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육강식의 삶을 표정으로 말하다
  • 김형석(<스크린> 기자) ()
  • 승인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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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사생결단> 감독:최호 주연:황정민·류승범

 
이 영화는 지금부터 8년 전, 그러니까 외환위기 사태 때문에 한국 사회가 꽁꽁 얼어가고, 국민들은 허무주의에 감염되며, 도처에 죽음의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1998년 부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 서두에 ‘이 영화는 100% 픽션’이라고 밝히긴 하지만, 오히려 이 자막은 <사생결단>의 ‘사실성’을 더욱 강화하는 듯하다. 제목처럼 이 영화는 ‘사생결단’ 난장판의 한가운데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두 주인공 도진광(황정민)과 이상도(류승범)는 비열한 거리의 악어와 악어새다.

경장 도진광은 파트너가 눈앞에서 마약 범죄자들에 의해 처참하게 죽어가는 광경을 목격한 후부터 ‘뽕쟁이’들을 뿌리 뽑아야겠다는 일념에 휩싸인다. 이때 도경장은 이상도라는 마약판매상을 이용한다. 상도의 마약 거래를 눈감아주는 대신, 자기 파트너를 저승으로 보낸 장철(이도경)이라는 마약대왕을 잡는 것이 도경장의 작전. 과연 도경장의 위험한 계략은 성공할 수 있을까? 마지막 장면까지, 관객은 알 수 없다.

<사생결단>은 표정의 영화다. 비열한 것 같으면서도 허탈하고, 희열에 들뜨다가도 한 순간 절망의 눈빛으로 변하는 류승범. 슬픈 것 같으면서도 묘한 열정이 타오르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도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동자가 보일 것만 같은 황정민. 표정의 카타르시스라고나 할까? 여기서 두 배우의 표정이 표피적인 개인기에서 머물지 않은 것은, 그들에게 깊은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비참하게 숨진 파트너만을 생각하는 도경장에게는, 개인적 복수와 공적인 법 집행 사이에 경계가 없다. 또 이상도에게는 자신을 마약 장사로 몰아넣은 원수 같은 삼촌 택조(김희라)가 있으며, 그 삼촌 때문에 어머니를 잃었다. 이러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그들의 찡한 표정을 좀더 ‘찐’하게 만들며, 내내 교차되는 그들의 내레이션이 <사생결단>이라는 영화를 좀더 굴곡 있는 드라마로 만든다.

‘어떻게’ 혹은 ‘왜’에 천착한 윤리적 영화

<사생결단>이 ‘범죄 영화’ 혹은 ‘형사 영화’라는, 이젠 진부해질 대로 진부해져 더 새로울 것이 없을 것 같은 장르의 함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세계관’이다. 이 영화는 일찌감치 선악 구도를 배제하고, 캐릭터의 감정적 측면에서 접근한다. 이상도와 도경장, 그리고 마약으로 만신창이가 된 지영(추자현)은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에서 벗어난다. 그들은 사회적 환경 혹은 개인적 운명으로 인해 마약이라는 위험한 물질에 연루된 인물들이다. 범죄가 일어나고 형사는 범인을 잡는다는, 장르의 대전제는 여기서 의미를 잃는다. 범죄 현상 자체보다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사연에 초점을 맞춘 <사생결단>은, ‘무엇을’이라는 목적보다는 ‘어떻게’ 혹은 ‘왜’에 천착한 윤리적인 영화인 셈이다.

 
이 영화가 마지막으로 던지는 화두는, 10년도 안 된 우리의 ‘근과거’에 대한 어떤 시선이다. <살인의 추억>이 우리의 1980년대를 떠돌았던 스산한 공기를 연쇄살인이라는 모티브로 상징했다면, <사생결단>은 황량하기 그지없었고 약육강식 논리가 난무하던 1990년대 말 남한을 마약 커넥션을 통해 형상화한다. 과연 그 시대는 지나가버린, 말 그대로 ‘과거’인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궁금해지는 것은, 이 피 튀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현재 모습이다. 아니면 혹시 <사생결단>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지속되는 과거’일까? 그렇다면 우리의 물음표는 다른 곳에 찍힌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흐르는 노래 제목 ‘누구를 위한 삶인가’가 암시하는 것처럼, <사생결단>은 관객에게 묻는다. 외환위기라는 상징적 사건 이후 우리 삶은 과연 무엇인가? 그 전까지 믿어왔던 가치관이 모두 사라져버린 거리에서, 우리가 좇아야 할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영화, 그런 점에서 꽤 날이 서 있고, 한편으로는 꽤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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