20시간분을 촬영, 편집과정에서 20분의 1로 압축한다. 주인공이 "카메라를 자기집 살림도구쯤으로 여기게될 때까지" 첫 사나흘간의 필름은 모두 버릴 각오로 찍는다. 연출자의 입장에서 가장 힘든 점은 불과 열흘간의 '대리체험'으로 어떻게 한 인간의 총체적 삶을 진실되게 그려내느냐 하는 것이다. 시청자들의 호기심에 영합하는 '별스런 삶'의 소개가 아니라 개인의 삶이라는 파편을 통해 사회의 압축된 단면을 드러내고자 하는 고민이다.

바로 이 점에서 종종 이 프로그램에 대한 아쉬움이 제기되기도 한다. 사회성이 강한 주제의 탈색, 정형화된 감동을 양산하는 접근방식의 매너리즘에 관한 지적을 받곤 한다. 그러나 이같은 비판에 대해 홍종선 프로듀서는 이렇게 답변한다. "그동안 사회문제를 완전히 배제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연역적이든 귀납적이든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려내되 '내 이웃'의 문제로 느낄 수 있도록 정서적으로 접근해왔다." 이 프로그램은 앞으로도 계속 소재를 확대해 중산층 주인공이나 우리 정서에 맞는 해외 유명인도 발굴해나갈 예정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대한 일반시청자들의 이같은 '평가'는 꾸준하고 나름대로의 기준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지만, 방송계는 올 한해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평화방송  불교방송  교통방송의 잇따른 개국으로 방송계는 표면적으로 활성화 시대로 접어드는 듯했으나 지난 4월의 KBS사태, 아직도 아물지 않은 MBC의 노사 갈등, 확대 조짐을 보이는 평화방송의 노사 대립 등은 방송계의 구조적 모순들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11월초 민영방송의 대주주 선정을 둘러싼 의혹과 민방 출현으로 인한 방송계 재편은 방송계 최대의 현안으로 떠올라 있다.

한편 올해 가장 활약이 돋보인 연극  영화인으로는 연극배우 尹石花가 꼽혔다. 윤석화는 지난해 10월 무대에 올린 1인극 <목소리>(장 콕토 원작 임영웅 연출)를 올 1월까지 연장공연하며 90년을 '윤석화의 해'로 예고했다. 그는 이 작품 등의 성과로 연출가가 뽑은 올해의 연기자상,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했고 그 여세를 몰아 4월까지 서울  지방공연에 들어갔다. 5월에는 <사의 찬미>, 다시 6월 말에는 <프쉬케, 그대의 거울>을 선보였다. <프쉬케…> 역시 흥행에 성공, 넉달간의 연장공연 끝에 이달 14일까지로 지방순회공연을 마쳤다. <목소리>는 사랑하던 남자와 헤어진 한 여인이 과거를 회상하며 전화기에 대고 고독한 독백을 하다가 전화줄로 목숨을 끊는다는 이야기. <프쉬케…>는 지난 87년 뮤지컬 <송 앤드 댄스>에 이은 그의 두번째 연출 무대로 이 극에서 그는 민속학을 전공하다 급성발작을 일으켜 정신병원에 입원한 30대 여주인공역을 맡아 열연한다.

불황으로 허덕이는 우리 연극계에 지난 몇해 동안 '윤석화 신드롬'이라 할 만한 이같은 바람이 불고 있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연극계에서는 "윤석화의 개인적 미덕, 즉 무대 위로 관객을 집중시키는 강한 흡인력과 천부적 자질, 그 위에 역량과 의욕과 성실함이 더한 결과"라고 평한다. 하지만 83년 <신의 아그네스> 이후 잇따라 화제작을 터뜨려온 그의 인기란 새삼스런 것이며 그보다는 오히려 연극계의 구조적 취약성과 연관해 이같은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연기자층의 빈약과 기획부재, 관객층의 부박함이 상대적으로 윤석화의 인기를 부채질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타 윤석화가 관객, 특히 여성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여 연극을 대중화하는 데는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그간의 출연작들을 살펴볼 때 정상의 연기자라 부르기엔 연기폭에 상당한 한계가 있다는 단서조항을 다는 이들이 많다. 이에 대해 윤석화 자신은 "내가 살아온 연륜만큼에 대한 기대치로 순수하게 평가해주기를 바란다"고 대답하지만 평론가들은 더욱 성숙한 배우로 도약하려면 "어색한 호흡과 습관적 발성, 다른 출연자들과의 앙상블을 해치는 고정된 연기 스타일을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가장 좋았던 영화는 <남부군>

올해 가장 돋보인 연극  영화계의 작품을 물은 결과, 1위를 차지한 <남부군>을 제외하고는 상위권 20편 안에 영화가 거의 끼어 있지 못하다는 사실도 특기할 만하다. 2위는 서울연극제 대상 및 희곡상 수상작인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극단민예, 이만희 작 강영걸 연출), 3위는 윤석화의 <목소리>로 나타났으며 그밖에도 다수의 연극이 산발적으로 선정됐다.

90년 연극계는 서울연극제의 실패라는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창작극의 전반적 침체를 민간 주도 축제형식으로 부활시켜보자는 의도였으나 개막 직전 민간 흥행업자와 연극협회측과의 불협화음으로, 올 연극제는 그 어느 해보다 낮은 점수가 매겨졌다. 그러나 소련 및 동유럽 극단의 내한공연과 인천시립극단 창단 등은 올 연극계의 한 성과이다.

반면 기억에 남는 영화에 관한 설문에서 "한편도 없다"는 응답이 무려 67.4%를 기록한 것은 방화가의 침체현상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2.6%의 낮은 비율로 <장군의 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로 꼽혔고 가장 돋보인 영화로 선정된 <남부군>은 2위(2.3%)로 밀려났다.

제작비 총 13억원을 투입하는 등 방화사상 보기 드문 대작이었던 <남부군>은 李泰의 '빨치산' 체험수기를 영화화한 작품. 해방 이후 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서 상영되었을 뿐 아니라 그간 도외시되었던 사실주의 영상시대를 예고하는 작품으로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이념을 배제하고 그시대에 희생된 인간을 그리는데 초점을 맞춘" 鄭智泳 감독의 시각은 개봉 후 보수  혁신 양측 관객의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편 이 작품은 영화진흥공사가 선정한 2  4분기 '올해의 좋은 영화' 선정에서 탈락하는 등 찬사와 비난으로 그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서울 개봉관에서만 관객 60만명을 돌파, 한국영화 70년 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수립한 <장군의 아들>은 30년대 종로파 깡패의 두목이었던 金斗漢의 소년시절부터 20대 초반까지를 그린 영화. 20년만에 액션물에 손을 덴 林權澤 감독이 역사적 고증에 각별히 신경을 쓴 작품이다. 주인공에게 '종로 상인들을 위해 일본깡패에 맞선다'는 폭력의 당위성을 부여했고, 맨주먹으로 무장한 적을 물리치는 소영웅의 모습을 그린 점이 주로 청소년층 관객을 사로잡았다는 평이다.

 

축구선수 김주성 90최우수 선수

지난 1년간 가장 맹활약을 한 운동선수는 누구일까. 응답자의 1할 정도가 90년의 최우수선수로 축구선수 김주성(11.8%)을 꼽았다. 김주성은 88년 아시아선수권대회(카타르)와 89년 월드컵 최종예선(싱가포르) 최우수선수, 국제축구통계연맹이 선정한 89년의 아시아 최우수선수가 되면서 아시아 축구의 최고스타로 부상했다. 지난 6월에 열린 월드컵 본선에서는 활약이 부진했지만 북경아시안게임에서 좋은 경기를 펼쳐 기자단에 의해 아시안게임 베스트10에 선정됐다. 그는 또, 지난달의 남북통일축구경기 후 남한의 박종환 감독과 북한의 명동찬 감독이 미리 짜본 '최정예 단일팀 베스트11'에서 주전 공격수의 적임자로 꼽히기도 했다.

한편 우리나라의 가장 자랑스런 예술품으로는 고려청자(17.5%)가 1위를 차지했다. 현존하는 고려청자의 대부분은 청자 전성기인 12세기에 제작된 것들로 90년 11월 현재 국보 22점, 보물 32점에 이른다. 중국과 일본의 청자와 비교해 볼때 그릇의 정제된 곡선과 정교한 상감기법, 그윽하고 우아한 翡色(도기의 푸른 빛깔)의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청자에 대한 재현 연구는 78년 옛 고려청자의 도요지에 세워진 강진요와 경기도 광주등지를 중심으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운동권 출신 소설가 김영현. 활동 돋보여

현역 작가 50인에게 '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돋보인 문학작품이나 활동'을 질문한 결과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첫손에 손꼽힌 사실은 굳이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이 대하소설은 지난 연말 전10권이 완간되면서 이미 80년대 우리 소설문학의 기념비적 목록의 하나로 새겨졌고 문단  독서계뿐 아니라 사회과학계에서도이 소설의 값어치를 높이 사고 있기 때문이다.

《태백산맥》은 해방공간과 6  25 즉 우리 민족사의 가능성과 좌절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시기를 배경으로 지리산 일대에서 벌어지는 이념적 갈등을 다양한 계급  계층의 인물들을 통해 펼쳐보인다. 분단 이후 거대한 억압체계로 작용해온 반공이데올로기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시각에서 쓰인 이 소설은 분단의 원인은 물론 분단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틀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등장인물의 일관성이나 분단의 원인을 보는 시각 등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첫 창작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출간과 함께 90년대를 맞은 운동권 출신의 젊은 작가 김영현(35)은 올 한해 동안 줄곧 각광을 받아왔다. 올해 돋보인 문학작품(활동) 항목에서 그의 활동이 두번째로 거론된 배경을 짚어보면, 그의 작품에 대한 공식적인 평가(한국일보 문학상 수상)가 있었고, 이른바 '김영현 문학논쟁'으로 명명된 젊은 평론가들의 문학관(세계관) 대결이 올 여름 내내 진행되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와 복거일의 활동을 꼽은 작가들의 답변도 그 의미를 곱씹게 한다. 복거일은 '자유주의자'의 시각으로 오늘을 읽어낸 에세이집 《현실과 지향》을 내놓으면서 경제평론가 정운영과 '자유주의 논쟁'을 벌였는데 이 논쟁은 지식인 사회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김영현 문학논쟁과,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와 연결되는 자유주의 논쟁은 동유럽과 소련의 급변, 동북아 신질서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보수대연합으로 대표되는 기득권층의 완강함 등 국내외 정세에 대한 '지식인의 현기증'과 이를 헤쳐나가기 위한 세계관의 모색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올 하반기에 나온 김수경의 《자유종》 장정일의《아담이 눈뜰 때》그리고 박인홍의 소설들도 올 문학계가 기억할 만하다. 후기산업사회로 접어든 한국사회를 소설이라는 그릇에 담아내고 비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역시 현역작가 50인을 대상으로 한 '올해 활약이 가장 돋보인 작가' 설문에 대한 답변은 이문열 조정래 김향숙 황석영 김영현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올해 별다른 창작활동을 하지 않은 이문열이 1위로 나타난 것은 80년대 이후 그가 보여준 문학적 성과의 크기를 잘 말해준다.

70년대말 작품활동을 시작해 장편 9편, 중편 8편 그리고 30여편에 달하는 단편을 발표해온 이문열은 중산층 독자를 기반으로 한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의 소설이 읽히는 이유는 그의 방대한 독서량에 바탕한 교양주의와 탁월한 문체, 그리고 책읽기의 재미를 제공하는 데 있다고 분석되기도 하지만 한국 문학도 이미 자본주의의 논리에 완전하게 편입됐기 때문이라고 더욱 넓은 시야에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그의 소설들이 구매력을 가진 중산층의 문화의식과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그의 소설은 젊은층과 민중문학 진영으로부터 '보수주의'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같은 비판보다는 그의 소설이 지닌 매력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문열이 거둔 '성과'가 80년대부터 축적된 것임을 감안할 때 90년 문학계의비망록은 '김영현 소설과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라고 압축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이성복 황지우 박남철 최승호 등 시인의 지속적인 활동과 도시시의 출현, 그리고 민중적 서정시의 뿌리내림 등도 주목할 만한 성과이다.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물은 항목은 일반 국민 1천5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조사대상의 절반이 넘는 54%가 "기억에 남는 책이 없다"고 답변해 독서량 감소현상과 독서교육  안내 기능의 시급함을 대변하고 있다. 본격문학은 《태백산맥》(6위)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2위)《장길산》(16위) 등이 고작이고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잔혹상을 그린 《마루타》가 1위,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청소년에게 들려주는 에세이인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가 2위, 한 여성이 쓴 사랑의 수기인《잃어버린 너》가 3위를 차지, 일반독자의 독서수준과 대중매체를 통한 출판광고의 위력을 설명해 준다.

출판계의 90년 한해는 소설류 판매 증가. 북한연구총서 발간, 동유럽권 관계 서적 붐, 북한법령집 발간, 6년만에 부활된 서울도서전 등 연간 목록 작성이 가능하지만 밑줄을 그을 만한 성과는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출판평론가 이중한씨는 "출판계가 대중들의 독서 취향에 맞춰나가다가 그 한계에 도달했다"고 지적하고 뉴미디어 시대에 출판계가 발빠르게 적응하는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백남준의 퍼포먼스와 포스트모더니즘

백남준 임옥상 김흥수 이우환. '올해 활약이 가장 돋보인 미술가'를 미술인 50인에게 물어본 결과 나온 순위인데 민중미술 계열의 임옥상을 제외하고는 해외활동이 활발한 모더니즘 계열의 미술가들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60년대말 비디오아트를 예술장르의새 이름으로 등록시키면서 세계적 아티스트로 떠오른 백남준은 지난 7월 서울 갤러리 현대에서 '서울 퍼포먼스'를 가졌다. 그의 개인적인 회고전 성격이었던 이 퍼포먼스는 그의 '최초의 한국전'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가장 서구적이고 첨단적인 형식에 우리의 굿의 언어를 만나게 한 이번 퍼포먼스는 그 평가에서 편차가 많지만, 그의 비디오아트가 갖는 선구적인 의미와 현대사회와의 관계를 살필 때 그를 '현대의 신화적 존재'라고 부르는 데 있어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미술평론가들로부터 80년대의 대표적 작가로 주저없이 꼽히는 임옥상(41)은 민중들의 현실과 역사의식을 교차시키는 독특한 조형언어를 추구해왔다. 그는 올들어 동시대의 고통을 통해 외세문제를 환기시킨 대하그림 〈우리시대의 풍경〉을 제작, '우리의 그림'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김흥수씨는 올해 파리에서 전시회를 가졌으며, 일본 현대미술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이우환씨는 지난 7월 귀국전을 가진 바 있다.

화랑계는 올 초 세무조사 회오리를 겪으며 유통과 미술품가격의 양성화를 위한 노력을 보였지만 미술품 양도소득세 실시 여부로 당국과 미술계는 한차례 몸살을 치렀다. 미술시장이 이같은 혼란을 겪는 가운데 화단 내부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용 문제를 놓고 긴 논란이 있었다.

‘올해 가장 돋보인 미술계의 작품  활동' 대목에서 1위로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대안이냐, 아니냐'를 놓고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상류 엘리트를 위한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의 양극화를 극복하는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수용파와 문화적 종속  새것 컴플렉스라고 비판하는 부류로 양분되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이어, 지난 9월 귀국전을 가진 종이인형작가 김영희의 활동이 2위로 집계되었고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대한민국미술대전, 이응로 작품전이 공동 3위로 나타났다. 그밖에 동유럽 미술전, 민중예술의 활성화 등도 의미있는 활동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젊은 평론가들은 11월말부터 한달간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열리는 <젊은 시각  내일에의 제안>을 주목할 것 같다. 이 전시회는 서성록 임두빈 박신의 등 화단의 대표적 흐름을 주도하는 소장 평론가 5인이 작품을 선정, 한자리에 모으는 것인데, 90년대 미술계를 전망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음악인 50인에게 '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돋보인 음악계의 작품이나 활동'과 '가장 활약이 돋보인 음악가'에 대한 설문 집계는 정명훈의 바스티유오페라교향악단연주로 집약된다. 해외에서 30년간 활동해온 그가 모국에 대한 책임감을 넉넉하게 갚은 귀국 연주는 곧 이어 진 정명화 정경화와의 정트리오 하모니로 더욱 돋보였다. 이와 함께 국립합창단의 오페라 <환향녀>와 오페라와 발레 두 양식으로 올려진 <카르멘> 그리고 차이코프스키 음악콩쿨에서 입상한 성악가 최현수 등이 올 음악계를 장식하고 있다.

설문조사 시기상 그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던 남북통일음악제의 평양 개최와 김민기가 주도한 '겨레의 노래', 박범훈의 국악활동, 이강숙 교수가 펴낸 《한국음악학》도 90년과 90년대의 음악계를 정리  전망하는 데 있어 중요한 디딤돌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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